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은 타고날까, 만들어질까?
성격은 타고날까, 만들어질까?
흔히 "저 친구는 성격이 문제야"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일시적이라고 보이지 않거나, 특정한 사람이나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관찰되거나, 누구를 만나든 그의 태도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문제가 될 때 '성격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런데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A형이라서 소심하다거나 AB형이라서 까칠하다는 둥 타고난 체질을 강조하기도 하고,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성질이 저 모양이야?"라며 자라면서 겪은 경험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좋은 성격은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부러움을 사며, '좋은 집안에서 잘 자라난 인격체'로 부모까지 칭찬받는다. 그러나 나쁜 성격일 경우 체질과 경험에 모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데, 도대체 무엇이 먼저인지 궁금해진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같은 답이 없는 문제는 아니지만, 이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점이 많다.
성격이란 무엇인가?
성격이란 '정체성의 핵심을 형성하는 생각, 판단, 감정 반응의 패턴으로,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지속되며 어떤 환경에든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외부 환경과 내적 시스템 사이에서 끊임없이 타협한다. 그 결과, 개인적으로 가장 편안하고 잘 흘러간다고 느끼게끔 생각하는 법이나 생리적 반응이 완성된다. 그러면 언제, 어디에서건 1차적으로는 그 방식대로 반응하게 되며, 상황에 따라 이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여기면 이를 잠시 숨기고 2차적으로 준비된 레퍼토리를 사용한다. 이는 일시적이고 한정적인 상황에만 사용하는 카드이지, 마스터키는 아니다. 즉, 사람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마스터키를 지닌 채, 상황에 따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열쇠를 들고 다니는 열쇠 수리공과 같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든 대인관계의 문을 열기 위해 무조건 마스터키부터 집어넣고 보는 사람이다. 이와 달리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사람은 마스터키는 갖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어떤 열쇠를 꺼내서 사용할지 잘 아는 사람이다. 마스터키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라도 일시적으로 다른 열쇠를 쓰는 데 별로 주저하지 않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성격이란 기본적으로 지닌 다양한 세트가 있으며, 가장 먼저 꺼내 쓰도록 지정되어 있는 방어 기제, 생각의 패턴, 반응법, 감정 반응의 모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격은 10대부터 서서히 형성되어 20대에 대부분 완성되고 그 후로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성격이나 태도가 많이 다르다고 느끼지만, 고등학교나 대학교 친구는 60세에 만나도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삶에서 경험하는 사건도 10대 중·후반까지는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30세가 넘어서 경험하는 사건은 증상을 만들거나 삶에 굴곡을 만들 수는 있지만 성격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한다.
타고난 기질적 특성
성격 구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기초 토대가 되는 성질을 살펴보자. 흔히 "그놈 성질머리 하고는······"이라든가 "성질이 더럽다"는 말을 하는데, 성질은 왠지 고쳐지기 어려운 타고난 면처럼 느껴진다.
성질이란 말은 성격에 비해 타고난 생물학적 바탕을 강조하는데, 이 두 가지는 아주 예전부터 본성과 양육(nature vs. nurture) 논쟁을 일으켰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n)은 5가지 성격 유형을 나누면서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독자적인 타고난 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정신 병리학자 크레치머(Ernst Kretschmer)도 사람의 생김새와 골격형으로 성격 유형을 나누었는데, 우리나라의 관상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현대에는 코스타(Costa)와 맥크래(McCrae)의 5가지 성격 특성 요소(Big five personality traits)가 유명하다. 그는 성격 요소에 신경성, 외향성, 개방성, 친화성, 성실성의 5가지 유형이 있으며, 이는 타고난 것이어서 자라면서 경험하는 것과는 독립적인 기질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쌍둥이 연구와 같은 유전생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기질적인 특성은 태어날 때부터도 관찰된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토머스(A. Thomas)와 체스(S. Chess) 부부는 1950년대 뉴욕에서 태어난 갓난아기들의 움직임, 안겼을 때의 반응의 민감성, 리듬, 초기 반응, 산만함, 수면의 안정성, 집중력의 유지 시간 등 9가지 변수를 측정했다. 까다롭고 짜증을 자주 내거나 우는 까다로운 기질(10퍼센트), 정상적인 식습관과 수면 습관을 갖고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순한 기질(40퍼센트),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늦고 활동량이 적지만 익숙해지면 서서히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느린 기질(15퍼센트)로 아이들의 65퍼센트를 분류할 수 있었다.
그 후로 10여 년간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추적 관찰했고, 놀라운 결과를 도출해 냈다. 10대 중반이 되어도 갓난아기 때 분류한 기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소간의 성격 차이는 있었지만, 까다로운 아이는 여전히 까칠하고 예민했으며 공격적인 면이 있는 아이로 자라났고, 순한 아이는 배려심이 있지만 소심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하고 내성적인 아이로 자라났다. 기질적 특성은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환경이 미치는 영향
자라면서 경험하는 환경의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수많은 교육학자나 정신 분석가는 어릴 때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프로이트는 태어나서 네다섯 살 때까지의 기억이 인생을 결정한다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로크(John Locke)1)는 더욱 급진적이어서, 누구나 똑같은 빈 서판(tabular rasa)을 갖고 태어나며 그 위에 무엇을 쓰느냐가 중요하지 토양은 기본적으로 같다고 가정했다. 이후에 행동학자 스키너는 파블로프를 계승해서 인간의 행동은 학습되며 어떤 조건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를 확정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 외에도 반두라(Albert Bandura)의 사회 학습 이론2), 에릭슨(Erik Erikson)의 발달 이론3) 등도 인간의 환경을 중요시한다.
타고난 면과 자라면서 경험하는 사건은 성격 형성에 모두 중요하다. 만약 타고난 기질이 같다면 똑같은 삶을 살게 될까? 환경도 같고 경험하는 것도 같다면 그럴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사주팔자, 혈액형, 유전자마저 100퍼센트 같은 일란성 쌍둥이이면서, 평생을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결합 쌍둥이인 이란의 랄레흐, 라단 비자니 자매가 있었다. 이들은 29세가 되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분리 수술을 결정했다. 두 사람은 "우리는 세계관도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다르며,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다"라고 말했다. 한 명은 테헤란으로 건너가 기자가 되고 싶었고, 다른 한 명은 고향에 남아 변호사가 되고 싶어 했다. 유전자뿐 아니라 생활까지 똑같이 해 왔는데도 두 사람은 성격도, 생각도, 인생의 목표도 달랐다. 그래서 서로 다른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죽음을 무릅쓰며 수술을 결정한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수술을 받던 자매는 결국 사망하고 만다. '나만의 개성'을 추구하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은 죽음을 무릅쓸 정도로 강한 것이다.
그렇다면 유전자가 같고 자라난 환경이 다른 경우에는 어떨까? 1979년 미국 오하이오 주 서부 출신의 일란성 쌍둥이 남자 형제가 각각 다른 집에 입양되었다가 40세에 재회했는데, 헤어스타일을 제외한 목소리와 얼굴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닮았다. 병력도 비슷해서 고혈압과 치질, 편두통이 있었고 좋아하는 담배 브랜드도 같았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 모두 개조한 자동차로 경주하는 것이 취미였고, 야구를 싫어했다. 두 사람 모두 목공소를 운영하며, 좋아하는 휴가지도 같고, 애완견 이름도 토이였다. 게다가 린다라는 여성과 이혼하고 베티라는 여성과 재혼한 것도 같았다.
유전자가 같은 상태에서 독립적으로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오면 1차적인 선택은 같을 수 있다. 비자니 자매는 개성을 추구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기질적인 선호도와 부딪치면서 자신만의 것을 선택했고,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유전자가 100퍼센트 같아도 서로 다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생존을 위해 남들을 따라 하는 순응 욕구가 강한 동시에 사회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경쟁자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화·발전하려고 다르게 행동하는 '차이에 대한 욕구'도 끊임없이 작동한다. 이런 차이는 두뇌, 시냅스(Synapse)4), 유전자의 차이를 만들어 내게끔 촉구한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자신만의 개성을 형성한다. 결국 인간에게 환경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행위자가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영향들의 독특한 구성물이다. 특정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특정한 환경을 경험하고 선택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꼭 그 환경을 선택한다고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텃밭에 심는 것과 가꾸는 방법, 그해에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나는 등의 외적 경험이 인간 농사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격은 타고날까, 만들어질까?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2012. 6. 30., 하지현, 신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