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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가 350억을 주고 산 노트

손경형 2019. 4. 2. 18:39
시리즈*** 레오나르도 다빈치

#7 빌 게이츠가 350억을 주고 산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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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1.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오랜 전통의 공증인 가문 자손답게 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 관찰한 내용, 목록, 아이디어, 스케치를 기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노트를 작성하는 습관은 1480년대 초 시작되어 평생에 걸쳐 이어졌다.

일부는 타블로이드 신문 크기 만한 낱장 종이에 기록되었다. 다른 일부는 가죽이나 양피지 커버를 씌운 책 형태로, 크기는 문고본 정도이거나 그보다 작았다. 그는 이런 노트를 밖에 들고 다니며 사용했다.

다빈치의 노트(코덱스) ©서울문화투데이

이런 노트의 목적 중 한 가지는 흥미로운 장면, 특히 사람과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말하거나 다투거나 웃거나 주먹질하는 사람들의 상황과 행동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메모하고 거기에 대해 고민하라.”

<다섯 개의 머리> (1494년 작)

다양한 아이디어를 기록하면서 레오나르도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지발도네라는 비망록 겸 스케치북을 작성하는 관습을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레오나르도의 노트는 세상이 그 이전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목격하지 못한 종류였다. 그의 노트는 종이에 기록된 것 중에 인간의 가장 놀라운 관찰력과 상상력의 증거라 불리는 것이 당연하다.

레오나르도와 관계된 일은 늘 그렇듯, 여기에도 수수께끼 같은 요소가 존재한다. 그는 페이지에 날짜를 거의 적지 않았고 대부분은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그가 죽은 후 많은 노트들이 해체되었고, 흥미로운 페이지들은 판매되거나 다양한 수집가에 의해 새로운 코덱스로 엮였다.

빌 게이츠 덕분에 '코덱스 레스터'는 역사상 가장 비싼 고서적이라는 기록을 가졌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코덱스 레스터’는 주로 지질학과 물에 관한 연구를 다룬 72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코덱스 레스터’라는 이름은 1717년 이 노트를 구입한 레스터 백작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후 1980년에 기업가 아먼드 해머에게 판매되어 ‘코덱스 해머’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994년 빌 게이츠가 350억 원(3천 만 달러)에 이 노트를 구입해 현재까지 소장하고 있다. 아먼드 해머만큼 자의식 과잉이 아니었던 빌 게이츠는 이 노트를 다시 ‘코덱스 레스터’라 불렀다.

72쪽의 코덱스 레스터는 지질학, 천문학, 수력학에 관한 긴 글과 360개의 그림으로 빼곡하다. 레오나르도는 특히 관찰 기록, 발명품, 프로젝트, 그림, 우주와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 등 유체역학을 다양한 층위에서 다룬 내용을 적었다. 유체역학은 인간의 몸을 제외한다면 레오나르도가 예술적, 과학적, 공학적 관심을 가장 많이 기울인 분야다.

그의 목표는 인체의 작동 원리와 행성들의 이동 원리, 동맥 속 혈액의 흐름과 지구가 품은 강물의 흐름 등 우리의 우주를 지배하는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건 레오나르도 자신을 비롯한 르네상스 사상가들이 뒤따라오는 과학과 계몽의 시대에 물려준 목표와 일치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포함된다.

왜 산에서 샘물이 솟는가?
왜 골짜기가 존재하는가?
무엇이 달을 빛나게 하는가?
어떻게 산에 화석이 생기는가?
무엇이 물과 공기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가장 상징적인
질문 하나.

왜 하늘은 파란가?
'코덱스 레스터' 속 페이지 여백에 남긴 물살 스케치. 과학적 호기심과 예술적 기교가 결합되어 있다.

코덱스 레스터를 통해 우리가 레오나르도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지성인은 자기 생각을 바꾸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코덱스 레스터를 쓰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소우주와 대우주의 유사성을 자신의 틀로 사용했다. ‘소우주-대우주 유사성’은 레오나르도가 1490년 대 초부터 관심을 기울인 주제로 인간의 몸(소우주)과 지구의 몸(대우주)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지구와 물 연구에 매진하던 1500 년대 초, 그는 소우주-대우주 유사성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증거와 맞닥뜨렸다. 다양한 이론들을 경험에 비춰 살펴본 뒤에야 레오나르도는 올바른 해답에 도달했다. 기꺼이 그는 자신의 이론과 경험이 충돌하자 새로운 이론을 세웠다. 이것은 레오나르도의 가장 멋진 모습인데, 그가 코덱스 레스터를 작성하는 동안 겪은 진화를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자신의 선입견을 포기할 줄 아는 마음가짐은 레오나르도가 가진 창의성의 비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