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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가 -> 남편 시신 찾아 베링해까지

손경형 2012. 2. 4. 12:48

남편 시신 찾아 베링해까지… 피말린 70일 경향신문|한대광 기자|입력 2012.02.04 03:08|수정 2012.02.04 03:12
꼭 70일 만이었다.

"혹시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은 곧 절망으로 변했다. 남편 한모씨(49)는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 있었다. 부인 정모씨(48)는 "왜 이렇게 추운 곳에 누워 있느냐"며 절규했다. 정씨는 얼음처럼 굳어버린 남편의 시신 앞에서 할 말을 잊었다.

설을 맞아 전국이 들뜬 지난 1월23일. 러시아 추코트카주 연안의 원양어선 안에선 애절한 망부가(亡夫歌)가 울려 퍼졌다.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바다 한가운데에서 사고 선박과 함께 유일한 실종자인 한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실종된 남편을 찾기 위한 정씨의 70일간 사투는 허무하게 끝났다.

이야기는 지난해 11월1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베링해에서 명태잡이 조업을 하던 한국 선적의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선장과 선원 89명은 쪽배를 타고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부선장 한씨는 사고 후 어창(물고기를 넣는 창고)의 문을 걸어 잠그는 뒷수습을 하다 미처 탈출하지 못했다.

선박회사는 다음날 사고 소식과 함께 "날이 밝는 대로 보트를 타고서라도 (사고 현장에) 접근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약속했다. 피말리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사고 해역을 표류한 선박은 동력원이 사라지면서 추적이 불가능했다. 회사 측은 "러시아 구조선만 구조활동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독자 수색을 접어야 했다. 정씨의 속은 타 들어갔다. 사고 1주일 후 인근을 지나던 헬기가 암초에 걸려 좌초한 선박을 발견했다. 선박회사 측은 러시아 구조선 회사와 계약을 맺고 "9일 후에 구조선이 도착할 것 같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구조선은 사고 선박에 접근하는 데 실패했다. '40마일 앞까지 왔다' '1시간만 더 가면 된다'고 얘기하던 구조선에서 "바다가 얼어서 접근이 불가능하다. 구조를 중단한다"고 알려왔다.

정씨가 직접 나섰다. 선박회사는 물론 한국 외교당국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인터넷에 "제발 남편의 시신이라도 찾게 해달라"는 글을 올린 뒤 다음 아고라에서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정씨는 "겨울 바다에 혼자 남은 남편이 저를 부르는 소리가 떠나지 않습니다. 남편의 시신을 확인하기 전에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호소했다.

청원운동엔 5000명이 참여했다. 러시아 현지에서도 수색작업을 더 하자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외교통상부도 나서기 시작했다. 회사 측도 수색작업 재개에 협조했다.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수색작업을 앞두고 정씨는 지난달 22일 러시아로 출국했다.

이 사이 러시아에선 추코트카주 당국이 수색팀을 구성했다. 수색팀은 지난달 23일 무한궤도 차량으로 얼음 바다를 가로질러 선박 근처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선박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수색팀은 이날 화재가 났던 어창 앞에서 한씨의 시신을 찾아냈다. 시신 옆에는 팔찌, 반지, 안경 등 유품도 놓여 있었다.

가족들은 한씨의 시신을 한국으로 옮긴 뒤 3일 장례를 치렀다. 얼음 바다에 갇혀 있던 한씨는 경북 봉화의 조상들 옆에 묻혔다.

<한대광 기자 chooh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