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결제 거부' 추진에 반발
1만원 이하는 카드 못 써?… 소비자 "왜 불편하게 하나"
[금융위 '소액결제 거부' 추진에 반발… 가맹점은 반색]
소비자 "수수료문제 왜 떠넘기나" - 전체 카드결제 30%가 소액 "밥값 내려고 현금 챙겨다닐 판"
금융당국 "영세상인 살려야" - 카드수수료 부담 너무 커… 외국도 소액결제 거부 추세
관련 법안은 2년 넘게 계류중
서울 광화문에 사무실이 있는 홍보대행사 직원 김정운(29)씨는 1만원 이상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5000원짜리 커피를 살 때나 편의점에서 자잘한 물건을 살 때도 항상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김씨는 "1만원 이하 물건을 살 때 카드를 쓰지 못하게 하면 매번 은행에서 현금을 뽑아 써야 하기 때문에 은행 수수료 부담이 생기고 생활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많은 소비자가 김씨처럼 소액 신용카드 결제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1만원 이하 금액에 대해선 상점이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논란이 되고 있다.
- ▲ 정부가 1만원 이하 금액에 대해서는 상점이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바꾸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전체 카드 결제의 30%가 1만원 이하 소액 결제여서 소비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사진은 10일 서울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고객이 커피값을 카드로 결제하는 모습.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10일 "카드 가맹점이 카드 결제를 거부하면 형사처벌하도록 한 법 조항(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 1항)을 폐지하거나 개정해, 1만원 이하 소액 결제는 상점이 신용카드를 받지 않을 권리를 갖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전환은 영세 카드 가맹점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1만원 이하 소액 결제가 전체 카드 결제의 30%에 이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불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소비자 단체들은 "불합리한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를 개선하지 않고 문제를 소비자에게 떠넘기려 한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한편 자영업자들은 카드 수수료 인하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며 정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신용카드 문제를 둘러싸고 소비자, 카드 가맹점, 카드사, 정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얽힌 '카드 전쟁'이 예고된 셈이다.
◇카드 결제 거부 처벌, 한국이 유일
정부는 상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세원(稅源)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지난 2001년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카드 가맹점 주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런 법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는 게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가게가 신용카드 결제를 할지 말지는 원칙적으로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지난해 미국과 캐나다가 10달러 이하는 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있게 했고, 상당수 유럽 국가도 동참하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의 대형 할인점, 수퍼마켓 등에선 건당 15유로(약 2만원) 이하 거래는 카드 결제를 받지 않고 있다.
정부는 또 영세 상인들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1만원 이하 소액 결제에 한해 신용카드를 받을지 현금을 받을지 선택권을 상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 소액도 카드로 결제하는 행태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소액 현금 결제'는 국민에게 큰 불편을 안겨줄 전망이다.
지난 7월 중 우리 국민의 신용카드 사용 건수는 총 6억9000만건에 달했는데, 이 중 1만원 이하 소액 결제가 29.2%(2억건)를 차지했다. 5000원 이하도 14.5%(1억건)에 달했다.
◇소비자 반발 거세 합의 쉽지 않을 듯
자영업자들은 과다한 수수료 부담에 따른 수익성 저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신용카드 결제 거부에 대한 벌칙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요구해 왔다.
국회는 자영업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1만원 미만일 때 거부할 수 있게 하는 방안 ▲액수와 상관없이 거부할 수 있게 하는 방안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면 거부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등 3가지 법안을 발의해 놓았다.
하지만 소비자 단체들이 거세게 반대하면서 이 법안들은 2년 넘게 처리되지 못한 채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소비자 단체들은 현금이 없는 소비자가 카드로 결제하려고 필요 이상 물건을 사게 되면서 과소비를 부추길 수 있고, 1만원 이하 소액 결제 고객 대부분이 서민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부회장은 "카드사가 부담하는 결제망 이용료를 낮춰주고, 대신 카드사가 가맹점 수수료를 대폭 내리면 문제가 해결되는데 정부가 소비자에게 불편을 끼치는 정책을 밀어붙이려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카드 가맹점들은 아예 카드 의무 결제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국회에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