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일부 네티즌들은 뒤에서 쑥덕거리다 못해 해당 선수의 퇴출 서명 운동까지 벌였다. 또 최근 '이지아닷컴'을 만들었던 한 네티즌은 비슷한 류의 홈페이지를 만드는 몰지각한 행동을 보였다.
퇴출 서명 운동을 주동한 이는 "모든 짐을 짊고 가버린 故 송지선 아나운서의 넋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나머지의 모든 책임은 임태훈 선수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23일 만들어진 홈페이지에는 선수에 대한 욕설과 음담이 난무해 채팅창이 아예 폐쇄됐다. 집단 관음증, 이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네티즌들에게 '수사대'라는 수식어를 붙여 줬다. 언론 보다 먼저 사실을 캐냈고 정보는 삽시간에 공유됐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는 사실을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비난을 위한 비난만이 넘실댈 뿐, 그들은 비아냥거리기 바쁘다.
물론 故 고 송 아나운서의 자살은 더없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않은 채 맹목적인 비난을 가하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만을 만들 뿐이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는 한 네티즌의 주장은, 그래서 가장 일리가 있다.
야구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네티즌들의 과잉 반응이 도를 넘었다. 이번 사건은 가해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는 그런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사실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야구에 대한 무한한 열정을 보인 고인의 일은 정말 안타깝다. 그는 정말 야구밖에 모르는 야구인이었다. 하지만 가장 충격을 받는 사람이 누군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왜 비난해야 하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네티즌들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고 뼈있는 말을 전했다.
故송지선 아나운서는 이날 발인식을 거행하며 유족들과 동료 아나운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떠났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이번 사건에서, 고인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도대체 과연 언제까지 우리는 마녀사냥에 쾌락을 느낄 것인가. 스스로 반성할 때가 왔다.
[사진 = 송지선 영정]
송지선 유족, 야구인-방송사 화환 한때 거부…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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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송지선 MBC 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의 유족들이 한때 근조화환을 거부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23일 밤, 빈소가 차려진 서울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입구에는 송 아나운서를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서너 개 놓여 있었다. MBC 스포츠플러스 사장 명의로 온 것을 비롯, 대부분 송 아나운서와 인연이 있었던 몇몇 매체와 야구 관련 단체 등에서 보낸 것들이었다. 송 아나운서의 사망 소식이 갑작스럽게 전해진데다 빈소가 차려진 것도 오후 8시가 다 된 늦은 시각이라 배달돼 온 근조화환은 많지 않았고, 때문에 이웃 빈소에 비해 송 아나운서의 빈소 입구는 썰렁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밤 10시 즈음, 장례식장 관계자는 빈소 입구에 세워져 있던 근조화환을 모두 주차장 한쪽으로 치웠다. 화환을 다시 세우거나 사용하지 못하도록 꽃에 파란색 라커칠을 했고, 보낸 사람의 명의가 쓰여진 리본과 꽃이 보이지 않도록 화환의 앞면을 벽쪽으로 돌려 세워 놓았다. 장례식장 관계자는 "유족들이 근조화환을 모두 치워달라고 요청했다"며 "'이런 분위기에 화환이 다 무슨 소용이냐'면서 무척 애통해했다"고 전했다.
송 아나운서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비통한 심정, 그리고 송 아나운서가 몸 담고 있는 곳이었음에도 극단적 선택을 할 때까지 힘이 돼 주지 않았던 방송사와 야구인들에 대한 원망이 유족들로 하여금 근조화환을 편히 마주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례 이틀째인 24일, 유족들의 통탄스러운 마음은 다소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오전부터 곳곳에서 보내온 근조화환들을 받아 빈소 안에 세워 놓았다. 한국프로야구 사장단, KBS N 대표이사, 기아 타이거즈 선수단,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엔트리브 소프트 등에서 보내온 근조화환들이 영정 옆에서 고인의 가는 길을 추모하고 있다. 야구와 함께 했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 마지막 가는 길도 야구와 함께 하게 된 셈이다.
송 아나운서는 23일 오후 1시 44분 즈음 자신이 거주하고 있던 서울 서초동의 한 오피스텔 19층에서 투신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송 아나운서는 그동안 두산베어스 임태훈 선수와의 스캔들과 진실공방, 트위터 자살 암시글 파문 등으로 심적 갈등을 겪어왔으며, 23일 사측의 징계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도곡동에 위치한 강남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오전 6시, 장지는 성남 영생사업소로 정해졌으며, 장례는 화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