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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 이아손과 금양모피

손경형 2017. 3. 29. 09:42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아손과 금양모피

금양모피

영웅들의 수호 여신 아테나

이아손(가운데)이 배를 짓는 아르고스(오른쪽)를 돕고 있다. 왼쪽은 영웅들의 수호 여신 아테나.

옛날 옛적 테쌀리아에 아타마스와 네펠레라고 하는 왕과 왕비가 살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 남매가 있었다. 그러나 남매를 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타마스는 아내 네펠레를 멀리 하더니 결국은 본처와의 인연을 끊고 새 아내를 맞이했다.

네펠레는 남매가 계모로부터 구박이나 받지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계모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아이들을 피신시킬 대책을 강구했다. 헤르메스가 네펠레를 도와주려고, 모피가 황금으로 된 숫양, 그러니까 〈금양()〉 한 마리를 보내 주었다. 네펠레는 이 금양에 남매를 태워,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을 신들에게 기도하고는 금양을 떠나보냈다.

금양은 남매를 등에 태운 채 하늘로 날아올라 진로를 동쪽으로 잡았는데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가로놓인 해협을 건너다 그만 딸아이를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다. 딸 아이 이름이 헬레인데 이 바다는 그 뒤로 헬레스폰토스1)라고 불렸다. 오늘날의 다다넬즈 해협이 바로 이곳이다.

금양을 탄 프릭소스와 헬레

금양을 탄 프릭소스와 헬레2)

 

금양은 계속해서 하늘을 날아 드디어 흑해 동해안에 있던 콜키스라는 나라에 당도했다. 금양은 여기에다 네펠레의 아들 프릭소스를 내려놓았다. 프릭소스는 이 나라의 왕 아이에테스로부터 따뜻한 영접을 받았다. 프릭소스는 금양을 산 제물로 제우스에게 바치고 금양의 모피는 아이에테스에게 선사했다. 왕은 그 금양모피를 신에게 봉헌한 숲속에다 두고 잠들지 않는 용으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했다.

테쌀리아에는 아타마스 왕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왕국이 있었다. 이 왕국은 아타마스 왕의 친척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 나라의 국왕 아이손은 정치가 귀찮아져 아들 이아손3)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아들이 너무 어려 망설이다가, 〈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라는 조건을 달아 아우 펠리아스에게 잠정적으로 왕위를 물렸다.

 

〈탱글우드 이야기〉의 삽화

〈탱글우드 이야기〉의 삽화4)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이아손이 숙부에게 왕위를 요구하자 펠리아스는 기꺼이 왕위를 물려줄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먼저 저 황금 모피를 찾는 명예로운 모험 여행을 떠나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황금 모피는 분명히 콜키스 왕국에 있고, 그것이 아이손 왕국의 국보()가 분명한 이상 마땅히 찾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아손은 이 제안을 쾌히 수락하고 곧 원정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그리스 인들이 알고 있던 항해술은 나무 둥치를 파내고 만든 조각배나 카누 같은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아손이 아르고스5)에게 명하여 자그만치 50명이나 태울 수 있는 배를 짓게 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이윽고 배짓기가 끝나자 이아손은 지은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 배를 〈아르고〉라고 명명했다. 이어서 이아손은 모험을 좋아하는 온 그리스 땅의 젊은이들을 이 여행에 초청하고 자신은 이 용감한 젊은이들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되었다. 이들 젊은 용사들 대부분은 후일 그리스의 영웅 및 신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니, 저 유명한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오르페우스, 네스토르도 여기에 들어 있었다.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배의 이름 그대로 〈아르고나우테스〉6)라고 불린다.

 

아르고나우테스가 그려진 고대의 술 항아리

아르고나우테스가 그려진 고대의 술 항아리.

고대의 돋을새김을 재현한 그림

고대의 돋을새김을 재현한 그림. 아테나 여신 뒤, 횃대에 앉아 있는 부엉이를 주목할 것. 어둠을 뚫어 보는 새 부엉이는 지혜의 여신이기도 한 아테나를 상징하는 새.

고대의 쾌속선 아르고 호

고대의 쾌속선 아르고 호. 앞에 서 있는 용사는 사자 가죽 같은 것을 걸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원정에 가담했다가 중도에서 그만 둔 헤라클레스인 것 같다.

이러한 영웅들을 승무원으로 태운 아르고 호는 테쌀리아 해안을 떠나 렘노스 섬에서 기항하고, 뮈시아를 건너 트라키아에 당도했다. 이곳에서 일행은 현인() 피네우스를 만났고 그로부터 차후의 항로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쉼플레가데스〉를 지나야 하는 아르고 호

아르고 호는 〈충돌하는 바위〉라는 뜻을 지닌 〈쉼플레가데스〉를 지나야 한다. 현자 피네우스의 도움으로 이 바위 사이를 지나자 바위는 더 이상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이 쉼플레가데스는 흑해와 에게해 사이에 있는 다다넬즈 해협을 상징하는 것 같다. 바위가 더 이상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는 것은, 흑해가 더 이상은 미지의 바다가 아니게 되었다는 뜻인 것 같다.

피네우스는 옛 에우크세이노스 해7)가 두 개의 조그만 바위 섬으로 막혀 있다고 했다. 곧 이 두 개의 바위 섬은 해상에 떠 있다가 상하 좌우로 움직이며 서로 부딪치는데 그 사이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산산조각으로 부숴 놓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섬은 〈쉼플레가데스〉, 곧 〈충돌하는 섬〉이라고 불린다는 것이었다.

피네우스는 아르고나우테스들에게 그 위험한 해협을 통과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이 방법에 따라, 바위섬 가까이 접근하자 비둘기 한 마리를 날려 보았다. 비둘기는 바위 섬 사이를 날았는데, 꼬리깃을 조금 뽑혔을 뿐 무사히 그곳을 통과했다. 이아손과 부하들은 충돌했던 바위가 그 반동 때문에 다시 열리는 순간을 이용해서 전력을 다해 노를 저어 대체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통과한 직후에 바위 섬이 다시 충돌하는 바람에 배의 고물을 조금 다쳤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아르고나우테스 일행은 해안선을 따라 배를 몰아 마침내 바다의 동쪽 끝에 이르러 콜키스 왕국에 상륙하는데 성공했다.

이아손이 콜키스 왕 아이에테스에게 입국한 목적을 말하자 왕은 황금 모피를 내놓겠다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이아손이 불을 뿜는 두 마리의 놋쇠 발 황소에 쟁기를 매어 밭을 갈고, 거기에다 카드모스 왕이 퇴치한 저 용8)의 이빨을 뿌리는 데 성공하면 황금 모피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용의 이빨을 땅에 뿌리면 무장한 병사들이 돋아나 뿌린 자에게 칼을 들이댄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이아손은 아이에테스 왕이 내건 조건을 수락했다.

 

땅의 여신 헤카테

 

〈헤카테〉는 〈멀리 있는 힘〉이라는 뜻이다. 헤카테는 저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땅의 여신이다. 이 대리석 돋을새김은 올륌포스 신들을 도와 기간테스〔〕들을 퇴치할 때의 모습이다. 〈거인〉을 뜻하는 영어의 〈자이언트(Giant)〉는 〈기간테스〉에서 온 말이다.

이윽고 이아손이 시련을 당할 날까지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아손은 그 전에 이 수단 저 방법을 다 써서 자기 생각을 아이에테스 왕의 딸 메데이아에게 털어놓는 데 성공했다. 이아손은 이 메데이아 공주에게 결혼을 약속하고, 메데이아와 함께 헤카테의 신전으로 가서는 여신의 이름을 걸고 결혼할 것을 서약했다.

메데이아도 이 약속을 믿게 되었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의 도움을 빌려(메데이아는 훌륭한 마술사였다) 불을 뿜는 황소와 무장한 병사들의 창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마력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윽고 그날이 오자 사람들은 전쟁신 아레스에게 바쳐진 문제의 숲에 운집했다.

국왕은 왕좌에 앉았고 신민들은 산허리를 메우고 앉거니 서거니 했다.

이윽고 놋쇠 발 황소가 콧구멍으로 불길을 뿜으며 들어오자 길가의 풀이 타죽었다. 황소 두 마리가 다가옴에 따라 용광로 안에서 쇳물이 끓는 소리가 났고, 생석회에 물을 뿌린 것처럼 연기가 피어 올랐다.

이아손은 담대하게 두 마리 황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스의 영웅들 중에서도 영웅인 이아손은 황소가 내뿜는 불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황소의 노기를 가라앉히고는 두려움을 모르는 손으로는 그 목을 어루만졌다. 이어서 이아손이 솜씨 있게 멍에를 채우고는 쟁기를 끌게 했다. 콜키스 사람들은 아연실색했고 그리스 인들은 함성을 질렀다. 이아손은 이어서 용의 이빨을 뿌리고 쟁기로 이빨 뿌린 밭을 갈기 시작했다. 곧 무장한 병사들이 돋아났다.

 

불 뿜는 황소에게 쟁기를 매어 밭을 가는 이아손

불 뿜는 황소에게 쟁기를 매어 밭을 가는 이아손. 메데이아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19세기 신화 사전의 삽화.

금양모피를 지키고 있던 용 앞으로 다가서는 이아손

금양모피를 지키고 있던 용 앞으로 다가서는 이아손. 1920년에 간행된 신화집 〈탱글우드 이야기〉의 삽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용을 죽인 다음(혹은 잠재운 다음) 금양모피를 거두어 들이는 이아손

 

용을 죽인 다음(혹은 잠재운 다음) 금양모피를 거두어 들이는 이아손.

무장한 병사들은 흙 위로 솟아나자마자 무기를 꼬나잡고 이아손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그리스 인들은 영웅의 안위를 염려하느라 전율했고, 이아손의 호신 대책을 세우고 이를 자세히 일러주었던 메데이아까지도 두려움으로 파랗게 질렸다.

이아손은 잠시 칼과 방패로 이들을 대적했으나 곧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나자 메데이아가 가르쳐 준 호신 방법을 썼다. 돌멩이를 하나 집어, 땅에서 솟아난 병사들 한가운데로 던진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났다. 저희들끼리 베고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용의 이빨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얼마 가지 않아 전멸했다. 그리스 인들은 그들 영웅을 껴안았으니, 그럴 용기만 있었더라면 메데이아도 그를 껴안고 말았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황금 모피를 지키고 있던 용을 잠재우는 일뿐이었다. 그것도 간단했다. 메데이아가 미리 준비해 준 약을 몇 방울 용의 주위에 뿌리면 되는 일이었다. 이아손이 그 약을 뿌리자, 용은 그 냄새를 맡고는 노기를 가라앉힌 뒤, 잠시 꼼짝도 않고 서 있다가는 한 번도 감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그 크고 둥근 눈을 감고 모로 누워 잠들고 말았다.

이아손은 그 황금 모피를 취한 뒤, 아이에테스 왕에게 출항을 저지할 여유를 주지 않으려고 서둘러 친구들과 메데이아를 데리고 배를 몰아 테쌀리아로 돌아왔다.

 

금양모피를 가지고 콜키스를 떠나는 이아손

 

금양모피를 가지고 콜키스를 떠나는 이아손(금양모피 뒤에서 뱃사람들을 지휘하고 있다)과 메데이아(가슴을 드러낸 여성). 19세기, H.J. 드레이퍼의 그림.

 

금양모피를 거두어 가는 이아손

 

금양모피를 거두어 가는 이아손. 17세기, E. 퀠랭의 벽화.

무사히 귀환한 이아손은 금양모피를 펠리아스에게 건네주고 〈아르고 호〉는 해신 포세이돈에게 봉헌했다. 그 금양모피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모르기는 하나 그 금양모피 역시 손에 넣는 데 필요했던 수고에 비기면 별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최근의 어떤 작가가 말했듯이, 상당한 허구가 흘러들어가 있긴 하나 그 바탕에는 역시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신화적인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이 아르고 호의 원정은 어쩌면 인류사 초기의 중요한 해외 원정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역사에서 읽고 있듯이, 모든 나라에서 있었던 이런 유의 원정은 반은 해적질 성격을 띠고 있다. 아르고 호 원정도 그와 비슷했을 것이다. 원정대가 풍부한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왔다면 이런 모험담은 다분히 금양모피 전설로 탈바꿈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박학다식한 신화학자 브라이언트9)는, 이 이야기를 〈노아의 방주 이야기〉10)를 꼴바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면 아르고(Argo)라는 이름은 방주(ark)와 비슷한데다 저 비둘기의 등장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포프(Pope)는 『성 세실리아11)의 날 음악에 부치는 송가』에서 아르고 호의 진수와 오르페우스에 의한 음악의 힘을 이렇게 찬양하고 있다(38~43행).

저 대담무쌍한 최초의 배가 바다로 들어갈 때
트라케인12)은 고물에 서서 수금을 뜯었다.
아르고 성좌가, 저와는 동족인 나무가
헬리온 산에서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신인()들은 그 가락에 망연자실했고 병사들은 그 소리에 영웅처럼 담대해졌다.

다이어13)의 『모피』(The Fleece)라는 시에는 아르고 호와 그 승무원을 노래한 대목이 있다. 이 시를 읽으면 이 원시적인 해상 모험의 양상을 알 수 있다.

에게 해 연안 각지에서
용사들이 모여들었다. 저 유명한 쌍둥이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 음악의 명수 오르페우스,
바람같이 빠른 제테스와 칼라이스, 강한 헤라클레스,
그 밖의 유명한 장사들이.
이들은 이올코스 해변 모래판에 모여 투구를 번쩍이며
원정의 불길로 가슴을 태웠다.
이윽고 월계수 밧줄과 바위가 갑판에 오르자
범선의 돛줄이 풀렸다.
놀라우리 만큼 긴 용골은 아르고스의 솜씨가
이 자랑스러운 원정을 위해 다듬은 것.
그 미끈한 용골 위로 돛대가 우뚝 섰고,
돛은 남김없이 바람을 받았다. 영웅들에게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일행은 처음으로
넓은 바다로 나가 대담한 항해술을 익힌 것이다.
케이론이 하늘에다 박아 둔 금빛 별들에 이끌리어.

헤라클레스는 뮈시아에서 원정대를 이탈했다. 평소에 아끼던 휠라스가 물을 길러 갔다가, 그 미모에 마음을 빼앗긴 샘의 요정들에게 붙잡혔기 때문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이 소년을 구하러 갔다. 그가 떠나 있을 동안 아르고 호는 그를 놓아둔 채 떠나고 말았다.

무어(Moor)14)는 이 일을 아름다운 글로 노래하고 있다.

휠라스는 물단지를 들고 샘으로 물을 길러 갔는데,
꽃빛 환한 들판을 지나고, 흥겨운 마음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목장을 지나고 언덕을 넘어가다,

길 옆에 핀 꽃을 보느라 심부름도 잊었다.
이런 사람들은 나처럼, 젊은 시절에 〈철학〉의 신당 옆을 흐르는
샘물을 맛보아야 하는데
물가에 핀 꽃을 보느라고 귀중한 세월을 허송하는 바람에 내 단지처럼
그들 역시 단지가 비어 있구나.

헤라클레스

아르고 원정대에 가담했던, 티륀스의 영웅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는 네메아에서 잡은 사자 가죽을 쓰고, 사자 잡을 때 썼던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영웅이다.

금양모피를 되찾아 온 것을 기념하여 잔치가 벌어졌지만, 이아손은 마음 한 곳이 허전해서 그 자리에 흥겹게 어울릴 수 없없다. 아버지 아이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손은 노환으로 그 자리를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아손은 메데이아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내여, 내 그대 마법의 도움으로 오늘 이런 광영을 입고 있으나, 아직도 세상이 비어 보이는 것을 어쩌리오, 다시 한 번 나를 위해 그 마법을 써 줄 수 없겠는지요. 바라건대 내 수명에서 몇 년을 빼내어 아버지 수명에다 붙여 주었으면 하오.」

그러자 메데이아가 대답했다.

「그런 희생을 치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마법이 제대로만 들어준다면, 그대의 수명에서 빼지 않고도 아버님 수명을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나무에 걸린 금양모피

이아손은 금양모피를 지키는 용이 삼키는 바람에 사흘 동안 용의 뱃속에 있다가 아테나 여신(오른쪽)의 도움으로 다시 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나처럼. 고대 그리스의 병에 그려진 그림. 용(혹은 거대한 뱀) 뒤로 나무에 걸린 금양모피가 보인다.

메데이아는 보름달이 밝은 밤, 산 것은 모두 잠들어 있는 틈을 타서 홀로 일어났다. 사위는 고요했다. 메데이아는 먼저 별에게 기원하고 달에게 기원했다. 그리고는 지옥의 여신 헤카테와 대지의 여신 텔로스에게 기원했다. 이러한 여신들의 힘이 마법에 쓰이는 식물을 키우기 때문이었다. 메데이아는 숲이나 동굴, 산과 골짜기, 호수와 강, 바람과 대기의 신들에게도 힘을 빌려줄 것을 기원했다.

메데이아가 이렇게 빌자 별들이 한층 더 빛나면서, 날개 달린 뱀이 끄는 이륜차 한 대가 나타났다. 메데이아는 이 이륜차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원방각지를 다니며 그 땅에서 나는 갖가지 약초 중에서 자기가 겨냥하는 일에 필요한 것만을 모았다. 메데이아는 아흐레 밤낮을 약초 찾는 데 보냈다. 그 아흐렛 동안은 궁전의 문 앞에 얼씬도 하지 않았고 사람들과도 일체 만나지 않았다.

약초를 다 모은 메데이아는 제단 둘을 만들었다. 하나는 헤카테의 제단이었고 또 하나는 청춘의 여신 헤베를 위한 것이었다.

메데이아는 이 제단에다 검은 양 한 마리를 산 제물로 바치고 우유와 포도주를 제주()로 헌작했다. 이어서 메데이아는 하데스와, 하데스가 노략해 갔던 신부15)에게, 노인의 생명을 너무 빨리 앗아가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

이윽고 아이손을 모셔 들이게 한 메데이아는 주문을 외어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고는 신선을 모시듯이 약초를 깐 침상에 눕혔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은 물론 잡인을 모두 그곳에서 물리쳤다. 부정()한 눈이 비법()을 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준비를 거의 마친 메데이아는 머리를 풀고, 불을 붙인 나뭇가지로 산 제물의 피를 휘저으면서 제단을 세 바퀴 돌고, 그 나뭇가지를 제단에다 쌓아놓고 불을 지폈다. 그 동안 솥에 앉힐 약제가 준비되었다. 메데이아는 솥에다 여러 가지 약초와 짜면 쓴 즙이 나오는 씨앗이나 꽃, 먼 동방에서 가져온 돌,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대양의 해변에서 퍼 온 모래, 달빛 아래서 모은 흰 서리, 올빼미 머리와 날개, 이리의 내장 따위를 집어 넣었다. 잠시 후에는 거북 껍질 조각, 수사슴의 간장(둘 다 생명력이 왕성한 동물이었으므로)과, 인간의 아홉 세대를 넘게 산 까마귀 머리와 부리를 넣었다. 메데이아는 이런 것뿐만 아니라 이 밖에도 〈이름도 없는 것들〉16)을 넣고는 마른 올리브 가지로 저으면서 끓였다.

숙부 펠리아스 왕 앞으로 나선 이아손

숙부 펠리아스 왕 앞으로 나선 이아손. 이아손은 금양모피를 찾아온 덕분에 펠리아스 손에 빼앗겼던 나라를 찾게 된다. 펠리아스 왕 옆의 두 여인은, 아버지를 회춘()시키려다 죽이고 마는 두 딸. 1세기 로마의 벽화.

그런데 대체 이것이 무슨 조화인가! 그 가지를 솥에서 꺼내고 보니, 파랗게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가지에서 잎이 돋고 올리브 열매가 맺는 것이 아닌가! 솥 안에서 즙이 끓다가 방울이 더러 주위로 튀자, 그 즙방울이 튄 잎은 봄 풀잎처럼 파랗게 싹을 틔우는 것이었다.

이 모든 준비를 끝낸 메데이아는 아이손의 결후()를 찢어 온몸의 피를 모두 쏟아내고는 입과 상처 구멍을 통해 솥에다 끓인 즙을 부어 넣었다. 그 즙 모두가 몸 속으로 들어가자 노인의 흰 머리카락과 수염은 그 흰 색깔을 버리고 검어지기 시작했다. 창백했던 낯빛, 초췌했던 기색도 사라지고 혈관은 피로 넘쳤고, 수족은 활기와 헌걸찬 기운으로 부풀어올랐다.

건강 상태가 40년 전의 한창 시절과 같게 되었으니 깨어난 아이손이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경우는 메데이아가 자기 마법을 선한 목적에 쓴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다음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말하자면 메데이아가 이 마법을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메데이아

늙은 양을 어린 양으로 만들어 보임으로써, 늙은 펠리아스를 젊은 펠리아스로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는 메데이아(왼쪽). 고대 그리스의 병 그림.

독자 여러분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펠리아스는 이아손의 숙부로,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고 조카를 나라 밖으로 쫓아 보낸 자다. 그러나 그런 펠리아스에게도 좋은 점은 있었던 모양이다. 딸들이 이 아버지 펠리아스에게 지극히 효성스러웠으니까 하는 말이다.

이 딸들은 메데이아가 아이손을 회춘시키는 것을 보고는 자기 아버지에게도 같은 마법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메데이아에게 부탁했다. 메데이아는 이 부탁을 들어주겠노라면서 전같이 솥을 준비했다. 메데이아는 늙은 양 한 마리를 솥에다 넣게 했다. 뚜껑을 닫자 곧 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메데이아가 뚜껑을 열자 새끼 양 한 마리가 톡 튀어나와 근처 목장으로 도망쳐 버렸다.

펠리아스의 딸들은 이 실험에 크게 만족해하고, 저희 아버지가 이 회춘 시술을 받을 일시를 정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솥에 넣을 것을 준비했다. 말하자면 솥에다 여느 물과 잡초를 넣었을 뿐이었다.

이아손과 펠리아스

숙부 펠리아스 왕 앞의 이아손. 기원전 5세기에 그려진 이 병 그림에는 펠리아스가 노인으로 그려져 있다.

메데이아와 펠리아스의 두 딸

메데이아와 펠리아스의 두 딸. 딸 중의 하나는, 메데이아에게 아버지 펠리아스의 회춘을 맡길지 말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기원전 2세기 그리스 대리석 돋을새김의 로마 시대 복제품.

이윽고 밤이 되자 메데이아는 그 딸들과 함께 펠리아스 왕의 침실로 들어갔다. 곧 왕과 호위병들은 메데이아의 주문에 걸려 잠들고 말았다. 딸들은 단검을 빼어들고 침대 모서리에 시립하고 있었다. 딸들은 메데이아가 찌르라고 해도 차마 찌를 수가 없었던지 자꾸만 머뭇거렸다. 메데이아가 딸들의 우유부단을 꾸짖었다. 딸들은 고개를 돌리고 단검으로 아버지의 몸을 마구 찔렀다. 아버지 펠리아스는 잠들어 있다가 눈을 번쩍 뜨고는 소리쳤다.
「얘들아,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아비를 죽이려는 것이냐?」

딸들은 엉겁결에 들고 있던 단검을 떨어뜨렸다. 그러자 메데이아가 회심의 일격을 가하여 그 입을 다물게 했다.
메데이아는 왕을 솥에 넣고는, 이 시왕()의 반역이 드러나기 전에 뱀이 끄는 이륜차를 타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더라면 펠리아스 딸들의 복수를 당했으리라. 요컨대 메데이아는 그 복수를 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이런 악행을 저지르면서까지 이아손을 도왔지만 도운 보상은 하나도 누리지 못했다. 메데이아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왕녀 크레우사를 아내로 취하려고 메데이아를 버린 것이다. 메데이아는 이 배은망덕한 처사에 분개하여 신들에게 복수를 맹세하고, 신부에게는 선물로 독약을 칠한 옷을 보낸 다음, 제 자식을 죽이고 궁전에는 불을 지른 뒤 뱀이 끄는 이륜차를 타고 아테나이로 도망쳤다. 

 

메데이아

이아손이 결혼 생활에 불성실하자 메데이아는 두 아들을 찢어죽인 다음 아테나이로 도망쳤다고 한다. 기원후에 그려진 이 로마 벽화에서 메데이아는 두 아들을 죽이고 떠날 것인지 망설이고 있다. 하지만 칼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심이 끝난 것 같다. 아테나이로 도망친 메데이아는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의 아내가 되었다. 테세우스 편에 이야기가 이어진다.

메데이아는 아테나이에서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 왕과 결혼했다. 뒷이야기는 테세우스의 모험을 이야기할 때 다시 언급하기로 하자.

메데이아의 마법은 독자 여러분에게 『맥베드』(Macbeth)에 나오는 마녀들의 마법을 상기시킬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귀절은 메데이아 이야기를 섬뜩할 정도로 정확하게 떠올리게 하는 일절이다.

솥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라,
유독한 내장을 넣어라.
늪의 뱀 토막도
솥에다 끓이고 구워라.
도롱뇽 눈깔에 개구리 발가락
박쥐 털에 개 혓바닥.
살무사 혀, 도마뱀 독니.
파충류 다리에 올빼미 새끼 깃털.
주린 상어 밥통에 한밤중에 캔 독미나리.
『맥베드』 제4막(4~25행)

또 이런 구절도 있다.

맥베드 :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냐?
세 마녀 : 무명지사(, Thingswithout a name〉).

메데이아 이야기에는 한 대목이 더 있다. 고금의 시인들은 잔학한 행위를 모두 마녀의 소행으로 돌리지만, 마녀의 소행이라고 기록하기에도 소름이 돋을 만큼 잔혹한 이야기다.

메데이아는 콜키스에서 도망쳐 나올 때 동생 압쉬르토스를 데리고 나왔다. 이윽고 추격해 온 아이에테스 왕의 배들이 아르고 호를 바싹 따라붙자 메데이아는 이 동생의 몸을 아홉 토막으로 난자하고 그 수족을 바다에 버렸다는 것이다. 아이에테스는 이 학살당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흩어진 토막을 모아 가까운 항구로 들어와 장례를 치렀고, 아르고 호는 이 틈을 타서 멀리 도망쳤다는 것이다.

캠벨17)은 에우리피데스18)가 쓴 메데이아의 비극을 다룬 합창곡 가사를 번역한 바 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시에서 잽싸게 자기 고향 아테나이를 뜨겁게 칭송하고 있는데 첫부분은 다음과 같다.

오, 처량한 왕비여! 그대는 어찌하여 친족의 피에 젖은 채
그 빛나는 이륜차를 아테나이로 몰았던가?
저주받은 골육살해의 죄를 묻으려고
〈평화〉와 〈정의〉가 영원히 사는 나라로 갔다는 말인가?

각주

  1. 1 〈헬레의 바다〉라는 뜻.
  2. 2 금양(金羊)을 탄 프릭소스와 헬레. 신화에서 이 쌍둥이 남매는 보이오티아에서 콜키스까지, 이 금양을 타고 날아간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는 금양이 바다를 헤엄쳐 건너고 있다.
  3. 3 로마 이름 〈야손〉, 영어 이름 〈제이슨(Jason)〉.
  4. 4 이아손은 어린 시절 펠리온 산으로 올라가 무사 수업을 받고는 하산(下山)하다 한 노파를 만난다. 이 노파가 바로, 노파로 둔갑한 헤라 여신이다. 이아손은 노파를 업고 강을 건너다 신발을 한짝 물에 떠내려 보내게 된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모노산달로스〉, 즉 〈외짝신 사나이〉라는 뜻이다. 이아손의 숙부 펠리아스는 헤라 신전의 기둥 뿌리를 뽑은 일이 있는데, 헤라 여신은 이 일을 기억하고, 왕위를 찾으러 조국으로 돌아가는 이아손을 도와주러 나타났던 것이다. 1920년에 발행된 〈탱글우드 이야기〉의 삽화.
  5. 5 눈이 백 개인 거인 아르고스가 아님.
  6. 6 〈아르고나우테스(Argonauts)〉, 즉 아르고 원정대라고 불린다.
  7. 7 흑해를 말함.
  8. 8 『카드모스 왕』 편에는 〈큰 뱀〉으로 되어 있다.
  9. 9 Jacob Bryant. 영국의 고전학자, 1715~1804년.
  10. 10 구약성서 『창세기』 6~9장 참조.
  11. 11 음악의 수호 성인.
  12. 12 오르페우스를 가리킨다.
  13. 13 John Dyer. 웨일즈 태생의 시인(1700~1756).
  14. 14 『아일랜드의 노래』에서.
  15. 15 페르세포네. 저승 왕비.
  16. 16 Things 〈without a name〉.『맥베드』 4막 1장 50행 참조.
  17. 17 Thomas Campbell. 스코틀랜드 시인(1777~1844).
  18. 18 Euripides. 그리스 시인, 극작가(기원전 484?~406).

    [네이버 지식백과] 이아손과 금양모피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2009. 6. 19., 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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