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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늦은 미혼-취업 준비생-사업 실패 가장 '설렘 보단 걱정'
[CBS 조태임 기자] 프리랜서 웹 디자이너로 잘 나가는 미혼 여성인 이 모(38,여)씨는 사회에서 누구보다 당당하다. 수입도 괜찮고 나름의 경력도 있는 골드미스다.
하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혼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떳떳해지려고 하지만 '결혼은 언제 하냐'며 한 마디 씩 거드는 친척들 앞에서 못내 작아진다.
큰 집이라 친척들이 이 씨의 집으로 오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나름대로 대처법도 터득했다.
이 씨는 "이제는 친척들 만나는 게 무서워요. 설이나 추석 때 웬만하면 집에 안 있으려고 일부러 약속을 잡고 밤 늦게 들어간다"고 대처법을 소개했다.
결혼 압박에 친척 집에 가기 싫은 건 미혼 남성도 마찬가지다.
번역 일을 하는 정 모(34)씨는 "누구 사귀는 사람 없는지를 계속 묻고, 결혼을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와서 친척집에 잘 안 가게 된다"고 말했다.
결혼이 늦은 미혼뿐 아니라 취업 준비생들도 설 명절은 곤혹스럽다.
취업준비생인 서 모(26)씨는 오랜만의 고향 방문인데도 설렘보다는 걱정이 크다.
지난해 취업준비에 매진했지만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탓에 부모님과 친척들 얼굴 볼 낯이 안 서기 때문이다.
서 씨는 "지난 추석에는 자기소개서 쓴다는 핑계로 안 갔는데 이번에도 핑계거리를 찾아봤는데 마땅치 않고 부모님도 안 온다고 서운해 하셔서 가게 됐다"며 "가서 싫은 소리 듣겠지만 친척들이 관심 있어서 하는 소리겠지 하고 마음수양하고 오려고 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의 서러운 마음을 다잡고 금의환향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
공무원 준비생인 김 모(28)씨는 스터디하는 6명이서 설 당일에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는 "다들 집에 가면 스트레스만 받으니까 그냥 모여서 공부나 하자고 의기투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최근 직장인과 구직자를 대상으로 설날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조사했다.
그 결과 직장인 26.7%가 "결혼 언제 할래, 애인은 있느냐"는 말을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았다.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취업 못했냐'는 말이 23.4%로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에 올랐고 '누구 누구는 좋은 회사 들어갔던데…'라는 말이 11.7%로 2위를 차지했다.
명절에 고향 가는 발걸음이 무거운 건 20~30대만의 얘기는 아니다.
주유소와 PC방을 운영하며 한 때 잘나갔던 박 모(57)씨.
사업 실패로 모아둔 재산을 날리고 영업용 택시를 몰며 한 달 150만원의 수입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장남인 박 씨는 잘 나가는 동생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
박 씨는 "동생이 외국계 기업 부사장인데 나하고는 빈부 차가 하늘과 땅 차이다"라며 "예전 같으면 고향에 내려가면 부모님 모시고 여행도 가고 오래 머물다 왔지만 지금은 하루만 있다 금방 오게 된다"고 털어놨다.
dearhero@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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