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대형 총기 난사 사건
총기사고 전날 같은 사단 이병 외박 나와 자살… 해병대, 가혹행위 여부 조사
이달 4일 해병대 2사단 강화군 해안소초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 같은 사단 소속 사병 1명이 외박을 나왔다가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7일 경기 안성경찰서에 따르면 3일 낮 12시 40분경 안성시 죽산면의 한 상가건물 계단에서 해병대 2사단 소속 A 이병(23)이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상가 이용객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A 이병이 자살한 것으로 보고 해병대 헌병대에 사건을 인계했다. A 이병은 외박을 나와서 주변 친구들에게 부대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 이병이 남긴 유서에는 개인 신병을 비관하는 내용이 있을 뿐 부대생활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병대 측은 A 이병 자살과 관련해 부대 내 가혹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 중이다. 군 관계자는 "일단 유서에는 부대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
안성=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내무반 막내 이병이 난사하는 총기 잡고 문 밖으로 밀쳐내 더 큰 희생 막았다
해병 총기 난사 4명 사망… 이 와중에 영화같은 사투 조선일보 |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
↑ [조선일보]
◆ 사건 상황과 경위
해병대 1차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 상병은 새벽까지 야간 경계근무를 마친 병사들이 잠을 자고 점심을 먹기 위해 일어나기 직전 생활관(내무반)에서 K-2 소총으로 15발가량(탄창 1개)을 난사했다. 그는 생활관에서 잠자고 있던 권승혁(20) 일병을 향해 총을 쏜 뒤 그 옆에 있던 박치현(21) 상병과 이승렬(20) 상병을 차례로 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상황실 근무를 서다가 총성을 듣고 뛰쳐나온 이승훈 하사를 쏜 뒤 자신을 제지하던 권혁(19) 이병도 쏜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시신을 확인한 유가족들은 "사망자들 가슴 부위에 치명적 총상이 있는 점으로 미뤄 김 상병이 자고 있던 소초원들 중 자신이 쏠 사람을 정해서 조준사격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상병은 이후 생활관을 뛰쳐나와 창고에서 수류탄 1발을 터뜨려 자신도 부상당했다.
해병대 사령부 관계자는 "김 상병은 이날 오전 10시쯤 낮 경계 근무자가 교대할 때 소총을 보관하는 상황실에서 소총과 탄약을 훔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총기 및 실탄, 수류탄 관리 허점이 확인된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소초는 강화도 해안경계가 주 임무로, 평소 소대장을 포함해 30여 명이 근무를 하고, 사건 발생 당시 생활관에는 10여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직후 사망자는 3명이었으나 박 상병이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 뒤 숨져 4명으로 늘었다.
사망자들의 시신은 헌병대의 현장조사가 끝난 뒤 이날 오후 수도병원으로 후송됐으며, 부상한 권 이병도 수도병원으로 향했다. 권 이병은 김 상병이 내무반에서 총을 쏠 때 김 상병의 총기를 붙잡아 문 밖으로 밀쳐내고 안에서 문을 잠그는 과정에서 오른쪽 허벅지 안쪽과 바깥쪽에 총탄 2발을 맞았다. 군 소식통은 "권 이병이 몸을 아끼지 않고 김 상병을 막아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범행 동기는 가혹행위?
군 당국은 일단 김 상병이 군내 가혹행위나 따돌림 등 군 기강 문제와 관련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지난해 7월 입대한 김 상병은 전역을 9개월 정도 남겨놓고 있었다. 군 소식통은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김 상병이 후임병들에게 무시당했던 것이 사건 원인 중 하나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군 당국이 소초원들에게 진상조사를 한 결과 평소 김 상병이 후임이었던 권 일병에 대해 자격지심을 가져왔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김 상병은 전입 이후 소대장과 수차례 면담하면서 군 생활 적응 문제로 고민해 왔다.
군내에선 지난달 해병대사령부를 모체(母體)로 한 서북도서방위사령부가 창설되는 등 해병대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지만 각종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해병대 총기난사, 2005년 GP 총기난사와 닮은꼴
2011-07-12
지난 4일 발생한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은 지난 2005년 ‘감시초소(GP) 총기난사 사건’과 원인과 사후대책, 상황이판박이처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같은 사건이 6년 간격으로 재발했다는 것과 관련해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못한’ 군 당국의 안이한 대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GP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김동민 일병과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김모(19) 상병은 둘다 부대에 적응하는 데 힘들어하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사건 당시 군 당국의 최대 이슈가 국방개혁이란 점도 닮아 있다. 특히 사건 이후 내놓은 대책마저 똑같아 땜질식 대처방안이 아닌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5년 6월 발생한 GP 총기난사 사건 때 김 일병은 부대 적응에 힘들어하는 데도 GP에 배치됐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군의 다면 인성검사 결과 부적응 병사로 나왔는 데도 GP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김 상병 역시 신병교육대 인성검사에서 정신분열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부대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 모두 실탄으로 무장한 경계근무에 투입됐다.
군 당국이 사건 수습책으로 내놓은 인성검사 강화란 대안도 흡사하다. 해병대는 사고 후 신병교육 5주차 때 인성검사를 해 부대생활 적격 판단을 신병훈련단장(준장)이 내리기로 했다. GP사건 때도 군은 “신교대의 신병을 정밀 관찰해 정신·육체적 결함이 드러나면 현역 복무 부적합으로 판정하겠다”고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국방개혁을 추진 중일 때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도 같다.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한 국방개혁 2020을 시행했고, 현재 김관진 장관은 통합성 강화를 통한 강군양성을 목표로 국방개혁 307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점도 있다. 2005년 사건 때는 발생 사흘 만에 윤 국방장관이, 닷새 뒤 6군단장(중장)이 책임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가 반려됐지만, 이번 사건에는 책임지겠다고 나선 해병대 고위 관계자는 없었다.
2005년 당시 약 한 달 뒤 사단장과 군단장에게 감봉 3개월 징계처분이 내려졌던 만큼, 이번 사건의 문책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장석범기자 bum@munhwa.com
해병대 총기난사, 2005년 GP 총기난사와 닮은꼴
2011-07-12
지난 4일 발생한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은 지난 2005년 ‘감시초소(GP) 총기난사 사건’과 원인과 사후대책, 상황이판박이처럼 닮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같은 사건이 6년 간격으로 재발했다는 것과 관련해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못한’ 군 당국의 안이한 대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GP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김동민 일병과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김모(19) 상병은 둘다 부대에 적응하는 데 힘들어하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사건 당시 군 당국의 최대 이슈가 국방개혁이란 점도 닮아 있다. 특히 사건 이후 내놓은 대책마저 똑같아 땜질식 대처방안이 아닌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5년 6월 발생한 GP 총기난사 사건 때 김 일병은 부대 적응에 힘들어하는 데도 GP에 배치됐다는 주장이 나왔었다. 군의 다면 인성검사 결과 부적응 병사로 나왔는 데도 GP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김 상병 역시 신병교육대 인성검사에서 정신분열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부대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 모두 실탄으로 무장한 경계근무에 투입됐다.
군 당국이 사건 수습책으로 내놓은 인성검사 강화란 대안도 흡사하다. 해병대는 사고 후 신병교육 5주차 때 인성검사를 해 부대생활 적격 판단을 신병훈련단장(준장)이 내리기로 했다. GP사건 때도 군은 “신교대의 신병을 정밀 관찰해 정신·육체적 결함이 드러나면 현역 복무 부적합으로 판정하겠다”고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국방개혁을 추진 중일 때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도 같다. 당시 윤광웅 국방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한 국방개혁 2020을 시행했고, 현재 김관진 장관은 통합성 강화를 통한 강군양성을 목표로 국방개혁 307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점도 있다. 2005년 사건 때는 발생 사흘 만에 윤 국방장관이, 닷새 뒤 6군단장(중장)이 책임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다가 반려됐지만, 이번 사건에는 책임지겠다고 나선 해병대 고위 관계자는 없었다.
2005년 당시 약 한 달 뒤 사단장과 군단장에게 감봉 3개월 징계처분이 내려졌던 만큼, 이번 사건의 문책이 어디까지 미칠지 주목되고 있다.
장석범기자 bu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