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불혹(不惑)의 나이를 한해 앞둔 노숙인 홍모(39)씨는 지난 4일 오후 7시께 서울 중구 을지로 4가 장애인 화장실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사인(死因)은 다만 추정될 뿐이었다. 노숙인다시서기센터 의료기록을 보면 그는 평소 알코올의존증이 심했고 혈압이 높았다고 한다. 부검을 해봐야 알겠지만 골수에 스며든 알코올과 높은 혈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를 객사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의료진은 추정했다.
그가 숨을 놓은 지 이틀이 지났지만 장례를 치러줄 연고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 조사결과 경북 영주에 부친과 형제 3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그 누구도 홍씨의 죽음 앞에서 목 놓아 울어주지 않았다.
6일 오후 6시15분께 박원순 서울시장은 홍씨의 시신이 안치된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았다. 이틀 전 서울시 당직실에서 보낸 팩스에서 홍씨의 사망사실을 확인한 뒤 이날 예정에 없던 일정을 잡은 것이다.
감색 양복에 검정색 넥타이를 맨 박 시장은 흰색 국화 한송이를 시신함 앞에 내려놓고 20여초 동안 고개를 숙였다.
국립중앙의료원 이홍순 부원장이 박 시장에게 들려준 망자의 삶은 항상 칼 끝에 서있었다.
홍씨는 지난 9월9일 종로구 빌딩 앞에서 만취상태로 발견돼 경찰에 신고됐고 한달여 뒤인 10월6일 같은 장소에서 만취상태로 또다시 신고됐다.
20일 뒤인 10월26일 서계동 주택가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발견됐다.
지난 3일 중구 을지로 4가 인근에서 역시 만취 상태로 발견돼 국립중앙의의료원으로 실려갔다.
CT검사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홍씨는 수액치료 중 의식을 회복했다. "수액을 다 맞고 가라"는 의사 권유를 뿌리치고 병원을 나섰다가 하루 뒤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온몸을 뒤덮은 타박상과 골절의 원인을 의료진들은 사인과 마찬가지로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박 시장과 간담회를 가진 국립중앙의료원, 노숙인다시서기센터, 구세군 관계자 등은 제각기 노숙인들과 얽히고설킨 관계에 대해 말을 했다.
의료진들은 노숙인들이 의료시설에 들어와 벌이는 폭력에 대해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의료급여 선정기준이 바뀌면서 치료를 할수록 적자가 쌓이는 현실을 얘기했다.
이들은 '관리'를 얘기했다. 노숙인 현황을 등록해 체계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세군측 관계자는 노숙인들이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을 인지하고서도 이들을 강제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의 부재를 지적했다.
노숙인다시서기센터 여재훈 신부는 홍씨의 죽음이 노숙인의 현주소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본이라고 전했다.
홍씨처럼 가정형편 때문에 어려서 학업을 그만 둔 뒤 막노동과 공장일을 전전하다 기력이 쇠약해지면서 결국 노숙인으로 전락,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한해 400~500명에 달한다며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을 부탁했다.
서울시 복지국 관계자는 시의 역량과 예산문제를 말했다. 맞춤형 복지로 가기 위한 과정에 있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울역에서 쫓겨난 노숙인들의 임시쉼터인 '자유카페'가 지역민들의 반발로 표류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박 시장은 "1000만 서울 시민이 사는데 여러 가지 사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인간적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고 누구도 살피지 않은 한 사람의 마지막 길에 누군가 친구가 되어주는 그런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는 이같은 일이 없으면 해서 왔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우리 사회는 노숙인이나 알코올 중독자를 둘러싼 시스템, 정보와 구축이 충분치 않다"며 "병원은 병원대로, 시설이나 기관, 서울시대로 고민하고 있다. 함께 고민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킹하면 훨씬 쉽게 풀릴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노숙인들이)하루에 1~2명씩 죽는 것은 제가 서울시장 있는 한 용납이 안된다"며 "어쩌면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끝으로 영국의 한 공원에서 숨진 노숙인을 위해 런던시가 행했던 일을 다짐하듯 읊조렸다.
"'이제 우리가 늘 보던 시민을 볼 수 없게 됐다. 늘 신문을 팔던 노숙인이 가는 길을 애도하자'며 꽃이 놓여있더라. 가슴이 저며왔다. 서울시장으로서 꽃다발 하나 못 드렸는데, 국화 한송이밖에 못 올렸는데…."
sds1105@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