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형 2017. 8. 21. 22:36

타타르키비츠 미학사 : 고대미학

서론 - 2

미학사가는 다양한 종류의 미학들이 전개되어가는 동향들을 연구해야 할 뿐 아니라 스스로 다양한 방법과 견해들을 실제로 해보아야 한다. 옛 미학사상들을 연구하는 경우에는 단순히 미학이라는 이름 하에 표현되어왔거나 이미 결정된 미학의 분야들에 소속되거나 “미”와 “예술”이라는 용어를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미 명시되어 쓰여지거나 활자화된 명제들에만 의지해서도 안 된다. 역사가는 자신이 주목한 어떤 한 시대의 심미안에서도 조력을 구해야 할 것이며 그 시대가 생산해낸 예술작품들도 참조해야 할 것이다. 또한 조각과 음악, 시와 변론술 등에 관해서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 작업 역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A. 미학사가 미학이라는 명칭 하에서 등장한 것으로만 한정된다면 미학사는 매우 늦게 시작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미학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은 1750년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이었다. 그러나 훨씬 더 이전에 다른 이름으로 꼭같은 문제들이 논의되고 있었다. “미학”이라는 명칭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그 명칭이 확립된 이후에도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명칭을 고수한 것은 아니었다. 바움가르텐의 저서보다 후에 완성되긴 했지만 미학을 다룬 칸트의 위대한 저술은 “미학”이라 불리지 않고 “판단력 비판”이라 불렸으며, 칸트가 사뭇 다른 목적으로 적용한 “미학”이라는 용어는 인식론의 일부, 즉 공간과 시간의 이론을 뜻했다.

B. 미학사가 특정한 개별분야의 역사로 취급된다면 아마도 미학은 18세기까지도(바뙤, 『순수예술들의 체계』, 1747)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될 것이며, 고작해야 두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는 훨씬 더 이전부터 다른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었다. 많은 경우 미의 문제는 플라톤의 경우에서처럼 철학 일반과 섞여 있었다. 미학에 그토록 많은 공헌을 한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미학을 하나의 독립된 영역으로 다루지 않았다.

C. 미학사가 특별히 미를 다룬 문헌들 속에서 진술된 사상들만을 다룬다면 제재 선택의 방법상 매우 피상적으로 될 것이다. 미학의 발전에 그렇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피타고라스 학파도 그런 문헌을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그들의 어떤 문헌도 알려진 것이 없다. 알려진 대로 플라톤은 미에 관한 논문을 썼지만, 미에 대한 자신의 주된 사상들은 다른 저술들 속에서 해설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주제에 관한 논문들을 남겼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를 썼지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에 관한 논문을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저술 어디에도 그 주제에 대해 할애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여기저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 주제로 전체를 쓴 저서들에서보다 더 많이 언급했다.

그러므로 미학사가는 소재를 선택하는 데 있어 특정한 이름이나 특정한 연구분야와 같은 외적 기준을 따라갈 수는 없다. 설혹 다른 명칭들과 다른 학문영역 속에 있다 할지라도 미학적 문제들과 관련이 있고 미학적 개념들을 사용한다면 그 모든 것들을 포함시켜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밟다보면 미학적 탐구가 미학이라는 특정한 명칭과 연구영역이 개별화되기 2천 년 이상 더 전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확실해질 것이다. 그 옛날에 이미 문제들은 제기되었고 후에 “미학”이라는 명칭 하에서 제시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해결되고 있었다.

1. 미학사상의 역사와 용어의 역사

역사가가 미에 대한 인간의 사상들이 전개해온 길을 기술하고자 한다면 스스로 “미”라는 용어에만 한정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미에 대한 인간의 사상들은 다른 명칭으로도 등장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대 미학에서는 미보다는 하르모니아(harmonia), 심메트리아(symmetria), 에우리드미아(eurhythmia)에 관해 논해진 바가 더 많다. 반대로 “미”라는 용어는 오늘날의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말하자면, 고대에는 미가 미적 덕목이라기보다는 도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술”이라는 용어도 그 당시에는 모든 종류의 숙련된 제작을 의미했고 미술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미학사로서는 미를 미로 칭하지 않고 예술을 예술로 칭하지 않았던 그런 이론들도 고려해야만 한다. 여기서 여덟 번째 이원성이 나온다. 미학사는 단순히 미와 예술에 관한 사상의 역사가 아니라 “미”와 “예술”이라는 용어의 역사이기도 하다. 미학의 전개는 사상들의 전개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용어의 전개사 역시 고려해야 하는데, 이 두 가지 전개의 역사는 동시적인 것이 아니다.

2. 명시적 미학의 역사와 암시적 미학의 역사

미학사가가 학식 있는 미학자들에게서만 정보를 구한다면 미와 예술에 관해서 과거에 생각되어졌던 모든 기록을 다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미학사가는 예술가들에게서도 정보를 얻어야 하며 학술서적뿐만 아니라 떠돌아다니는 의견들과 여론(vox populi)에 나타난 표현들에서 발견한 사상들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많은 미학적 사상들이 즉각 언어적 표현으로 발견되지는 않으며, 처음에는 예술작품들 속에서 구체화되어 언어가 아니라 형태와 색채, 소리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명시적으로 진술된 것은 아니지만 그 작품의 출발점과 토대로서 드러나는 미적 주제들을 추론해낼 수 있게 하는 예술작품들이 있다.

넓은 의미로 본 미학사에는 미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명시적인 미학적 진술들뿐만 아니라 시중의 취미 혹은 예술작품들 속에 암시적으로 존재하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넓은 의미의 미학사는 미학이론뿐 아니라 그 미학이론을 드러나게 하는 예술적 실제 또한 포괄해야 한다. 원고나 저서들 속에서 과거의 미학사상들을 읽어내는 역사가도 있고, 예술작품 · 유행 · 관습 등에서 이삭 줍듯 얻어내는 미학사가들도 있다. 이것이 미학과 미학사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이원성이다. 저술들에서 명시적으로 전달되어진 미학적 진리들과 취미나 예술작품들 속에 암시적으로 담겨 있는 미학적 진리들의 이원성인 것이다.

미학의 전개는 상당부분 철학자들이 이루어낸 것이지만, 심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이루어낸 부분도 있다. 예술가와 시인, 감정전문가와 비평가들 역시 미와 예술에 관한 수많은 진리들을 들추어내었다. 시나 음악, 회화나 건축에 대한 그들 각각의 주목이 예술과 미에 관한 보편적 진리들을 발견케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미학사가들은 거의 철학적 미학자들과 명시적으로 정립된 그들의 이론들만을 다루어왔다. 고대에 관한 어떤 논의에서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고려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플리니우스나 필로스트라투스는 어떤가? 그들 역시 예술비평사뿐만 아니라 미학사에서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피디아스는? 그는 조각사에 속할 뿐만 아니라 미학사에도 속한다. 그리고 예술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그것 역시 취미의 역사와 미학사에 속한다.

피디아스가 높은 기둥 위에 비례에 맞지 않게 큰 기둥머리를 올리려고 한 것을 아테네인들이 반대했던 경우는 양측 모두 플라톤이 제기했던 한 미학적 문제에 관한 의견을 표현한 것이다. 즉 예술이 인간의 인지법칙을 고려해서 자연을 인지법칙에 맞추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아테네인들의 의견은 플라톤의 의견과 비슷했으나, 피디아스는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아테네인들의 의견이 플라톤의 의견과 같았고 따라서 그 의견이 미학사에 담기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3. 자기설명적인 역사와 조건설명적인 역사

과거 시대에 태동한 미학사상들 중에는 매우 자연적이고도 자기설명적인 것들이 있다. 역사가는 그저 그 사상들이 언제, 어디서 등장했는지를 진술할 뿐이다. 반대로 사상들이 일어나게 만든 환경조건들, 이를테면 그 사상을 주창한 예술가 · 철학자 · 감정전문가들의 심리학, 예술에 대한 당대의 견해들, 그리고 그 시대의 사회적 구조와 취미 등이 알려질 경우에만 명확해지는 사상들도 있을 수 있다. 미학사의 열한 번째 이원성이 바로 이것이다.

(a) 사회 · 경제 · 정치적 조건들의 직접적인 영향을 통해서 생겨나는 미학사상들이 있다. 그런 사상들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살고 있는 제도와 그것들이 속한 사회집단에 의존해왔다. 로마 제국 시대의 삶은 아테네 민주정 시대 및 중세 수도원에서 전개된 것과는 다른 미와 예술의 개념을 낳았다. (b) 이념과 철학적 이론들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사회 · 정치적인 환경에는 간접적으로 의존하는 사상도 있다. 이데아론자인 플라톤의 미학은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적 미학과는 유사성이 거의 없다. 양자가 동일한 사회 · 정치적 환경 속에서 살았는데도 말이다. (c) 당대 예술로부터 영향을 받은 미학사상도 있다. 필요에 따라 예술가들이 미학자들에게 의존하기도 하지만 그 반대 역시 사실이다. 때로는 이론이 예술적 실제의 영향을 받지만, 예술적 실제 역시 미학이론의 영향을 받는다.

미학사가는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고려해야 한다. 미학사상의 전개를 진술하면서 미학사가는 정치제도, 철학, 예술의 역사를 되풀이해서 언급해야 한다. 이 임무는 어려운 만큼이나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미학이론에 끼친 정치적 · 예술적 · 철학적 영향들은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모호하고 예상치 못하게 뒤얽혀 있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예술에 대한 플라톤의 평가는 하나의 정치제도를 모델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제도는 플라톤이 태어나 생애를 보낸 아테네의 정치제도가 아니라 먼 스파르타의 정치제도였다. 그의 미개념은 철학에 근거를 두고 있었는데 그것은 (후세에는 더구나) 자신의 이데아 철학이라기보다는 수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철학이었다. 예술에 대한 그의 이상은 당대의 그리스 예술을 토대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고졸기 예술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4. 미학적 발견의 역사와 유행하던 사상들의 역사

미학사가는 일차적으로 미와 예술에 대한 개념들의 기원과 전개, 미이론의 형성과정, 예술과 예술적 창조, 그리고 예술적 경험의 형성과정에 관심을 가진다. 그의 목표는 그러한 개념과 이론들이 언제 · 어디서 · 어떤 환경에서 · 누구를 통해서 일어났는지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는 누가 미와 예술의 개념을 처음 규정했는지, 누가 처음으로 심미적 미와 도덕적 미, 예술과 공예를 구별했는지, 누가 처음으로 예술과 창조적 상상력, 그리고 미감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도입했는지 발견해내려고 노력한다.

미학사가들이 마땅히 중요하게 여겨야 할 또다른 문제가 있다. 즉 미학자들이 발견해낸 개념과 이론들 중 어느 것이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을 얻었는가, 어느 것이 인정받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스 사상가들과 일반 그리스인들이 오랫동안 시를 예술로 간주하지 않고, 조각과 음악간에 어떠한 유사성이나 연관성을 찾지 못했던 것, 그리고 그들이 예술에 있어 예술가의 자유로운 활동보다는 규칙을 더 많이 강조했던 것 등은 의미심장한 문제다.

역사가의 여러 관심사 속에 있는 이(열두 번째) 이원성 때문에 미학사는 다음과 같은 두 노선을 걸어왔다. 하나는 미학적 사상의 발견 및 전개의 역사요, 다른 하나는 그것을 수용하는 역사, 즉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고 수세기동안 유행했던 미학적 개념과 이론들을 탐구하는 일이다.

미학은 여러 갈래 길을 걸어왔고 역사가는 그 모두를 따라가야 한다.

출처

제공처 정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1700년대까지에 이르는 유럽 미학의 전개를 포괄적으로 다룬 <타타르키비츠 미학사> 전 3권(고대 미학, 중세 미학, 근대 미학)을 완역했다.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변천해온 여러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해주고 이를 통해 미학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다. 타타르키비츠는 고대.중세.근대라는 세 시기의 미학을 아우르면서 미와 예술에 대해 시대를 넘나든다. 뿐만 아니라 각 시대의 원전들에서 발췌한 인용문으로 자신의 글을 예증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저자는 각 용어의 정착과 변형과정을 살피며 역사 속에서 미학이 어떻게 성립되어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 저자 W. 타타르키비츠 철학자, 미학자

    폴란드 바르샤바 출생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이며 미술사가. 1910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19~23년을 제외하고는 1915~61년 바르샤바 대학에서...자세히보기

  • 옮김 손효주

    1958년 부산 출생.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미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역서로 『미학의 기본개념사』(...자세히보기

  • 제공처 미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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