손경형 2011. 5. 5. 17:30

[여적]소록도의 조용필 

김태관 논설위원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1949년 소록도 가는 길이다. 이 숨막히는 ‘전라도 길’을 한하운(1919~1975)은 걷다 보면 발가락이 하나씩 없어지는데도 걸어야 했다. ‘작은 사슴의 섬(小鹿島)’은 세상의 섬이 아니었다. 그곳은 한하운 같은 한센병(나병) 환자가 저마다의 고통을 지고 와 부리는 ‘세상 밖의 섬’이었다.

 

 
‘하늘을 꿈꾸는 섬’이라고 불리는 하와이 군도의 몰로카이섬. 이름은 아름답지만 사방이 절벽이고 물살이 세서 세상과 격리된 섬이다. 우리의 소록도와 같은 이 섬에 33세의 젊은이가 자원해서 들어간다. ‘한센인의 목자’로 불리는 다미앵 신부(1840~1889)가 바로 그다. 한하운은 슬픔을 이고 소록도를 찾았지만, 다미앵 신부는 기쁨을 안고 몰로카이섬으로 향했다. 1873년 섬에 들어간 다미앵 신부는 세상에서 소외된 한센병 환자들을 섬기는 데 일생을 바쳤다. 사람들은 한센병을 천형(天刑)으로 여겼지만 다미앵은 그것을 하늘의 은총으로 받아들였다.

1885년 어느 날 밤 다미앵은 목욕물을 끓이다 그만 펄펄 끓는 물을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 쏟고 말았다. 아차 하는 순간의 실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끓는 물에 덴 발이 전혀 아프지가 않았다. 감각의 상실은 곧 한센병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하늘이 무너질 일이지만 그는 기뻐서 하늘을 우러러봤다. “드디어 하느님의 은총이 저에게 내렸습니다.” 날마다 한센병에 걸리기를 기도해온 다미앵 신부가 주교에게 보낸 편지다. 이런 사랑 덕분에 ‘천형의 섬’은 ‘천국의 섬’으로 변화한다.

가수 조용필씨가 소록도를 찾아 한센인을 위한 공연을 펼쳐 화제다. 지난해 5월 섬을 처음 들른 조씨는 “노래를 두 곡밖에 못불러 미안하다”며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킨 것이다. 가수들 중에서 또 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이는 조씨가 유일하다고 한다. 조씨는 노래 중에 객석에 내려가 한센인들의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포옹도 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조씨가 노래하자 소록도가 춤을 췄다. 사랑을 담으니 같은 노래라도 감동이 다르다. 한 사람은 이렇게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오랜만에 듣는 천국 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