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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29일 9주년… 생존자 김택중씨 증언, 그후 또???

손경형 2011. 6. 29. 11:45

 

"9년 전 상처 아직도 선명, 희생장병 잊지 말아주세요"<세계일보> 
제2연평해전 29일 9주년… 생존자 김택중씨 증언
 
 
  • 9년 전 몸에 박힌 파편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살을 에는 파편에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그날’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흐릿해지고 있다.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살아 남은 김택중(31·사진)씨에게 그날은 끔찍하도록 생생하다.

    김씨는 참수리 357호의 막내 병사였다. 원래는 식사 당번이어서 함정을 타지 않고 연평도 기지에 있었는데, 곧 전역할 선임병을 대신해 일을 배우러 올라탔다. 그날이 하필이면 6월29일이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은 북한 함정의 출몰 등으로 하루에도 서너번씩 긴급 출동 명령이 떨어진다. 그날도 북한 함정이 남한 해역으로 넘어오려 해 참수리 357호가 출동했다. 그런데 북한군의 반응이 다른 때와 달랐다. 평소처럼 바로 선체를 되돌리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접근해왔다.

    “총을 든 북한 병사 얼굴이 두 눈에 보일 만큼 가까이 왔어요.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에서 (포탄) 불꽃이 쏟아졌습니다. 전쟁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었죠.” 참수리호 선체 위로 포탄이 마구 날아왔고, 수류탄 상자에서는 화염이 피어올랐다.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누군가 ‘야 이 새끼야, 빨리 소화기 찾아와 소화기!’라고 고함을 쳐 바로 선체 내부로 달렸다. 배 안은 연기로 가득 차 있었고, 바닥에선 핏물이 출렁거렸다. 순간 뜨거운 느낌이 온몸을 짓눌렀다. 포탄을 맞아 부서진 선체 파편이 그의 몸을 뚫고 들어온 것. 30분도 안 돼 전우 6명이 목숨을 잃었고, 참수리호는 침몰했다.

    김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다른 생존자들과 마찬가지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 생존자들은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정부와 군은 무심했다. 김씨는 국군 수도병원에서 10여일을 보내고 평택 의무대로 옮겨진 뒤 한 훈련에 동원됐다. 제2연평해전 이후 의무대에서 갑자기 생긴 ‘부상자 치료 훈련’이었는데 ‘진짜 부상자’였던 김씨가 동원된 것. “저도 처음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부상자 역할을 하고 있자니 못 참겠더라고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놀란 의무대장은 부랴부랴 김씨를 훈련에서 뺐다.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김씨 등 부상병들은 그해 8월, 침몰 52일 만에 인양된 참수리호에 다시 올라야 했다. 곧 일반에 공개될 배를 청소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달 정도 청소를 했는데 배에 탈 때마다 악몽 같았던 그날이 생각났죠. 다들 ‘미치겠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인데….”

    참수리호 모형 관람하는 어린이들 2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경비함정의 기습 공격을 받고 침몰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 모형을 관람하고 있다. 빨간색 원은 북한 경비함정이 쏜 기관총탄 자국을 표시한 것이다. 29일 오전에는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제2연평해전 9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이제원 기자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김씨는 제대 후 2006년 전라북도 교육행정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토목전문가로 거친 현장을 누비고 싶었던 꿈은 부상 탓에 물거품이 됐다. 허리와 엉덩이 쪽에 박힌 파편은 신경을 건드릴 위험이 커 제거하지도 못했다. 일부러 행정직을 택했지만 그마저도 힘이 달려 올 초 휴직을 신청했다. “오래 걸으면 다리가 저리고 쉽게 피곤해져서 일을 계속할 수 없었어요.”

    9년이 흘렀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참수리 357호를 벗어나지 못한다. 김씨는 사람들이 그날을 잊을까 두렵다고 했다. 전국에 46명의 용사를 위한 분향소가 설치됐던 천안함 사건 추모열기를 지켜볼 때는 못내 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천안함 장병들도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지만 제2연평해전 희생 장병들은 말 그대로 ‘전투’를 치렀는데….” 당시 국민은 월드컵 열기에 파묻혔고, 전사자 유족들은 ‘목숨 값’으로 3000만원을 받았을 뿐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2008년부터 서해교전에서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돼 정부 행사가 치러진다는 것.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나라를 지키다 죽은 사람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정읍=이유진 기자 heyday@segye.com

 

북한 해안포, 연평도 NLL 근처에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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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0일 오후 1시쯤 연평도 동북쪽 NLL, 즉 북방한계선 근처에 북한군의 포탄이 떨어져 우리군이 대응사격을 했습니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이 북측 용매도에서 해안포 훈련을 하는 도중 해안포 3발을 발사했고 그 가운데 한발이 NLL 근처에 떨어졌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군은 1시 25분쯤 북측에 경고통신을 하고 2시쯤 K9 자주포로 3발의 대응사격을 했습니다.

당시 포탄이 떨어진 해역에는 조업중인 어선이 없어서 민간인 피해는 없었다고 합참은 설명했습니다.

합참은 북한군이 의도적으로 NLL을 향해 포 사격을 한 것인지 실수로 NLL 근처로 포탄이 떨어진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종편집 : 2011-08-10

 

김태훈 기자

김태훈 기자

 

 

이 기자가 쓴 다른 기사한·미, 6·25 유해발굴 협력 세부규정 합의

편집자주

부동산 시장과 건설업계를 담당하는 김태훈 기자는 2003년 SBS로 자리를 옮겨 사회부 사건팀을 거쳐 경제부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대운하 사업과 4대강 살리기 등 논란이 많은 이슈들에 대한 치밀한 취재로 시사성 높은 기사들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당하고도… 西北도서 요새화 ‘엉망’

부실한 자재로 진지 구축… 시뮬레이션도 허위 진행

문화일보 | 박준희기자 | 입력 2011.09.06 12:01

 

지난해 연평도 포격 도발사건 이후 군이 진행 중인 '서북도서 전력화사업'의 자주포 진지 구축 사업이 부실하게 진행되는 등 북한의 자주포 공격 등을 막아내기 어렵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은 6일 '비위첩보 기동점검'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서북도서 전력화사업을 담당한 군무원 A씨 등 2명 및 군 간부 B씨 등 총 3명에 대해 징계처분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A씨 등이 규격에 어긋나는 자재를 이용해 방호진지를 설계하고 허위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자주포 방호진지의 안전성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방시설본부는 지난해 11월 발생한 연평도 포격 도발사건을 계기로 연평도와 백령도 등 서북도서 일대에서 K-9 자주포 방호 진지 등을 구축하는 서북도서 전력화사업 시설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공사는 6개월이 소요되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보다 공사기간을 3개월 단축할 수 있는 파형강판(강판의 강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파형으로 가공된 강판) 구조물로 구축되고 있다.

그러나 군무원 A씨 등은 기존 규격과 달라 강판 이음부의 강도 등 제품 성능이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400㎜×150㎜' 규격의 파형강판을 사용해 구조물을 설계하도록 했다. 현재 국방부의 '국방·군사시설기준'에 따르면 군시설에 사용할 수 있는 파형강판의 규격은 '150㎜×50㎜'와 '380㎜×140㎜' 등 두 가지뿐이다.

특히 이번 공사는 계약금액이 284억여원에 달해 특별건설기술심의위원회의 심의대상이고, 이 과정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구조물이 폭탄 공격에 안전한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A씨 등은 '400㎜×150㎜' 규격 파형강판은 강도 등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150㎜×50㎜'와 '380㎜×140㎜' 규격의 파형강판을 시공한다는 전제의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그 결과 K-9 자주포 방호진지의 경우 '500파운드 폭탄 12m 근접 폭발' 조건에는 파형강판 두께가 5㎜ 이상, '122㎜ 방사포 직격' 조건에는 7㎜ 이상이 되어야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번 공사의 실제 설계에서는 두께 4㎜ 강판을 사용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K-9 자주포 방호진지의 시설기준에 어긋나는 규격으로 설계돼 적정한 방호가 곤란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또 "당초 설계는 시설기준에 어긋나는 400㎜×150㎜ 규격의 파형강판으로 설계돼 있어 근본적으로 시뮬레이션을 실시할 수 없었던 점 등을 볼 때 A씨 등의 행위들은 시설기준에 어긋나는 특정 업체 제품(400㎜×150㎜ 규격의 파형강판)을 위 공사에 사용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국방부 장관에게 이들을 징계처분하라고 통보했다.

박준희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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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 1년… 피흘린 청춘들의 눈물] 나라 지키다 미래 잃은 청춘… 취업·재활 집중 지원을
부상병 보훈정책 달라져야… "군복무 중 부상당해도 戰時에 준하는 배려해야 그래야 애국심 만들어져"
조선일보|조의준 기자|입력 2011.11.22 03:23|수정 2011.11.22 10:41
 
 
오는 23일 북한 의 연평도 포격 사태 1주년을 계기로 정부와 우리 사회가 국가를 지키다 몸을 다친 부상병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부상병들에게 상이(傷痍) 등급 판정을 내리고 보상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재활과 취업을 도와주고 사회 전체가 이들을 예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이 등급 재심 요청 많아

↑ [조선일보]

↑ [조선일보]작년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당시 부상당한 해병대원들은 아물지 않는 상처로 고통받고 있었다. 김진권(왼쪽)씨는 파편을 맞아 위장 기능의 3분의 2를 잃었으며, 골반 뼈를 이식해 복구한 발은 발등 부분이 움푹 파였다(가운데). 맨 오른쪽은 오른쪽 다리에 파편 3개가 박히는 부상을 당한 서재강씨.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보훈처는 연평도 사태로 다친 부상병 4명에게 상이 등급 5~7급을 부여하고 평생 5개 보훈병원과 300여 위탁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상병과 가족은 정부의 등급 판정과 사회의 무관심에 불만을 갖고 있다. 부상자 가족 대표를 맡았던 김지용 상병의 아버지 김영식씨는 "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이 위로를 하며 최고 예우를 해준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며 "아들에 대한 (한 달에 34만2000원을 보상받는) 7급 판정이 낮아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고 말했다.

연평부대 정비소대에 일병으로 복무한 김진권(21)씨는 포탄 파편을 맞은 후 휠체어를 타고 있다. 경북 경일대 산업물류학과 1학년 휴학 중이지만, 복학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김씨는 "졸업 후 자동차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걷기도 힘든 처지라서 꿈을 접어야 할 것 같다"며 "제대로 나라 지키려고 해병대에 가서 입은 부상이니 후회는 하지 않지만,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 차장을 역임한 김종성 우송대 의료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의 부상병 예우는 아직도 많이 발전시켜야 한다"며 "특히 직업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시설에서 특수 훈련을 받아 '맞춤형 재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연평도 포격 사태를 당한 이후 대학으로 복귀한 이들에게는 수업료를 일부 면제하고 학습 보조비를 주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대 윤리교육과 박효종 교수는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다친 경우 학업, 취업, 재활에 대해 국가가 완전히 책임지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 격상도 고려해야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북한의 직접적인 도발 사태로 군인이 전사하거나 부상한 경우가 많지 않은데도 1인당 GDP가 2만달러인 나라에서 이들에 대한 충분한 예우가 되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군 복무 중에 부상한 경우에는 전시에 부상한 경우에 준해서 치료와 재활에 관한 사회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며 "특별히 상이군인을 배려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자발적 애국심'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국가보훈학회를 만든 유영옥 경기대 교수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보훈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해 국무회의에 매회 참여하게 해서 전사자, 부상병과 관련한 강력한 발언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 현재 7등급으로 분류된 부상 판정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처럼 14등급으로 세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상병들의 꿈을 살려주고 보듬기 위한 논의가 정치권에서 먼저 시작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적절한 대우가 애국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며 "여야가 한·미 FTA 문제로 대치할 것이 아니라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당시 부상당한 해병대원들은 아물지 않는 상처로 고통받고 있었다. 김진권(왼쪽)씨는 파편을 맞아 위장 기능의 3분의 2를 잃었으며, 골반 뼈를 이식해 복구한 발은 발등 부분이 움푹 파였다. /남강호 기자 kang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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