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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묻힌 살인사건, 유골 없이 범인 셋 잡았다

손경형 2011. 8. 8. 11:28

 

[단독] 11년간 묻힌 살인사건, 유골 없이 범인 셋 잡았다

주범, 자백 직후 사망… 공범 한명 추가 자백으로 수사 급물살

조선일보 | 강동철 기자 | 입력 2011.08.08

 

 

 

11년간 미제 사건으로 묻혀 있다 경찰의 끈질긴 수사로 지난 4월 사건 전모가 밝혀진 강천실업 강모씨 살해 암매장 사건의 범인들이 구속됐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2000년 11월 강천실업 강 사장을 폭행해 죽이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서모(51)씨와 김모(47)씨를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수사 과정에서 새로 드러난 공범 김모(53)씨는 불구속 입건했다. 살인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인 시신을 찾지 못했음에도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조선일보]

경찰은 지난 4월 12일 위암으로 경기도 용인 의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던 주범 양모(59)씨를 찾아냈다. 양씨는 경찰의 추궁에 "아직도 눈을 감으면 (살해한) 사장님 얼굴이 떠오른다. 죄송하다"며 자기가 직원들과 공모해 강 사장을 죽였다고 진술했다. 양씨는 그러나 자백한 뒤 8일 만에 사망했다.

경찰은 양모씨의 자백에 따라 서씨와 김씨를 검거했으나 이들은 강 사장을 죽였다는 양씨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서씨와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양씨가 사장을 죽인 건 맞지만 우리는 시체만 옮겼을 뿐 죽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들이 강도살인의 경우 공소시효가 15년이지만, 시체 유기는 공소시효가 5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고 허위 진술을 하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숨진 주범 양씨의 진술을 토대로 강씨의 시신을 찾고자 한 강원도 영월 일대 야산 수색은 실패했다.

검찰은 서씨와 김씨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2차례나 기각하면서 "시체를 찾든지, 증거를 더 보강하라"고 지시했다. 주범 양씨가 숨지고 공범들은 입을 다물어 버린 상황에서 사건은 또다시 미궁 속으로 빠질 위기였다.

그러나 이 사건 범인들이 구속됐다는 보도를 본 공범 1명이 자수하면서 수사가 활기를 띠었다. 김모(53)씨는 지난 5월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저도 공모해서 사장님을 죽였습니다"고 범행을 자백했다. 신병 확보에 나선 경찰은 김씨로부터 "양씨뿐만 아니라 망을 보던 나를 비롯해 모두 합세해 사장을 이불로 감싸고 발과 주먹으로 마구 폭행해 죽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씨는 또 "사장이 숨진 뒤 나는 양씨의 지시로 사장의 그랜저 승용차를 경기도 의정부 지역에 버리러 갔고, 양씨와 서씨, 김씨 등 나머지 3명은 시체를 강원도 영월의 한 야산에 파묻었다"고 진술했다.

김씨의 증언을 확보한 경찰은 지난 7월 서씨와 김씨에 대해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지난달 24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이들이 강 사장을 죽이고 금품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가 정황적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새롭게 나타난 공범 김씨는 중풍 환자인 점이 참작돼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은 여전히 강 사장의 백골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2명을 구속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 백골을 찾기 위해 강원도 영월 일대 야산을 이 잡듯이 샅샅이 수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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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미수 갱단 교포, 14년간 강남 영어강의

국내 도피뒤 신분세탁 SAT어학원 설립·운영

문화일보 | 음성원기자 | 입력 2011.08.08

미국 갱단 출신의 1급 살인미수 혐의자가 국내에서 제3의 인물로 '신분세탁'을 한 뒤 서울 강남의 부유층 자제들을 대상으로 무려 14년간 영어학원을 운영해 오다 경찰에 검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해외이주자의 명의로 위장한 그는 34차례나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2대는 8일 미국에서 1급 살인미수 혐의를 받고 국내로 도피한 뒤 제3자로 신분세탁해 강남에서 어학원을 운영해 온 김모(33)씨와 김씨를 도와 함께 어학원을 운영한 강모(36)씨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교포로 17세 때인 지난 199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필리핀계 갱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갱단과 경쟁관계에 있던 멕시코계 갱단 2명을 향해 권총을 쏴 LA경찰국으로부터 1급 살인미수 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었다.

김씨는 수배 직후 한국으로 들어온 뒤 2008년 12월부터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미국 수학능력시험(SAT)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I어학원을 운영하면서 강씨와 함께 연간 1억5000만원씩 벌어들였다.

이 학원은 특히 부유층 자제들만을 대상으로 폐쇄적으로 운영돼 초·중·고교생 약 50명을 대상으로 최하 월 100만원 상당의 강의료를 받고 운영돼 왔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와 강씨는 각각 미국에서의 학력이 고졸에 불과하면서도 김씨는 UCLA대, 강씨는 샌디에이고 주립대를 졸업했다고 홍보했고, 교육청에 등록하지 않은 무자격 영어강사를 고용해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을 통해 허술하게 이뤄진 국내 주민등록 과정의 문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김씨는 국내 지인의 도움을 받아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한 이모(31)씨가 국내에 거주하던 마을 사람으로부터 김씨와 이씨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도록 하는 허술한 확인 절차만으로 이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이씨 명의로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등을 발급받아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학원 운영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중국·태국·홍콩 등 해외여행을 무려 34회나 다녀오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을 공무집행방해나 학원법 등 국내법에 의해 처벌할 경우 처벌 수위가 경미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미국의 범죄인 인도요청이 올 경우 법무부의 판단에 따라 미국에 송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음성원기자 es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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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살인을 저지르고도 유유히 국내를 빠져나갔다

서울신문 | 입력 2011.08.08

 

[서울신문] #지난해 말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옥탑방. 40대 중국인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흉기에 수차례 머리를 맞은 게 결정적인 사인이었다. 범인은 범행 현장에 튄 피를 걸레로 닦고 신발 자국도 지웠다. 피가 묻은 모자는 물에 담가 유전자정보(DNA) 채취를 막는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은 집 인근 폐쇄회로(CC) TV를 검색해 같은 모자를 쓰고 있던 중국인 방모(46)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혈흔이 남아 있던 모자에서 나온 DNA는 방씨의 것과 일치했다. 경찰은 방씨의 집에 들이닥쳤지만 검거에 실패했다. 불법체류자였던 방씨는 '자진출국' 신고를 한 뒤 몇 시간 만에 국내를 유유히 빠져나가 버렸다.

 

 #허위조서 작성 혐의를 받던 서울 지역 경찰관 이모(43)씨. 그는 검찰 조사를 받던 중 돌연 출국했다가 올 초 귀국했다. 하지만 입국 심사대에서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당시 그는 체포영장이 발부돼 귀국과 동시에 검거돼야 하는 'A' 수배 대상자였다. 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입국시 이씨에 대한 통보 요청을 받은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일부 범죄 피의자와 지명 수배자가 제재 없이 공항을 무사통과한 사실이 확인됐다. 출입국 심사 시스템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수사 당국과 출입국관리소 간의 공조가 부족한 탓이 주된 요인으로 지적되는 만큼 개선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8일 경찰청과 법무부에 따르면 출입국관리사무소는 검찰과 경찰로부터 특정 피의자에 대한 '출입국 통보' 요청을 받을 경우 검경에 미리 통보해 해당자가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는 것을 제재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강력범죄 피의자 등이 출입국 심사를 받을 때 적발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경이 모든 피의자와 수배자를 대상으로 출입국 통보 요청을 하지 않는 데다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특히 방씨는 수배 직전 '자진출국'을 악용, 수사망을 따돌렸다. 자진출국이란 외국인이 불법체류임을 신고하면 입국 시기와 경로 등 간단한 조사만 거쳐 과태료를 물지 않고 몇 시간 안에 바로 출국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제도다.

 출입국 심사의 구멍은 수사 기록을 가진 경찰과 출입국 정보를 가진 법무부 간의 정보 공유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인 '킥스'(KICS)에는 사건 발생 때부터 모든 수사내용이 기록된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소는 이를 즉각 확인할 수 없다. 수사 당국으로부터 관련 요청이나 통보가 오지 않으면 범죄 관련 여부를 파악할 수 없어 출입국을 제재할 수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진출국 전 수사 대상 여부를 확인하고, 수배 전이라도 출국을 보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A' 수배자나 주요 피의자는 수사 당국의 요청 없이 자동적으로 출입국 통보 대상에 오르도록 하는 별도의 공조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일본처럼 경찰이 출입국 심사대 앞에 상주하면서 수사 대상자를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고 설명했다.

 백민경·이영준기자 white@seoul.co.kr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손,살인자를 가리키다



[서울신문]

2006년 10월 11일 오후 3시 인천 강화도의 한 선착장. 주변을 거닐던 관광객이 바다쪽 석축에 걸린 작은 물체를 발견했다. “저게 뭐지? 일반적인 바다 쓰레기 같지는 않은데?.”

왠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악~’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잘려진 사람의 손이었다. 바다를 떠돌다 뭍을 만나니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겠다는 심정이었을까, 조류에 떠밀려온 가련한 조각 시신은 축대에 기대어 제발 자기를 보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 40대 중반 여성?남편 그리고 내연남

상식적인 얘기지만 바다나 강에서 발견된 시신은 신원을 파악하기가 육지에서 나온 시신보다 훨씬 어렵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인 지문감식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물 속에서 불거나 부패하는 과정에서 형체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경찰은 망자의 손을 수습해 아이스박스에 넣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냈다. 우선 규명해야 할 것은 자살이냐, 타살이냐 여부. 손목 절단이 흉기 등에 의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토막살해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시신이 온전한 상태로 떠돌다 선박 스크루 등에 의한 절단된 것이라면 타살 외에 자살이나 사고사일 수 있다.

부검 결과, 타살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국과원은 “손목 절단면의 전반적인 모양새가 칼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능숙하게 한 일로 보이며 피해자는 여성”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사망자는 누구인가. 물 속에서 부패된 손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지문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익사체나 부패가 진행 중인 사체는 주사기로 시신의 손에 실리콘을 주입해 지문을 떠내지만 이 경우는 훼손 정도가 심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조사반은 고온처리법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뜨거운 물을 통해 피부를 팽창시켜 숨어 있던 지문을 도드라지게 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이 기술은 한국의 지문감식 수준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았다. 실제로 이 방법은 2004년 동남아 지진해일 참사 때 큰 위력을 발휘했다.

9일 만에 경찰은 지문 채취에 성공했다. 중지에서는 활모양의 궁상문(弓狀紋)이, 약지에서는 말굽모양의 제상문(蹄狀紋)이 확인됐다.

피해자는 당시 44세의 여성 A씨였다. 약 1개월 전 남편 K(당시 47세)씨에 의해 가출 신고가 돼 있었다. 인테리어업을 하는 K씨는 “아내가 9월 15일 직장에 출근한 후 돌아오지 않았다.”면서 “내연남과 살기 위해 집을 나간 것으로 생각된다.”고 진술했다. 경찰이 A씨의 통화기록을 조회하자 실제로 한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A씨와 결혼을 하기 위해 이미 이혼해 있는 상태였다. 남편 진술의 신빙성에 무게가 더해졌다. 경찰은 내연남에 대한 집중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는 분명한 알리바이를 갖고 있었다. 의심할만한 대목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수사의 초점은 다시 남편을 향했다.


■ 아내와의 엽기적인 마지막 눈인사

“그놈과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죠. 걱정도 안 돼요.”

남편 K씨가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는 부인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경찰은 우선 K씨의 아파트 CCTV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가출 이후 거의 500시간에 육박하는 녹화분을 샅샅이 뒤졌다.

지루한 녹화화면과의 전쟁. 전체 분량을 절반쯤 확인했을 때 화면에 남편 K씨와 아내 A씨의 모습이 등장했다. 10월 2일 오전 10시 10분. 그들이 살던 아파트로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남편 K씨 진술대로라면 가출신고 후 부인과는 만나는 난 일은 없었어야 하는 것 아니야? 아무래도 K씨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경찰들은 이쯤에서 용의자가 누구인지 80%쯤 확신하게 됐다.

다시 몇시간 정도 녹화분을 더 돌리자 등에 뭔가를 짊어지고 혼자서 내려오는 남편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큰 이불보따리였다. 남편은 그걸 자기 승합차에 실었다. 얼마 후에는 검은 비닐봉지와 아내의 핸드백을 갖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포착됐다. 나머지 녹화분에서는 어디에도 부인 A씨가 집을 나오는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경찰이 남편의 통화내역을 확인한 결과 범행 이틀 뒤인 4일 남편은 경기도 김포 등지를 배회하고 있었다. 김포는 시신의 손목이 발견된 강화도와 가까운 곳이었다. 경찰은 그가 아내를 살해하고 이틀 뒤 시신을 버린 것으로 판단한고 남편을 체포했다.

처음에 완강히 범행을 부인하던 K씨는 계속된 추궁과 증거 제시에 결국 모든 것을 실토했다. 바람 난 아내와 이혼을 협의하다 홧김에 목졸라 살해했고 인테리어 가게에서 쓰는 톱과 칼로 집 화장실에서 시신을 토막 낸 뒤 강화대교 밑 바다와 김포대교 밑 강물에 버렸다고 했다. 그는 가출해 내연남과 보름 이상 여행을 떠난 뒤 스스럼 없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가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경찰은 나머지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K씨가 죽은 아내의 머리를 자기 인테리어점 지하 보일러실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발견했을 때 A씨의 눈은 청테이프로 가려져 있었다. “아내가 눈을 뜨고 죽었는데 그 눈과 마주치는 것이 너무 무섭더군요.” 불행한 부부의 마지막 눈맞춤이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5) CCTV가 연쇄 택시 살인범 잡다



[서울신문]

지난해 3월 28일 오전 10시 대전 대덕산업단지의 북쪽 끝 2차선 도로. 일요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마트로 향하던 외국인 노동자 자하드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왔다.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듯 했다. 자전거를 세우고 건물 한쪽 벽면을 살펴보니 젊은 여성이 대형 트럭과 담벼락 사이에 잠자듯 누워 있었다. “술에 취한 여자인가?” 급하게 여성에게 다가간 자하드. 소스라치게 놀랐다. 죽어 있는 게 아닌가. 양쪽 발목이 흰색 노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누군가 이 가련한 젊은 여성의 목숨을 끊은 뒤 이곳에 버린 것이었다.

●입만 막은 여성이 질식사하다?

시신은 깨끗했다. 앳된 얼굴의 피살자는 줄무늬 블라우스에 베스트,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반듯한 옷매무새가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사회 초년생의 느낌. 코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광대뼈와 왼쪽 턱에도 작은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치명상은 아니었다. 혈흔도 찾을 수 없었다. 여성 피살자들에게 통상 발견되는 목졸림의 흔적 또한 없었다(부검의들에 따르면 살해당한 여성의 90%가 목 졸려 죽는다. 힘이 약한 여성에게 쓰기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형사들은 범행 현장이 여기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여성은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있었다. 하지만 시반(屍斑·시신의 피부에 나타나는 자주색 반점)은 몸 앞쪽에 나 있었다. 엎드려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얘기. 정액반응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슴에서 남성의 타액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비구(鼻口) 폐쇄성 질식사였다. 입가에 테이프 자국이 있는 걸 봐서는 이것이 죽음의 원인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테이프가 코는 빼고 입만 막고 있었는데 왜 질식사를 한 걸까. 해답은 사망 당시의 자세에 있었다. 사람을 납치하면 범인들은 보통 끈을 풀지 못하도록 손을 등 뒤로 묶고 소리가 새어나오지 못하게 입을 막는다. 때론 팔을 묶은 끈으로 다리까지 묶기도 한다.

팔이 뒤로 꺾인 자세가 오래 지속되면 심장박동이 크게 떨어진다. 법의학자들은 이 자세로 오래 방치할 경우 코나 입 어느 하나만으로 숨쉬는 것이 어려워 질식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피해 여성은 코에서 난 피가 비강을 막은 게 분명했다.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미제사건

2) 죽음의 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나빠지거나

4) 졸려 죽은 시신의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살해된 성, 리고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위해 까지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 나?”… 급소’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호흡…녀가 아들 하다 화재사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녀가 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졸린 백골의

15) 한 20女…6 기사, 274만개의 눈 CCTV
 



지문조회 결과 사망자는 충북 청주에 사는 24세 A씨였다. 가족들은 그녀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가출신고를 한 상태였다. A씨가 죽은 채 발견되기 이틀 전인 26일(금요일) 저녁 청주 남문로에서 회식을 한 뒤 택시를 탄 게 화근이었다. 대학 졸업 후 무수한 입사 도전 끝에 직장에 취직하기 된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의 출근 첫째주 휴일을 앞두고 마련된 그녀를 위한 환영 회식이었다. 범인은 그렇게 막 피어나던 꽃망울을 무참하게 꺾어 버렸다.

●범인, 과실치사 적용받으려 술수

형사들은 시신 발견 지점 주변의 폐쇄회로(CC)TV 확인에 나섰다. 먼저 확보한 것은 A씨가 버려진 빌딩 담 위쪽에 설치된 CCTV 화면. 발견 전날인 27일 토요일 저녁 녹화분부터 확인했다. 후미진 곳이긴 해도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인데 시신이 며칠 동안이나 방치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성과 없이 이어지는 CCTV 화면 탐색에 형사들이 조금씩 지쳐갈 즈음이었다. 모니터의 시간이 오전 1시 30분을 가리키는 순간, 퉁퉁한 체격의 남자가 화면에 등장했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트렁크를 열었다. 뭔가를 급히 꺼냈다. 이미 숨져 있는 A씨였다. 남자는 트럭 옆에 A씨를 버린 뒤 황급히 차를 몰고 떠났다.

화면이 너무 흐려 차량번호는커녕 범인의 이목구비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차종이 흰색 NF쏘나타임은 분명했다. 더 큰 수확은 차 지붕에 택시표지가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경찰은 A씨가 회식을 마치고 탑승한 택시에 대한 수배에 나섰다.

경찰은 CCTV 속 범인이 시신을 유기한 후 다시 청주로 돌아갔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 과정에 반드시 거쳐 갈 수 밖에 없는 노루목을 찾아야 했다. 경찰이 짚은 지점은 현도교. 대전 대덕단지에서 신탄진 나들목(IC)을 거쳐 청주로 넘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거치는 곳이었다. 게다가 그곳에는 CCTV도 설치돼 있었다.

범행 당일 오전 1시 30분 이후 다리를 지나간 택시의 수는 모두 67대였다. 경찰은 이중 유독 수상해 보이는 1대에 주목했다. 차 번호를 숨기려 번호판에 반사테이프를 붙인 택시였다. 게다가 앞서 화면에서 본 것과 같은 흰색 NF쏘나타였다. CCTV 화면을 정밀 분석해 알아낸 차량번호는 충북××바××××. 경찰은 청주의 한 택시회사로 형사들을 급파했다.

“CCTV에 다 찍혀 있다.”

형사들의 말에 택시기사 안모(41)씨는 순순히 자기 집에서 수갑을 받았다. 자하드의 112 신고가 접수된 지 12시간 만이었다. 택시 운전석 문짝에서는 식칼이, 트렁크 매트에서는 혈흔이 나왔다. 혈흔은 숨진 A씨의 것과 일치했다. A씨를 위협해 빼앗은 7000원도 함께 나왔다. 범인은 “테이프로 입만 막았기 때문에 A씨가 숨은 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성폭행 등 성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미 2000년에 감금 및 성폭력 혐의로 3년형을 받고 복역했던 그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놓고도 어떻게 하면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만 적용받을까 갖은 술수를 쓰고 있었다.

●잔혹한 살인자…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연기군 조천변 살인사건 있잖아요. 이번에 나온 DNA가 그 사건 용의자와 일치해요.”

수사팀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안씨의 과거 범행이 칡넝쿨처럼 이어져 나왔다. 택시기사를 하며 6년간 살해한 여성이 3명이나 됐다. 2004년 10월 충남 연기군 전동면 조천변 도로에서 발견된 B(당시 23세)씨도, 2009년 9월 청주시 무심천 장평교 아래 하천가에 숨져 있던 C(당시 41세)씨도 그의 손에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출소 후 안씨는 그렇게 늦은 밤 택시에 탄 여성을 상대로 살인과 강간, 강도 등의 범행을 이어갔다. 대부분 몸집이 작거나 술을 마신 사람들이었다. 지난해 10월 대전지법 형사합의11부는 안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고의성을 부인하고, 끊임없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진지하게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면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겪은 고통 등을 고려해 극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에 설치된 CCTV는 총 274만대로 추정된다. 공공용 24만대, 민간용 250만대다. 현재 CCTV는 인권침해와 범죄예방 효과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사건에서는 CCTV가 자칫 미제사건으로 묻힐 뻔 했던 억울한 죽음들의 한을 풀어준 것과 동시에 추가적인 희생자를 막는 효과를 냈다. 우리사회의 ‘은밀한 감시자’인 CCTV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하시는가.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17억 보험금 노린 ‘친구들의 방화살인’ 전모

28세 남자 화재 변사사건, 2년3개월만에 밝혀져

문화일보 | 박정경기자 | 입력 2011.09.02 11:36

 

단순 화재로 인한 사망으로 종결됐던 사건이 경찰의 재수사 결과 2년3개월 만에 거액의 생명보험금을 노린 살인 사건으로 밝혀져 경찰의 초동 수사에 허점이 드러났다.

경찰이 붙잡은 일당 가운데는 한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에서 보도한 결혼을 앞둔 한 남성의 갑작스러운 실종 사건과 관련해 기소돼 구속 수감 중인 피의자가 포함돼 있고 피해자 감금, 수면제 강제 복용, 폭행 등 범행 수법이 비슷해 실종사건의 실마리가 풀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일 거액의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가스온수기를 설치해 강제 점화, 피해자를 숨지게 하고 보험금을 타낸 혐의(살인 및 보험 사기)로 A씨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지난해 6월 결혼을 앞둔 김모(32)씨를 감금한 혐의로 이미 구속 기소돼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인 B씨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 실종 사건은 아직도 진범이 잡히지 않은 가운데 네티즌들이 재수사를 촉구하는 등 큰 파장을 몰고 온 바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 2009년 5월 당시 스물여덟 살이던 피해자 박모씨를 순간가스온수기가 설치된 방에 감금, 불을 질러 사망하게 하고 17억원 상당의 생명보험금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사망한 박씨와 동네 친구 사이로 사건 당일 그에게 술과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한 뒤 박씨가 잠든 방에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사고 직전에 박씨 앞으로 17억원 상당의 생명보험을 가입한 것으로 확인돼 경찰이 보험 가입 경위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이고 있다.

B씨는 지난해 결혼을 앞둔 김씨를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만나 술과 수면제를 먹이고 미리 얻은 전세방에 감금한 후 폭행, 살인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당시에 살인을 입증할 물적 증거를 찾지 못했고, B씨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흉기 및 감금 등)으로 기소됐다.

수사를 진행 중인 경찰은 "박씨의 사망과 지난해 숨진 김씨 사건의 수법이 비슷하고 피의자도 겹쳐 두 사건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다"며 "피의자들이 관련 혐의를 적극 부인하고 있는 만큼 증거 수사를 보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정경기자 verit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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