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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카다피 정권

손경형 2011. 8. 25. 18:52

 

 

美 “리비아 WMD 유출 막아라”

세계일보 | 입력 2011.08.24

 

알카에다 손에 못넣게 감시중

[세계일보]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붕괴된 가운데 카다피 정권의 대량살상무기(WMD)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카다피 정권은 사린, 겨자 가스와 같은 화학무기와 스커드 미사일 등 WMD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에서는 리비아의 WMD가 9·11테러의 주범인 알카에다 세력에 흘러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하원 정보위원장인 마이크 로저스 의원은 이날 CNN에 출연해 "알카에다 세력이 리비아의 WMD를 손에 넣지 못하도록 미군을 리비아에 파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로저스 의원은 정보 소식통의 언급을 인용해 카다피 정권에 맞선 반정부군 내에 알카에다 동조자들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같이 촉구했다. 로저 위원장은 "카다피 정권 붕괴라는 목표가 사라지고 나면 반정부군 진영은 부족·인종 갈등과 무기밀매업자 등의 개입으로 분열할 것"이라며 "미 행정부가 즉각 리비아의 무기 소재를 파악하고 이를 보호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데이브 레이펀 미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카다피 세력의 전투능력은 약화됐지만 여전히 위험하다"면서 "미국은 리비아의 화학무기 은닉장소를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미군은 무인정찰기를 리비아 상공에 띄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측은 리비아 반정부군 진영에 겨자 가스를 포함한 WMD 확보 및 유출 방지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coolman@segye.com

[Segye.com 인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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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끝장" 철옹성에 시민군 깃발… 트리폴리 승리함성 묻히다

한국일보 | 입력 2011.08.24

 

환호와 흥분의 도가니로 5시간여 교전 끝에 요새 입성 "신은 위대하다"

 

카다피 동상 참수… 금도금 총 등 전리품 약탈

무아마르 카다피의 요새가 열리고 그의 금빛 동상이 참수된 23일(현지시간) 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는 승리를 자축하는 함성으로 메아리쳤다.

5시간의 전투 끝에 카다피가 숨어있을 것으로 여겨지던 바브 알 아지지야를 장악한 시민군 병사들은 목이 잘려나간 카다피의 동상을 걷어차며 "신은 위대하다", "독재가 드디어 끝났다"고 환호를 질렀다. 요새 속에서 카다피를 찾아 다니던 한 시민군 병사는 "우리를 쥐떼라고 부르던 카다피야말로 이제 진짜 쥐처럼 지하에 숨어있다"며 카다피를 한껏 조롱했다. 카다피가 귀빈을 맞는 장소로 사용하던 베두인식 텐트는 불타올랐다. 승리에 도취한 시민군이 카다피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는 모습이었다. 요새 건물들에는 시민군을 상징하는 깃발이 휘날렸다.

시민군은 23일 낮 중화기를 동원해 바브 알 아지지야를 지키던 정부군과 교전을 벌였다. AP통신은 5시간만에 시민군이 진입한 요새 곳곳에 정부군 병사들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고 빼앗은 무기가 쌓여 있다고 보도했다.

시민군이 요새를 접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의 시민들까지 수백 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자동소총과 금도금 장총을 카다피의 골프 카트에 가득 싣고 순식간에 달아났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이 골프 카트는 카다피가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 지지자들 앞에 등장할 때 종종 타고 나왔던 것이다. 카다피의 침실에서 전리품을 노획하고 자랑하기도 했다.

함락 소식을 들은 트리폴리 시민들은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나와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노래를 불렀다고 아랍권 위성보도채널 알 아라비야는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병사들이 카다피가 대중앞에 나설 때 쓰고 나왔던 모자를 머리에 얹고 춤을 췄으며 곳곳에선 방공포까지 동원된 축포가 터져 트리폴리 시내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고 전했다.

기쁨에 들뜬 분위기는 24일 날이 밝은 뒤까지 이어졌다. 가족과 함께 차를 몰고 시내로 나온 시민 카레드 아즈암은 "더 이상 우리에게 공포는 남아 있지 않다"며 "카다피의 시대가 끝났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다. 트리폴리 시민들은 시민군이 처음 트리폴리에 진입한 21일에도 환호의 승리를 만끽하다가 다음날 저격의 공포를 경험하며 가슴을 조였었지만, 이날은 훨씬 안도하는 모습이라고 BBC는 전했다.

한국아이닷컴 인기기사

"오세훈 그 장면 보고 투표의사 접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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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군 “트리폴리 전투 승리”… 평화유지군 파견론 고개

세계일보 | 입력 2011.08.24

 

허공에 총 쏘며 관저진입 자축…카다피군, 퇴각하며 격렬 저항
CNN "지도력 부재 또다른 혼란"…美·EU "동결자산 재건에 사용"


[세계일보]

리비아 반정부군이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해 무아마르 카다피의 관저단지 바브 알아지지야를 접수했지만 아직 시내 곳곳에서 포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카다피군이 수도 외곽에서 미사일과 탱크 등을 동원해 반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정부군이 카다피의 관저인 바브 알아지지야를 장악한 23일(현지시간) 압델 하킴 벨하지 반정부군사령관은 트리폴리 전투의 승리를 선언했다. 바브 알아지지야 진입에 성공한 반군은 금빛 카다피 두상 조형물을 짓밟고 발로 차며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토했고 허공에 총을 발사하며 자축했다.

바브 알아지지야 함락으로 트리폴리는 완전히 반정부군이 장악했지만 카다피군의 저항은 계속됐다. 24일 트리폴리 국제공항 인근에 로켓이 날아들었고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CNN이 보도했다. 반정부군이 점령한 바브 알아지지야 안에서도 수류탄이 폭발음이 수차례 들렸다.

미국 CNN은 카다피 측이 "몇년이고 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알아라비야 TV는 바브 알아지지야에서 멀지 않은 알수르 거리에 로켓 수십발이 떨어졌다면서 박격포 공격도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전날에도 반정부군이 장악한 미스라타, 주와라, 트리폴리 등 곳곳에서 격전이 벌여졌다. 미스라타의 반정부군 대변인은 "카다피군이 근거지인 수르트에서 미스라타를 향해 몇발의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했다"며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고 말했다. 또 튀지니와의 국경도시인 주와라에서도 포격이 있었으며, 트리폴리 서쪽에 위치한 알제라트에서도 미사일과 탱크를 동원한 카다피군의 공격이 감행됐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카다피 관저 폭격 전후 무아마르 카다피의 관저단지 바브 알아지지야가 23일 나토군의 폭격을 받기 전후 모습이 인공위성에 포착됐다. 사진 오른편 반원형 건물은 카다피가 집무실로 이용한 곳(서재 및 리셉션홀)으로, 폭격을 받은 후 오른쪽 절반이 완파됐다. 가운데와 왼쪽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두 건물은 각각 통신센터와 관련시설이다. 나토군은 카다피군의 통신체계을 마비시키기 위해 이 시설을 집중 폭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단지의 서북쪽에 있다.
출처 구글어스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반정부군의 지도력 부재가 또 다른 혼란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이 나왔다. 제임스 린지 미 외교협회부회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가 물러난 자리를 누가 메울지 불투명하다"며 "미국은 리비아의 과도기 무정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미국과 관련국들이 리비아의 치안과 평화 유지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 등 관련국들이 리비아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것을 제안하며 국가과도위원회(NTC)가 실질적인 정부로 기능할 때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올 초 동결한 리비아 자산을 반군이 국가 재건 활동과 인도주의적 사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미 국무부의 빅토리아 눌런드 대변인은 23일 "미국이 동결한 미국 내 리비아 자산 가운데 최대 15억달러를 이번주 중으로 해제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라며 "이를 위해 유엔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도 유엔의 대(對) 리비아 금융제재가 풀리는 대로 카다피와 측근들의 은닉재산 동결 조치를 해제하고, 이 돈이 리비아 재건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선형 기자

[Segye.com 인기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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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42년 독재 끝] 항전-망명-공멸… 카다피의 선택은?

국민일보 | 입력 2011.08.24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그는 반정부 시민군에 의해 붙잡히거나 달아나거나 자멸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대량살상무기를 동원해 공멸을 택하는 것이다.

 

◇끝까지 싸우나=카다피는 24일(현지시간) 라디오방송 연설에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실제로 리비아 정부군은 그의 연설 뒤 미사일과 탱크를 동원해 반격에 나섰다. 정부군은 카다피의 고향인 중부 도시 시르테에서 동부 도시 미스라타를 향해 스커드미사일 여러 기를 쏜 것으로 알려졌다. 튀니지와의 국경도시인 주와라도 포격했다.

카다피가 택한 길이 그가 이날 라디오 녹음연설에서 장담한 것처럼 결사항전일 경우 그가 붙잡히거나 숨지기 전까지 혼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카다피 정부 대변인은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나토군과 시민군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해외 망명 가능성=24일 새벽 트리폴리 공항에서는 시민군과 카다피군 사이 치열한 전투가 전개됐다고 미국 CNN방송이 보도했다. 시민군은 정부군이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으로 봐 카다피를 보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공항 주요시설은 시민군에 의해 장악됐으나 동쪽 일부는 정부군이 점거하고 있다.

양측이 공항을 뺏기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카다피의 해외 망명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 일부 국가는 카다피가 도망쳐오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니카라과는 카다피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다고 23일 밝혔다. 일각에서는 카다피의 자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으나 역대 독재자들의 최후 선택에 비춰볼 때 현실성이 낮다는 의견이 많다.

◇화학무기 사용 우려=가장 우려스런 전망은 화학무기 사용이다.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 따르면 리비아에는 겨자가스가 10t가량 있다. 겨자가스는 시간이 지나면 부패해 심각한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는 평가다. 그렇지만 파괴력이 강한 화학무기 특성상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미 국방부는 "카다피 세력의 전투 능력은 여전히 위험하다. 리비아의 화학 무기 장소를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 내부에서는 카다피 측의 화학공격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의 현장 트위터 중계에 따르면 트리폴리에는 정부 측이 수도에 독극물을 풀었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시민 두 사람이 물을 마시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물을 마시지 말라는 경고도 나돌고 있다고 한다.

카다피가 재래식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해 최후의 발악을 할 가능성도 있다. 리비아에는 스커드미사일이 240기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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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 "카다피, 리비아 95% 통제 상실"

뉴시스 | 정진탄 | 입력 2011.08.24

 

【카이로=로이터/뉴시스】정진탄 기자 =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와 그의 추종세력은 리비아 95%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통치는 종말을 고하게 됐다고 반군 한 대변인이 알 자지라 TV에 24일 밝혔다.

압달라 아부 아프라 반군 과도국가위원회(NTC) 군 대변인은 "카다피 정권의 95%는 끝났으며 리비아 95%는 반군 통제 하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비아 통치자는 트리폴리 군사시설인 바브 알 아지지야를 장악한 사람"이라며 "그것이 현실이고 카다피는 끝났다"고 말했다.

chchtan798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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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리비아 대표, "이제부터 과도정부 대표"

YTN | 입력 2011.08.25 17:43

 


[앵커멘트]

주한 리비아 대표부는 이제부터는 카다피 정권이 아닌 과도정부를 대표할 것이라며, 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격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한국과 리비아 관계를 한층 더 강화하겠다는 건데요.

강진원 기자가 알 갈리 주한 리비아대표부 대표를 직접 만났습니다.

[리포트]

주한 리비아 대표부에 시민군이 사용하는 국기가 게양됐습니다.

카다피 정권이 지난 1977년부터 사용했던 녹색깃발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새로 걸린 국기는 지난 1951년 리비아가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할 때 사용한 겁니다.

알 갈리 주한 리비아 대표는 리비아 국민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인터뷰:알 갈리, 주한 리비아대표부 대표]

"리비아 국기는(과도정부 깃발) 시민군 '혁명' 뒤 트리폴리에 게양됐습니다. 저도 리비아 국민의 뜻에 따라 이곳에 국기를 걸었습니다."

한국과 돈독한 우호관계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과도정부의 뜻도 전했습니다.

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격상해 양국 관계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인터뷰:알 갈리, 주한 리비아대표부 대표]

"기존 대표부를 조만간 대사관으로 격상할 것입니다."

카다피 정권은 지난 2006년 외교관 부정행위 연루 혐의로 양국 간 외교갈등이 촉발되자 이듬해 대사관을 대표부로 격하했고,

지난해에는 국가정보원 직원을 리비아에서 추방하기도 했습니다.

알 갈리 대표는 우리 교민의 안전 보장과 한국 기업과의 계약 유지도 재차 약속했습니다.

[인터뷰:알 갈리, 주한 리비아 대표부 대표]

"리비아 과도국민위원회는 리비아 내 한국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것입니다."

알 갈리 대표는 한국 국민과 정부가 과도정부를 지지하고 인도적 지원 의사까지 밝힌 데 대해 감사하다면서, 리비아 재건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YTN 강진원[jinwon@ytn.co.kr]입니다.

[관련기사]

▶ 끝나지 않은 전쟁의 고통...리비아 현지 취재

▶ 속속 드러나는 카다피 자녀들의 '호화생활'

▶ 트리폴리 진입 시도 이탈리아 기자 4명 피랍

▶ 카다피 비자금 서방세계 관심 집중

▶ '도망자' 카다피에 거액 현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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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리비아 대표, "이제부터 과도정부 대표"

YTN | 입력 2011.08.25 17:43

 


[앵커멘트]

주한 리비아 대표부는 이제부터는 카다피 정권이 아닌 과도정부를 대표할 것이라며, 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격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 한국과 리비아 관계를 한층 더 강화하겠다는 건데요.

강진원 기자가 알 갈리 주한 리비아대표부 대표를 직접 만났습니다.

[리포트]

주한 리비아 대표부에 시민군이 사용하는 국기가 게양됐습니다.

카다피 정권이 지난 1977년부터 사용했던 녹색깃발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새로 걸린 국기는 지난 1951년 리비아가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할 때 사용한 겁니다.

알 갈리 주한 리비아 대표는 리비아 국민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인터뷰:알 갈리, 주한 리비아대표부 대표]

"리비아 국기는(과도정부 깃발) 시민군 '혁명' 뒤 트리폴리에 게양됐습니다. 저도 리비아 국민의 뜻에 따라 이곳에 국기를 걸었습니다."

한국과 돈독한 우호관계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과도정부의 뜻도 전했습니다.

대표부를 대사관으로 격상해 양국 관계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인터뷰:알 갈리, 주한 리비아대표부 대표]

"기존 대표부를 조만간 대사관으로 격상할 것입니다."

카다피 정권은 지난 2006년 외교관 부정행위 연루 혐의로 양국 간 외교갈등이 촉발되자 이듬해 대사관을 대표부로 격하했고,

지난해에는 국가정보원 직원을 리비아에서 추방하기도 했습니다.

알 갈리 대표는 우리 교민의 안전 보장과 한국 기업과의 계약 유지도 재차 약속했습니다.

[인터뷰:알 갈리, 주한 리비아 대표부 대표]

"리비아 과도국민위원회는 리비아 내 한국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할 것입니다."

알 갈리 대표는 한국 국민과 정부가 과도정부를 지지하고 인도적 지원 의사까지 밝힌 데 대해 감사하다면서, 리비아 재건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YTN 강진원[jinwon@ytn.co.kr]입니다.

[관련기사]

▶ 끝나지 않은 전쟁의 고통...리비아 현지 취재

▶ 속속 드러나는 카다피 자녀들의 '호화생활'

▶ 트리폴리 진입 시도 이탈리아 기자 4명 피랍

▶ 카다피 비자금 서방세계 관심 집중

▶ '도망자' 카다피에 거액 현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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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반군 카다피 목에 현상금 18억원

연합뉴스 | 진혜숙 | 입력 2011.08.25 

 


 

(벵가지 AP·로이터=연합뉴스) 리비아 반군은 24일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목에 현상금 200만 디아르(한화 18억 원 상당)을 건다고 발표했다.

리비아 반군 조직 국가과도위원회(NTC) 의장 무스타파 압델 자릴은 이날 트리폴리에서 익명 사업가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카다피를 생포하거나 사살하는 이에게 이 같은 금액의 현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NTC는 이날 성명을 통해 카다피를 생포하거나 사살하는 그의 측근에 대해서는 사면 조처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argus10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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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특수부대 직접 `카다피 사냥'>

연합뉴스 | 이성한 | 입력 2011.08.25

 

SAS 대원, 현지인 위장한 채 작전중

(런던=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 영국 특수부대인 SAS 대원들이 리비아 트리폴리 등 주요 도시에서 권좌에서 쫓겨난 무아마르 카다피를 추적하는 비밀작전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5일 군 소식통을 인용해 SAS 22연대 소속 대원들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명령에 따라 트리폴리에서 반군들을 이끌며 카다피 색출작전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SAS 대원들은 현재 트리폴리 등지에서 현지인처럼 평범한 복장으로 위장한 채 반군과 동일한 종류의 무기를 소지하고 카다피의 소재를 쫓고 있다.

영국 정부는 SAS 대원들에게 카다피를 색출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을 명령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정식 명칭이 육군공수특전단인 SAS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창설된 특수부대의 원조로 작전수행 능력이 탁월해 `스매시(SMASH)' 팀으로 알려져 있다.

리비아의 내전 상황이 전개되자 1월께 투입돼 카다피 진영에 대한 정찰 활동을 통해 비행장, 레이더 기지, 대공 부대 위치 등 정밀 타격 목표물을 식별해 나토군에 알려줘 카다피군을 무력화하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

또한 지난 2월 말에는 내전이 심해져 사막에 고립된 영국 및 외국인 근로자 수백명을 벵가지 남부 활주로로 이동시킨 뒤 공군 C-130 허큘리스 수송기를 이용해 철수시키기도 했다.

SAS가 리비아에서 반군 지원 활동을 벌여온 데 대해 영국군 당국이 확인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앞서 카다피는 23일 트리폴리의 요새 바브 알-아지지야의 지하터널을 이용해 반군의 포위망을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으나 소재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반군과 서방 정보당국은 그가 아직 트리폴리에 머물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카다피는 요새를 빠져나간 뒤 TV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은 채 트리폴리 거리를 몰래 다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리비아 과도 국가위원회(NTC)는 카다피의 목에 현상금 200만 디아르(한화 18억 원 상당)을 내걸고 카다피를 생포하거나 사살할 경우 그의 측근이라도 사면해주겠다고 전날 발표했다.

ofcour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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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을 그리워하는 아프간 국민들

“연합군의 민간인 살상과 정부 부정부패에 민심이 돌아섰다”

신동아 | 김영미│분쟁지역 전문 | 입력 2011.08.25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지방재건팀(PRT) 차리카 기지를 겨냥한 로켓포 공격이 빈번해지고 있어 한국군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현지 시각으로 7월6일 오전 1시47분 로켓포탄 5발이 차리카 기지 주변에 떨어졌다. 이렇게 우리군 기지가 공격당한 것이 올해 들어서만 12번째다. 5월 초 빈 라덴 사망 이후 두 달 동안 7번이나 공격을 받았다. 더군다나 이번 공격은 10발의 로켓이 영내와 영외로 쏟아져 횟수가 거듭될수록 공격 양상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듯하다. 당시 차리카 기지 앞 쟝글바에 사는 주민은 "이번에는 10발이나 날아와 혹시 우리 마을에도 잘못 떨어질까봐 걱정을 했다. 10여 분간 교전하는 소리도 들었다. 아마 우리 마을 사람 모두 들었을 것이다"고 그날의 사건을 증언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공격이 잦아지면서 향후 한국군 기지의 치안 상황에 상당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왼쪽)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오른쪽) 2008년 7월7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인도대사관 앞에서 탈레반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차량 이용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최소 41명이 사망하고 140여 명이 다쳤다

한국 정부는 현지 아프간 당국과 함께 PRT 기지를 공격한 세력과 공격 의도를 파악 중이라고는 하지만 지금껏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공격 초기만 해도 경호업체 교체 과정에서 탈락한 일부 경호원의 보복공격으로 추정했으나 최근에는 탈레반 세력일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이번 공격을 분석하는 것과 동시에 다시 미군이 있는 바그람 기지로 한국군이 철수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국방부 관계자는 "아직 미군과 조율하지 않은 상태이고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우리 군이 차리카 기지에 주둔한지 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신중하게 고려 중이다. 하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라 바그란 기지로 들어가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여름 한국군 파병 당시 아프간 북부 파르완주 차리카 기지는 아프간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이유로 주둔지로 선정된 곳이다. 그럼 안전하다고 했던 한국군 기지가 올 들어 왜 로켓 공격을 12차례나 받은 것일까?

아프간 전역으로 퍼진 탈레반

일반적으로 아프간에서 탈레반 강세 지역을 꼽으라면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한 아프간 남부지역이 거론된다. 과거 탈레반의 수도라 불리던 칸다하르는 대표적인 탈레반 장악 도시 중 하나다. 이 남부 지역에는 미군과 영국군, 그리고 캐나다군이 주둔하며 10년간 탈레반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 결과 그 3개국 군은 막대한 전사자를 냈다.

그런데 연합군 전사자 대부분은 전통적인 교전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었다. 탈레반은 대체로 드러내놓고 전면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다. 탈레반이 연합국 병사들을 공격하는 방법은 주로 도로매설폭탄(IED)이었다. 군인들과 군용 차량이 다니는 도로에 폭탄을 매설해 그들이 지나가는 순간 원격 조종장치를 눌러 터지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한 폭파력으로 차량에 불이 나는 정도였으나 점점 TNT 같은 강력한 폭탄을 터뜨렸다. 미국이 자랑하는 스트라이커 장갑차나 에이브러햄탱크도 순식간에 날아가 휴지가 됐다.

탈레반이 도로에 묻어놓은 폭탄이 강력해질수록 연합군 전사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탈레반의 숫자와 전력은 미군의 막강한 화력에 비해 약하고 보잘 것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의 화력으로 최대한의 연합군 희생을 노렸다. 탈레반이라고 해서 유니폼을 맞춰 입은 것도 아니다. 주민들 속에 섞여 터번을 두르고 있는 그들은 은밀하고 조용히, 그러나 강력한 공격으로 연합군을 무너뜨리고 있다. 미군에게 도로매설폭탄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지난해 2월 연합군 전사자가 계속 늘어가면서 미군은 아프간 남부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했다. 미군은 마르쟈 지역을 점령하며 탈레반 세력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듯했다. 하지만 이 군사작전은 오히려 탈레반의 활동반경을 전국으로 넓혀준 결과만 낳았다. 미군이 남부에서 탈레반을 몰아내자 이 탈레반들은 아프간 북부나 서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사실 탈레반 입장에서 굳이 남부 지방을 고집할 이유도, 미군의 강력한 화력을 상대할 이유도 없다. 탈레반이 퇴각했다기보다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하며 미군과 대적하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른바 풍선 효과다. 남부의 미군들이 약간 편해진 대신 탈레반이 이동한 지역, 특히 북서부 지역의 치안은 점점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아프간 북부는 상대적으로 치안이 안정적인 지역이었다. 발크주의 마쟈리 샤리프나 쿤두즈나 파르완 지역은 탈레반이 많은 파슈툰족이 아닌 타지크족이 주로 사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2월만 해도 우리 한국군이 파르완주 차리카 기지로 파병될 당시 우리 정부는 PRT 부지선정 사실을 발표하면서 차리카 기지 주변 치안이 전반적으로 아프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전한 편이라고 밝혔다. 당시 송웅엽 주(駐)아프가니스탄 대사는 "카불 북쪽에 인접한 인구 70만명의 파르완주는 주민 대부분이 탈레반에 적대적인 타지크족으로 구성돼 있어 치안 사정이 비교적 양호하다"고 말했다. 마치 탈레반이 타지크족이 겁나 북부 지역에는 발을 못 붙일 것 같은 뉘앙스였다.

하지만 결과는 탈레반이 남부에서 북부로 대거 이동하면서 한국군이 위치한 파르완주를 비롯해 북부 지역 대부분에 탈레반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올 들어 일어난 한국군 기지에 대한 12차례의 공격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한국군이 아프간 북부지역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주둔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절대 안전한 지역이 아니다. 한국군으로서는 아프간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 결과인 셈이다

주민들과 융화하는 탈레반

한국뿐만이 아니라 아프간 북부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했던 또 다른 연합군 중 더한 운명에 처한 경우도 있다. 아프간 북부의 치안을 담당하며 쿤두즈주에 주둔한 독일군이다. 아프간 주둔 독일군은 현재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4800명 규모다. 쿤두즈주는 아프간에서도 최북단, 그러니까 타지키스탄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외국과의 교류도 비교적 있는 곳이고 인구의 대부분이 타지크족이다. 그리고 이 쿤두즈도 아프간에서 손꼽히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이었다.

독일군은 전투보다는 평화 재건 사업이나 보급품을 위한 수송에 치중했고 기지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 조용한 군대였다. 그 때문에 전사자가 많은 미군이나 영국군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고, 연합군 군사작전에도 독일군은 가능하면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아직도 독일군의 전사자는, 수백 명의 전사자를 낸 미국과 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52명이다. 쉽게 말해 다른 연합군과 달리 독일군은 자국 병사의 희생을 막기 위해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쿤두즈는 비교적 안정된 치안을 유지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쿤두즈 위에 있는 타지키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외국인 무장 세력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탈레반, 알-카에다, 그리고 하카니 조직을 포함한 다른 반군세력 전사들의 은신처로 변했다. 지난해부터는 탈레반이 북부로 북상하면서 쿤두즈주와 인접한 지역의 치안은 점점 불안해졌다. 쿤두즈 경찰도 지난해 여름 기자회견을 통해 아랍과 체첸,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 외국인 무장 조직과 탈레반이 결합해 점점 커다란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비교적 평화로웠던 쿤두즈에서도 북상한 탈레반과 이 외국 무장 세력들이 결합해 서서히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지만 아프간 정부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2007년부터 2년간 두 차례에 걸쳐 쿤두즈 경찰 병력을 30% 이상 줄였다. 아프간 남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쿤두즈가 안전하다고 오판 한 것이다.

이처럼 경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탈레반과 외국 무장 세력 등이 급속도로 확대됐다. 쿤두즈에서 농사를 짓는 나사르씨는 "2년 전부터 탈레반이 우리 마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도둑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는 등 사람들과도 잘 지냈다"며 탈레반이 주민들과 융화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 지난해 6월15일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에 참여하는 지방재건팀(PRT, 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의 경호와 경비 임무를 수행할 한국군 파병부대인 오쉬노(Ashena) 부대 중 선발대 90여 명이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아프간 현지로 출국했다.

이런 방법으로 주민 사이에 세력을 확장한 탈레반은 연합군을 위협하는 공격을 감행할 능력도 함께 갖춰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탈레반과 연합군의 충돌이 시작됐다. 2년 전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처음으로 쿤두즈 인근 지역에 나토군의 야간 폭격이 잇따랐다. 무하마드 오마르 쿤두즈 주지사는 "카나바드 지구의 경우 인구가 35만명에 달하는데 경찰 병력은 고작 80명뿐이다. 또 차하르다라 지구에는 수백 명의 무장 세력이 존재하는데도 경찰은 56명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쿤두즈의 치안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그 이유는 쿤두즈가 갖는 전략적 중요성에 비해 경찰 병력이 적기 때문이다. 우리 경찰은 모든 지역을 방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렇게 치안 공백이 커지는 가운데 2009년 모하마드 카심 하임 부통령이 쿤두즈 지방에서 탈레반에게 습격을 당했다. 하임 부통령이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을 대신해 선거운동을 벌이다 탈레반의 공격을 받았고 하임의 경호원 한 명이 부상했다. 하임 부통령도 쿤두즈가 이렇게까지 위험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하임 부통령은 무사히 탈출했지만 부통령의 안위도 보장하지 못할 만큼 쿤두즈 상황은 악화일로로 가고 있었다. 비록 미군이 증파를 통해 10만이라는 숫자가 아프간에 주둔하지만 쿤두즈 같은 사각지대를 간과하며 아프간 북부의 전체 치안이 흔들렸다. 탈레반이 연합군 치안 전선의 허를 찌른 것이다.

독일군의 민간인 대량 살상

그러던 지난해 9월 독일군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쿤두즈에서 바글란을 잇는 고속도로에서 독일군 기지로 가던 독일군 석유 탱크로리 트럭 2대가 탈레반에게 강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도로는 독일군이 수송을 위해 항상 이용하던 고속도로로 이 사건 이전에도 종종 탈레반에게 물품을 강탈당하곤 했다. 운전사들을 죽인 탈레반이 이 트럭 두 대를 직접 운전하던 중 한 대가 운전 미숙으로 강물에 빠졌다. 탈레반은 이 트럭을 끌어내려 애썼으나 여의치 않자 인근 주민들에게 석유를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주민 200여 명이 공짜 연료를 가져가기 위해 양손에 통을 들고 몰려들었다.

이 광경을 위성을 통해 지켜보던 독일군 사령관은 독일군 기지에서 일하는 아프간 현지 통역에게 "이 주민들이 모두 탈레반이냐"고 물었고 현지 통역은 탈레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마도 통역 미숙이 아니었나 추측되는 부분이지만 독일군 사령관은 대로해 미국 전투기를 출격시켜 공습 명령을 내렸다. 한밤중에 엄청난 폭격이 유조차 주변에 몰려든 주민들에게 가해졌고 결과는 100명가량의 민간인 희생을 불러왔다. 공짜 석유를 얻으려다가 몰살을 당한 것이다.

탈레반은 즉각 성명을 내고 "우리는 전 세계 인권단체와 유엔 당국, 독립적인 국제기구와 정부들이 이번 사건을 냉철하게 조사해 비판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움으로써 인권적 윤리적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나토군의 폭격으로 150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희생자 가운데는 유조차에서 연료를 얻기 위해 모였던 어린아이들과 일가족 등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공습을 요청했던 독일군은 50여 명의 탈레반이 숨졌으나 민간인 사망자는 없었고 공습은 정당했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의 사망자 숫자와 죽은 사망자들이 탈레반이냐 아니면 민간인이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민간인 대량 살상은 미국과 연합국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다. 미군의 화력이 워낙 강해서 공중 폭격이 시작되면 웬만한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다. 아프간 개전 초기,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고 탈레반 병사 몇 명을 잡겠다고 마을 전체를 폭격하다가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이 민간인 대량 살상은 곧 아프간 민심으로 이어졌고 가족을 잃은 아프간 사람들은 탈레반에 협조하는 세력이 되어갔다.

그래서 민간인 대량 살상이 있을 때마다 미국과 연합국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곤 했다. 독일군은 석유탱크 폭격이 정당했다고 열심히 주장했지만 현지 아프간 관리와 쿤두즈 주정부가 사망자 중에 어린이 등 민간인이 포함돼 있었다고 탈레반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독일군은 아프간 민간인을 대량 살상한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미국 등 나토 회원국들도 독일군에게 등을 돌렸다. 당시 나토군 현장조사를 지휘한 아프간 주둔 미군의 그레고리 스미스 소장은 독일군의 현장 보존 노력이 미흡했다고 비판했고,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도 독일군의 한발 늦은 대응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도 "이번 공습은 중대한 실수로, 우리는 이번 사건을 조사해 관련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군은 이 사건 이후 아프간 사람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됐고 그 책임을 혼자 져야 하는 외로운 신세가 된 것이다.

4월 춘계공격

한순간의 실수로 민심을 잃은 독일군은 그 후에도 탈레반의 엄청난 공격에 시달렸다. 최근에는 독일군 사령관마저 공격을 당했다. 5월28일 아프간 북부 타카르주 주지사 청사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해, 아프간 북부 지역 경찰 사령관인 무함마드 다우드 다우드 장군 등 고위 경찰 2명을 포함해 6명이 숨지고 마르쿠스 크나이프 아프간 북부 지역 나토 사령관 등이 다쳤다. 사망자에는 다우드 장군 외에 타카르주 경찰총수인 샤 자한 누리와 독일군 2명이 포함됐다. 또 타카르주 주지사인 압둘 잡바르 타크와도 부상했다. 부상한 마르쿠스 크나이프는 독일군 사령관이자 북부지역 연합군 사령관이다. 2001년 아프간전 이후 연합군 장성이 부상당한 것도 그가 처음이다.

사건은 이날 주지사 청사에서 열린 아프간 고위 관료들과 아프간 주둔 연합군 고위 장교들의 회의장에서 일어났다. 회의가 시작되자 경찰 제복을 입고 기다리던 탈레반 자살 특공대원이 현장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충격적인 것은 나토군 고위 장성과 아프간의 최고위급 안보 관료들이 참석하는 회의의 철통같은 보안이 뚫렸다는 점이다. 탈레반은 이제 아프간 북부에서도 최고위급을 노릴 만큼 정보력과 인력을 갖추고 있다.

이 사건에 앞서 이틀 동안 독일 해병대원 2명이 도로 매설폭탄에 의해 숨지고 6월2일에도 쿤두즈에서 남쪽으로 36㎞ 떨어진 곳에서 길가에 설치된 폭탄이 터지면서 이곳을 지나던 독일군 장갑차가 전복돼 독일군 한 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하는 등 독일군에게 비보가 연일 날아들었다. 급기야는 독일 연방군 참모총장인 볼커 위커 장군이 7월2일 독일 국영 도이칠란드푼크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난해 추가 배치된 500명의 병력을 감축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고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도 "아프간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독일군을 올해 말부터 철군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쿤두즈 상황이 독일군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몰고 간 것이다.

독일군이 두 손 들고 쿤두즈를 떠나면 같은 아프간 북부에 주둔하고 있는 한국군에게도 여간 부담이 아니다. 가뜩이나 치안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나토군 중 3번째 규모인 독일군이 빠져나간다면 당연히 북부에는 커다란 치안 공백이 예상된다. 독일군이 주둔하는 쿤두즈와 한국군이 주둔하는 파르완주는 같은 아프간 북부이고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독일군이 겪은 일련의 과정이 한국군에게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최근 들어 한국군 기지에 날아든 로켓 공격들은 이런 아프간 북부의 치안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유는 탈레반의 춘계 공격으로 추정된다. 탈레반은 해마다 4월부터 춘계공격을 시작하고 통상 12월 즈음이면 공격횟수를 줄인다. 그것은 겨울이 오면 탈레반 병사들이나 지도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4월까지 휴가를 즐기기 때문이다. 가족들도 만나고 조직 라인도 정비하며 눈 덮인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다시 모여 공격을 시작하곤 한다.

필자는 2006년 겨울 아프간 남부 가즈니주에서 탈레반 병사의 가족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사마칸이라는 이름의 이 병사에게는 아내와 세 아이가 있었다. 그는 주로 아프간 남부 헬만주에서 활동하고 겨울이 오면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지도자급 탈레반들도 대부분 집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고 몇몇 지도자는 파키스탄 탈레반을 방문하는 출장을 가기도 한다. 그리고 내년의 사업에 대해 구상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도 알아보곤 한다. 봄이 되면 그들에게 복귀하라는 연락이 올 것이고 나는 다시 헬만주로 돌아가 전투를 계속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모인 탈레반은 봄이 되면 다시 전투를 벌인다. 4월이 되면 으레 탈레반 대변인이라 불리는 인물이 춘계 공격을 시작한다고 성명을 연례행사처럼 낸다. 그 성명이 끝나면 탈레반의 공격 횟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한여름이 되면 더욱 거세진다. 연합군 사상자도 이것과 비례한다. 그래서 한국군 기지에 로켓공격이 잦아졌던 시기도 이와 비슷하다. 만약 그 공격이 탈레반에 의한 것이라면 춘계 공격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종합해볼 때 한국군 기지에 대한 공격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아프간 치안 상황에 따른 영향이라 추정된다.

탈레반의 가공할 전투력

최근 탈레반의 공격 양상도 많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도로매설폭탄이 주 공격방식이었다면 요즘에는 아프간 군대나 경찰에 섞여 위장하는 방법을 많이 쓴다. 탈레반 요원들이 일정한 시간 동안 군대나 경찰로 들어가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폭탄 테러를 하거나 암살을 시도한다. 지난 4월27일 아프간 수도 카불 국제공항의 공군기지에서 훈련을 받던 아프간 공군 장교가 미국인 교관 등 9명에게 총기를 난사해 미군 8명과 미국인 민간 계약업자 1명 등 모두 9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미드 굴(48)로 밝혀진 이 아프간 공군 장교는 조종사였다.

사건 직후 보도 자료를 낸 탈레반 대변인 자비울라 무자히드는 이 조종사에 대해 "군 간부로 위장하고 있었고, 공군기지 내 다른 탈레반들이 공항에 들어가도록 도왔다"며 "우리는 모든 보안시설에 침투할 수 있으며, 모든 곳에 잠입해 있다"고 덧붙였다. 이제 탈레반은 마음만 먹으면 어느 군사시설이라도 자유롭게 드나들고 위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간에서 단일 사건으로 미국인 9명이 한꺼번에 숨진 것은 2005년 6월 탈레반의 로켓 공격으로 미군 헬기가 추락해 미군 16명이 숨진 이후 처음이라 미군들을 당황하게 했지만 정작 더욱 심각한 것은 연합군 주변에는 언제든 위장한 탈레반이 총을 들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사건뿐 아니라 4월16일에는 아프간군이 미군에게 수류탄을 던져 미군 6명이 사망했고 그 다음 주에도 아프간 군복을 입은 탈레반 동조자가 아프간 국방부 건물에서 총기를 발사해 2명이 숨졌다. 앞서 설명한 독일군 사령관과 아프간 고위 장군들의 회담장 폭탄 사고도 아프간 군인으로 위장한 탈레반 요원들이 저지른 것이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2009년 3월 이후 지금까지 아프간군이나 아프간 경찰로 위장한 탈레반이 저지른 테러는 20건이며, 이로 인해 나토군 36명이 사망했다.

이제 미군과 연합군은 아프간 군인들과 경찰들마저 믿기가 힘들어졌다. 그들 중 누가 위장한 탈레반인지를 전혀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익명의 미군 장교는 "연합군이 아프간군과 협력해 군사작전도 나가야 하고 군사 정보도 공유해야 하는데 이들 중 누군가가 느닷없이 총을 쏘거나 폭탄 테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프간 군인이 옆에 있는 것도 사실 두렵다"고 말했다. 탈레반이 이렇듯 쉽게 군과 경찰에 침투할 수 있는 것은 연합군의 점진적인 철군을 위해 아프간이 자체 군인 모집에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아프간에서 철군을 하려면 아프간 군인들이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연합군은 아프간 군인 모집과 훈련에 열성이다.

군인이 되기 위해 모인 아프간 사람들 중에는 글자를 모르는 문맹자가 많다. 하지만 무조건 뽑아서 제식훈련을 시킨다.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아프간에서 군인이 된다면 적어도 월급을 받을 테니 17세 어린 청소년부터 70세 할아버지들까지 아프간 군인에 지원한다. 당장 머리 숫자가 아쉬운 연합군과 아프간 정부는 이들을 대부분 받아들인다.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아프간 군대 규모는 15만명으로 두 배나 증가했다. 미군이 철군한다는 2014년까지 아프간군이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계속 모집을 늘릴 계획이다. 이 틈에 탈레반 병사들이 위장을 하고 아프간 군인이 되는 것은 아주 쉽다. 선진국처럼 전산화가 잘되어 있지 않은 낙후된 아프간에서는 병사의 과거 전력에 대해 확인할 방법도 없다.

지난 5월18일 아프간 고위급 장군의 표지판인 'A'를 단 차량이 카불에 있는 국방부 입구에 다가섰다. 차량에는 특별 출입증이 붙어 있어 경비원들은 신속히 차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국방부 안으로 진입한 이 차량에서 갑자기 아프간군 제복을 입은 남자가 뛰어내려 국방부 건물로 들어가 총격을 가해 아프간 병사 2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아프간 경찰과 군인으로 가장한 사람이 저지른 사건으로 밝혀졌다. 지난 4월 아프간 국방부 청사 내 자살폭탄 사건도 일어났는데 이것은 당시 아프간을 방문 중인 제라르 롱게 프랑스 국방장관을 표적으로 한 공격으로 드러나면서 파장이 컸다. 당시 차량을 국방부 안으로 운전했던 남성은 아프간 장군의 조카였다고 AP통신이 익명의 정부 관리를 인용해 전했다.

압둘 라힘 와르다크 아프간 국방장관도 최근 의회에서 "적이 아프간 군 조직에 침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 같은 탈레반의 전술 변화는 아프간 정부에 대한 불신을 높이고, 아프간군을 와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군과 아프간 동맹군에 맞서 공격 규모는 작지만 자살폭탄이나 암살, 침투 등의 방법을 사용해 공격 효과를 최대화하는 것이다.

12살 소년의 자살폭탄 공격

또한 탈레반이 요원 침투와 더불어 요인 암살을 주도하는 것도 최근 달라진 공격 양상이다. 5월12일 미 해병대 중령과 하사 등 두 명이 아프간 남서부 헬만드주에서 사망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에 따르면 '아프간 국가 민정경찰(ANCOP)'소속 병사 한 명이 경찰서를 방문한 이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탈레반이 경찰로 위장하고 있다가 이들을 노린 것이다. 물론 그들이 경찰서를 방문한다는 정보도 아프간군이나 경찰로 위장한 탈레반 요원들이 입수했다. 이에 대해 카불 통신의 나사르 라흐만 기자는 "경험이 많고 노련한 미군 해병대 중령이 그렇게 쉽게 당한 것은 탈레반이 아프간 경찰과 군인 사이에 조직적으로 섞여 있기 때문이다. 미군을 비롯한 나토 연합군이 훈련시킨 경찰이지만, 사실은 탈레반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외국군의 주요 인사를 사살한다. 이것이 최근 탈레반 공격 방식이다"고 말했다.

이런 공격방식으로 독일군 사령관도 부상했고 아프간 고위 관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로 미루어 만약 한국군이 회의를 위해 주 청사나 경찰서를 방문한다면 이 사실이 누설되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보안이 아무리 철통같더라도 아프간 군경에 섞여 있는 탈레반을 따돌리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PRT 사업은 아프간 군인들과 경찰의 협조가 필수이다. 한국군뿐만 아니라 미군을 비롯한 다른 연합군들도 입장이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아프간 군경이 제대로 돌아가야 그들도 아프간에서 발을 빼고 치안 유지를 아프간 정부에 맡길 수 있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탈레반의 자살 폭탄 테러도 양상이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이 자살 폭탄을 주도했다면 지금은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자살폭탄 테러에 동원된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접경 지역인 팍티카주 바르말의 한 시장에서는 최근 12살 난 소년이 시장에서 입고 있던 폭탄 조끼에 불을 붙여 민간인 4명을 숨지게 했다. 영국 가디언지에 소개된 누르 모하마드라는 14살 소년은 결혼식장에서 휴대전화를 훔쳤다가 탈레반에게 걸려 자살 테러범으로 훈련을 받았다. 폭약이 매달린 자살폭탄 조끼를 걸치고 기지로 진입하면 조끼에 매달린 2개의 끈을 잡아당겨서 되도록 많은 군인과 함께 죽어야 한다는 가르침도 받았다. 순교자 차림으로 훗날 다른 소년 테러범들을 모으는 데 활용될 '홍보용' 촬영까지 마쳤다. 하지만 모하마드는 거사 직전 그 폭탄 조끼를 벗어버리고 미군 기지에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처럼 어린이 자폭테러범이 느는 것은 성인 지원자보다 의심을 덜 받고 목표물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탈레반이 사용하는 폭탄조끼는 더욱 강력하게 진화했다. 자살폭탄은 최대한 많은 인명살상을 목표로 한다. 그래서 폭약과 더불어 못이나 볼트, 너트 같은 작은 금속물질을 폭약과 섞어 조끼 안쪽에 최대한 많이 넣는다. 터지는 순간 이 물질들이 사방으로 튀어 사람 몸을 뚫고 지나가며 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살조끼가 터지기 전까지 누가 테러를 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아이들이나 부르카를 쓰고 있는 여성들이 자살조끼를 입고 있으면 눈치 채기가 더 어렵다. 탈레반은 이런 점을 노려 아이들까지 이용해 자살폭탄을 감행하는 것이다.

정부 위협하는 탈레반

이제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2001년 아프간 전쟁이 시작될 때 제대로 된 공격도 못해보고 뿔뿔이 흩어졌던 그들이 다시 수면으로 나온 것이다. 현재 아프간 정부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 아프간 대통령이 아니라 카불 대통령으로 불리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에 대해 아프간 국민들의 불신은 아주 높다. 더군다나 서방 세계에서 지원한 원조금을 착복하기 바쁜 정부 관료들은 아프간 미래에 관심조차 없다.

만약 2014년 미군의 완전 철군이 아프간에서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아프간 정부보다는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아프간 민심이 정부와 연합군보다는 탈레반에 많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서민들은 전쟁 후 나날이 힘들어지는 아프간 경제 상황에 일자리도 희망도 없다. 카불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오마르 샤(30)는 '탈레반 정부가 다시 들어선다면'이라는 필자의 질문에 "아프간 미래가 암울하다. 사람들은 일과 돈이 없어 너무 힘들다. 이 모든 것이 미국과 우리 정부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불만이 많다. 탈레반 정부가 다시 들어선다면 적어도 2001년 이전으로는 돌아갈 것 아닌가. 그때는 이렇게까지 우리가 못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차라리 탈레반 정부를 원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다"고 대답했다. 아프간 북부 마쟈리 샤리프에서 가게를 하는 상인 압둘 파라(45)는 "탈레반이면 어때요? 그저 우리 같은 서민은 굶기지 않고 아이들 키울 수 있다면 탈레반이 대수인가요? 이제 우리 아프간 사람들은 전쟁에 지쳤습니다. 미군과 외국군보다는 탈레반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고 말했다.

물론 이 두 사람의 의견이 아프간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아프간 전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시위가 이 사실을 방증한다.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파르완주도 주민 시위가 일어나는 등 민심의 동요가 커지고 있다. 지난 4월18일 파르완주 청사에서 동맹군에 협조하는 주지사를 비롯한 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상대로 200∼250명이 무력시위를 벌였다. 아프간 현지 주민에 따르면 시위는 샤비르라는 이슬람교 성직자가 파키스탄에서 배워온 폭발물 제조법을 주민에게 가르쳤다는 혐의로 미군에 체포되자 미군과 연합군에 협조적인 살랑기 주지사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미군과 주정부는 이 시위가 탈레반과 연계된 시위라고 하지만 현지 시민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시위에 참석했던 한 시민은 "샤비르는 존경받는 성직자다. 파르완주의 주민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하다. 그런 그를 증거도 없이 미군이 폭발물 제조법을 가르쳤다고 잡아갔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석방을 요구하러 갔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주지사는 그런 문제를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욱 화가 났다. 그는 시민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돈과 명예만 생각하는 부패한 정부 관리일 뿐이다"고 말했다. 그 결과 시위군중이 주지사를 공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시위대 중 5명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이 부상했으며 주지사는 경호원에게 둘러싸여 간신히 도망갔다. 시위대가 주지사를 공격한 것은 그가 미군·연합군과 친하며 민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부패한 인사이기 때문이라는 주민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다. 시위대가 공격했던 주지사는 압둘 바시르 살랑기 파르완 주지사다. 그는 한국을 방문했으며 한국군에게도 우호적인 인사로 알려져 있다. 혼란과 시위로 얼룩진 아프간 상황은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보다 더 민심을 더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탈레반이 낫다

그래서 최근 미국은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추진 중이다. 미국도 이제는 탈레반의 존재를 더 이상 묵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처음 공식적으로 미국과 탈레반간 평화협상을 밝힌 것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다. 그는 6월18일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상이 그들(탈레반)과 이미 시작됐고,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외국군, 특히 미국이 이 협상에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과 힐러리 미 국무장관도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이 고위 인사들에 의해 본격화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탈레반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수면으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을 택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분리해 그동안 치른 10년간의 전쟁을 마무리하려는 의도도 보인다.

하지만 아직 탈레반 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고 이 평화협상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미국의 평화협상 기대와는 상관없이 탈레반은 북부와 서부에서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고 동부 지역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군은 탈레반에 맞서 작년 한 해만 5465개의 폭탄과 헬파이어 미사일을 아프간 마을에 퍼부었다. 그만큼 아직 아프간은 치열한 전선이다.

이 전선 안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뇌물수수와 부정부패가 아프간 정부의 최고위층에 이르기까지 만연해 있어 아프간 국민을 보호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정부는 국민에게 불신의 대상이다. 미국과 연합국을 가장 옥죄는 민간인 살상문제도 여전하다. 지난 5월에도 연합군의 민간인 공격에 대항하는 시위가 유혈충돌로 번져 10명이 숨지고 30명이 부상했다. 시위대는 이날 연합군이 아프간 북부 타하르 탈루칸에서 여성 2명 등 민간인 4명을 죽인 데 대해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와 관련, 연합군은 "전날 사상자들은 무장반군이었다"며 "탈레반 반군이 시위대를 선동해 ISAF(국제안보지원군)를 공격하도록 했고 이 과정에서 교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민간인이 죽어도 무장반군이었다고 주장하는 연합군의 태도에 분노하는 것은 아프간 국민이다. 아프간 이슬람 통신의 파칼 암미르 기자는 "바로 그런 아프간 사람들의 분노가 탈레반을 키우고 있다. 미국이 끝까지 아프간 국민에게 해줄 수 없는 것은 이 분노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들이 아프간 하늘에서 공중 폭격하는 전투기를 보는 한은 말이다"고 말했다. 이제 10년 아프간 전쟁은 막바지에 이른 듯하다. 미국과 연합군은 하루 빨리 아프간에서 떠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마지막 박차를 가하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다. 아직 탈레반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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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보복 … 리비아 부족엔 살벌한 전통 있다

서정민 교수가 본 리비아 앞날

중앙일보 | 입력 2011.08.25 

서정민 교수

"리비아 미래의 복병은 몰락한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69)가 아니라 부족 세력과 이슬람주의자들이다."

 

 

 

 23일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만난 무함마드5세대학 역사학과 무함마드 아피프 교수의 분석이다. "이 두 세력이 카다피 이후 리비아의 안정과 민주주의 확립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아피프 교수는 강조했다. 42년간 카다피가 구축해 온 체제와 질서를 바꾸는 과정에서 수천 년간 내려온 부족 마인드와 새롭게 등장할 이슬람의 목소리를 어떻게 새로운 시대와 조화시키느냐 하는 게 가장 큰 과제라는 것이다.

 리비아 미래의 가장 큰 모래늪은 역시 부족주의다. 시민군의 실세는 동부 벵가지 중심의 반카다피 부족세력이고 카다피를 끝까지 옹호한 세력은 서부 트리폴리 중심의 친카다피 부족세력이다. 서로 연결고리가 약한 140여 개 부족이 정치적·경제적 필요에 의해 연대를 구축하고 생존과 기득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 리비아 사태의 기본틀이다.

 부족 세계에는 전통적으로 '승자 독식'의 원칙이 있다. 최대 부족 내 가장 강력한 가문이 사실상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이다. 현재 걸프 산유국에서도 정치 및 경제 이권은 거의 모두 지배 가문이 차지하고 있다. 이집트나 튀니지와는 달리 리비아·예멘·시리아 등의 반정부 투쟁이 피를 뿌리고 장기화한 배경도 '패배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인식을 가진 지배 부족이 '벼랑끝 전술'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족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보복이다. 유럽연합(EU)이 시민군에 보복 행위를 하지 말라고 강력 경고한 것도 이를 의식해서다. 보복의 악순환이 리비아의 안정에 최대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카다피가 사망하거나 망명하더라도 그와 그의 가족과 측근들이 부족 간 대립을 활용해 전후 복구 과정에 개입하거나, 방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 리비아에는 종파 간 갈등도, 강력한 이슬람 세력도 없다. 카다피가 철저히 탄압했기 때문이다. 수니파시아파 간 갈등으로 8년째 혼란이 계속되는 이라크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슬람은 중동의 가장 강력한 이념적·정치적 수단이다. 특히 권력공백 하에서는 더욱 강력한 결집력을 보여준다. 이들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지분을 요구할 것이다. 서방이 가장 상상하기 싫어하는 시나리오다. 이들이 이슬람법으로 통치하는 이슬람공화국을 세우자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와 튀니지에서의 정권교체는 시위에 의한 시민혁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리비아의 카다피 축출은 전 국민의 평화적 시위가 아니라 무력 투쟁의 결과다. 많은 사람이 희생됐고, 물적인 피해도 컸다. 패배하고 기득권을 잃은 서부 트리폴리 중심의 분노한 부족 세력이 존재한다. 외부 서방세력의 군사 개입에 분노해 새로운 통치 집단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시민군을 대표하는 과도국가위원회(NTC) 측은 국제사회의 지지는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리비아 내부의 통합을 제대로 일궈낼지는 미지수다. 위원회는 수많은 부족과 정파 간의 이해관계로 이미 분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카다피 체제에서 이탈한 장관은 물론 반정부인사·해외망명자·아랍민족주의자·이슬람주의자 등 다양한 배경의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

 NTC는 이미 '포스트 카다피' 시대의 청사진을 마련했다. 하지만 리비아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아무런 경험이 없다. 리더십을 가진 군부 세력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42년 카다피 독재체제의 공백을 메우고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게 그들의 임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중동아프리카학과) < amirseohufs.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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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옹호 女 앵커 반군에 투항

조선일보 | 박승혁 기자 | 입력 2011.08.25

 

 

'카다피의 앵커'라고 불리는 리비아 국영 방송사 여성 앵커가 반군에 투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 국영 알자마히리야의 하라 엘메스라티 앵커는 24일 유튜브에 올려진 영상을 통해 "카다피가 당신을 버리고 도주했다"는 반군의 말에 "누구도 나를 버리지 않았으며 내가 투항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메스라티는 리비아 내전 발발 이후 카다피 정권을 적극 옹호하는 멘트 때문에 '카다피의 앵커'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 그녀는 최근에는 방송 중 권총을 손에 쥐고 흔들어 보이며 "반군이 방송국을 장악하려 한다면 이 총으로 맞서겠다"고 말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반군은 메스라티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22일 이 방송국을 장악하고 방송을 중단시켰다. 메스라티는 앞서 3월 유엔이 리비아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뼈대로 한 결의안을 채택했을 당시에도 영어 단어의 동사와 명사 변화를 활용해 유엔을 비꼬는 멘트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엔 안보리는 결의안을 채택했다(adopted).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입양(adoption)을 금지하기 때문에 이는 무효다."라고 말해 카다피 지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나는 낮엔 카다피 경호원 … 밤엔 시민군 스파이였다”

카다피 전복 일등 공신 … 군·경찰 ‘이중간첩’ 모여 감격의 눈물

중앙일보 | 유지혜 | 입력 2011.08.27


'이중간첩' 벤 주마

마흐무드 벤 주마(54)는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개인 경호부대 상급장교로 20년이 넘도록 군에 몸담아 온 베테랑이었다. 그는 이번 사태 때 낮에는 카다피 친위대로서 시민군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미행하도록 지시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벤 주마는 동시에 시민군의 위장 침투요원이기도 했다. 밤에는 시민군 지도부를 만나 카다피군을 타도할 전략을 논의했다. 이중간첩(double agent)이었던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26일 카다피 정권 전복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이중간첩들의 활약을 소개했다. 신문은 "시민군이 큰 희생 없이 트리폴리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한때 카다피에게 충성했던 정부 내 고위급 인사들이 시민군 지도부와 협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벤 주마는 지난 2월 시민군이 처음 봉기했을 때부터 이들과 뜻을 함께해 왔다. 그의 정보력을 이용하자며 끌어들인 것 역시 이미 시민군 쪽에서 활동 중이던 지역 경찰 간부 압델 바삿 알투발이었다. 벤 주마는 "나는 카다피군 중에서도 가장 군기가 센 조직을 지휘했지만 동시에 이 혁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같이 카다피와 절친한 보안부대의 장군들을 만나 정보를 수집했다. 또 전화 도청과 시민군 신문 등에서 나온 첩보는 물론이고 체포 명령도 곧바로 시민군에 전달했다.

 이달 초에는 이중간첩 행각이 발각돼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한 발 앞서 이 사실을 알게 된 벤 주마는 가족들을 튀니지로 피신시킨 뒤 자신은 안전가옥에 숨어 있다가 지난 20일 시민군이 트리폴리에 입성하는 순간 영광을 함께했다.

 동부 타주라의 외곽에서는 한 장군이 순찰조직을 결성하기도 했다. 순찰대원들은 골목길에서 만나 휴대전화 불빛으로 암호를 만들어 교신했고, 정부군의 단속 소식을 주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시민군 지도자 하킴 바울사인은 "비밀 무기고에 방문했다 여러 차례 체포될 뻔했는데 우리 정보원으로 일하던 카다피 정부 고위 관계자가 미리 귀띔을 해 줘 변을 피할 수 있었다" 고 설명했다.

 25일(현지시간) 트리폴리에 있는 한 호텔에는 중년의 남성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이내 서로 알아본 이들은 옆사람을 끌어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 이날 모인 30여 명은 카다피를 몰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트리폴리 지역단체의 간부였다. 이들 중에는 카다피군과 경찰 등 내부에서 암약하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시민군과 조직을 보호한 '이중간첩'이 포함돼 있었다. 여러 달 동안 비밀리에 긴밀히 연락하며 전략을 논의해 온 이들이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숫자가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단체의 일원이 체포될까 봐 간부들조차 철저히 익명으로 활동했고, 소규모로만 비밀리에 접선하는 점조직으로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날에야 비로소 실제 이름과 직업을 밝히는 감격의 순간을 누렸다.

유지혜 기자 < wisepen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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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짝사랑한 카다피

[중앙일보] 입력 2011.08.27

2007년 알자지라 인터뷰 … “리자, 리자, 리자 그녀를 사랑한다”

라이스(左), 카다피(右)

 

24일(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시민군이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에 있는카다피 관저에서 발견된 사진첩을 살펴보고 있다. [트리폴리 AP=본사특약]
24일(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에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69)의 관저(官邸)를 수색하던 시민군들은 깜짝 놀랐다. 카다피의 두툼한 앨범에서 뜻밖에도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57) 전 미국 국무장관(2005년 1월~2009년 1월 재임)의 사진들을 다량 발견했기 때문이다. 연설, 브리핑, 외국 정상들과 면담하는 장면에서 얼굴 부분만 클로즈업한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미 국무부의 빅토리아 뉼런드 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이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나는 그 사진들을 보고 싶지 않다”면서 “카다피의 행동을 묘사하는 형용사는 바로 기상천외한(bizarre)과 오싹한(creepy)”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입수한 미 MSNBC 방송에 따르면 카다피는 오래전부터 라이스를 짝사랑해 왔다고 한다. 2007년 아랍권 위성채널인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선 노골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카다피는 라이스에 대해 “나는 내 사랑하는(My darling) 흑인 여성을 지지한다”며 “나는 그가 상체를 뒤로 젖힌 채 아랍 지도자들에게 지시하는 걸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특히 “리자, 리자, 리자, 나는 그를 아주 사랑한다”고 되풀이해서 말했다.

 1년 뒤인 2008년 9월 라이스가 리비아를 방문하자 카다피는 라마단(이슬람 금식월) 기간임에도 그를 자택에 초대해 전통 요리를 대접했다. 모두 합쳐 21만 달러(약 2억2000만원)나 되는 다이아몬드 반지와 자신의 사진이 담긴 목걸이 선물도 했다. 카다피가 라이스 앞에서 존경의 표시로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댄 채 환하게 웃는 사진이 외신으로 전해졌다. 리비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던 라이스가 ‘미국의 영원한 적은 없다’고 덕담하자 카다피는 나중에 측근들에게 그를 ‘리자’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감격했다고 한다.

 MSNBC에 따르면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라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국무장관 퇴임 뒤 스탠퍼드대 교수로 돌아간 그는 오는 11월 두 번째 회고록인 『최고의 영예, 워싱턴 시절의 회고 (No Higher Honor: A Memoir of My Years in Washington)』를 출간할 예정이다.

 ◆카다피는 ‘자아도취자’=미 중앙정보국(CIA)과 20년 이상 일한 정신과 의사 제럴드 포스트 교수는 카다피를 연구한 뒤 26일 영국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는 경계성 인격(borderline personality)을 갖고 있는 자아도취자(narcissist)”라고 분석했다. 우세한 상황에서는 남을 위협하고 불리한 상황에서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그는 “카다피는 국민이 자신에 맞서 봉기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들이 나토군에게 조종되고 있다고 우기고 있을 것”이라며 “자신을 강한 적과 혼자 맞서고 있는 외로운 아랍의 영웅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

 

 

카다피 딸 집 ‘황금색 인어 소파’

카다피의 19세 여군 병사가 털어놓은 카다피군 실태

니스린 만수르 알 포르가니. /데일리메일캡처
28일 오후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의 매티가 군사병원. 영국 취재진이 총을 멘 두 명의 경호원이 지키는 병실문을 열고 들어가자 큰 갈색 눈, 도톰한 입술의 젊은 여성이 침상에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열아홉 살짜리 여성의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니스린 만수르 알 포르가니(Nisreen Mansour al Forgani). 11명의 반정부 인사를 살해한 무아마르 카다피군의 저격수였다.

유로뉴스TV와 데일리메일 등 유럽 주요 매체들은 29일, 사형이 유력한 이 포로 여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트리폴리 함락 직전 자행된 학살과 카다피군 내부에서의 여군(女軍)에 대한 성적 학대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여군 부대서 상습적으로 이뤄진 성 상납

대학생이던 이 여성은 지난해 암에 걸린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집에서 머물다가, 어머니의 친구이자 카다피 여성 친위부대 지휘관인 파트마 알 드레비(Fatma al Dreby)의 손에 이끌려 강제 징집됐다. 카다피 여성 친위 부대는 ‘어리고 예쁜 여성’으로 구성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니스린은 신병훈련소에서 1000여명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니스린은 거기서 ‘저격수’로 키워졌고, 올해 들어 중동 각지에서 벌어진 반(反) 정부 시위가 리비아로 번지자 제77여단에 배속됐다. 트리폴리 주변검문소를 지키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지휘관 파트마는 니스린에게 “엄마라도 카다피 원수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면 바로 사살해야 한다”고 교육했고, 반군과의 교전이 격화하자 “트리폴리가 반군에게 넘어가면, 너희는 성폭행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니스린을 성폭행한 것은 반군이 아니라 최후가 임박한 카다피군이었다.

어느 날 파트마는 니스린을 77여단 본부 내 사무실로 소환했다.

니스린이 방에 들어가자 파트마는 그를 홀로 남겨두고 나왔고, 잠시 뒤 방에 들어선 것은 77여단 여단장 만수르 다우(Mansour Dau)였다. 그는 문을 걸어잠근 뒤 니스린을 성폭행했다. 성폭행이 끝나자 파트마가 들어와서는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돼. 너희 부모에게도.”

여단장은 수시로 본부를 방문했고, 그때마다 파트마는 다른 여군을 ‘그 방’으로 밀어 넣었다. 파트마는 성 상납의 대가로 여단장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니스린은 얼마 뒤 여단장의 아들 이브라힘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다음에는 여단의 다른 장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런 일은 다른 여군에게도 일어났고, 카다피 정권의 붕괴가 시작되면서 성 상납도 급증했다.

트리폴리 함락 직후 부상한 니스린이 반군의 군사병원 병실에 갇혀 있다.

◆“협박에 못 이겨 사흘간 반군 11명 사살”

트리폴리 함락 직전, 니스린의 부대는 트리폴리 시내의 보슬림(Bosleem) 지역의 한 2층 건물 이동했다.

거기서 니스린은 AK47 소총을 지급받고 방으로 들여보내졌다. 방 안에는 푸른 유니폼의 흑인 여성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이후 반군 포로 한 명이 방으로 끌려 들어왔다. 포로의 얼굴은 온통 멍들어 있었다.

흑인 여군들은 니스린에게 그를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니스린이 머뭇거리자, 흑인 여군은 자기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는 니스린을 겨냥했다.

니스린은 “포로는 약 1m 앞에 있었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다시 또 다른 포로가 방으로 끌려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동료를 보고 놀란 표정을 했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역시 내 총에 맞아 숨졌다”고 말했다. 그는 “사흘간 11명을 사살했다”고 자백했다.

니스린은 트리폴리 함락 당일, 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탈출하다 다리가 부러졌고, 다시 픽업트럭에 치인 뒤 반군에게 붙잡혔다.

유로뉴스는 현재로선 반군에 붙잡힌 이 여성의 말의 진위를 가리기 어렵지만, 희생자 가족들의 용서가 없으면 추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앞서 트리폴리 함락 작전을 지휘한 반군 측의 압델 나기브 믈렉타 사령관은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보복 살해가 이뤄졌다"며 "카다피의 요새인 바브 알-아지지야에서 대량 학살이 있었고, 150여 명의 죄수를 살해했다"고 말했었다.

[키워드] 카다피 정권 붕괴여군 성폭행
스탈린보다도 잔혹한 '공포정치' 펼친 독재자의 말로는…

리비아 남성, 카다피군에 강간당한 15, 17, 18살 3딸 목잘라 살해

뉴시스 | 유세진 | 입력 2011.08.31 10:08

 




【서울=뉴시스】유세진 기자 = 시리아의 한 아버지가 카다피 정부군에게 강간당한 자신의 세 딸을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잘라 살해했다고 한 인권단체가 밝혔다고 영국 데일리 메일이 30일 보도했다.

15살과 17살, 18살인 이 세 딸은 미스라타가 카다피군에 두 달이나 포위됐을 당시 미스라타 인근 토미나의 학교에서 카다피군에게 함께 강간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인권단체인 '인권을 위한 의사들'(PHR)은 이 세 딸이 집에 돌아와 이 같은 사실을 알리자 이들의 아버지는 집안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며 이른바 명예살인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미국 보스턴에 본부를 둔 PHR은 지난 6월 미스라타에서 자행된 인권 유린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한 결과 이밖에도 카다피군이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이용하고 심지어 나토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탱크에 매다는가 하면 강간을 전쟁 수단으로 삼는 등 무수한 인권 유린 사례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PHR은 카다피군이 심지어 이들 자매들이 강간당한 학교를 강간을 위한 근거지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PHR은 또 카다피군에게 강간을 장려하기 위해 비아그라와 같은 약품들이 지급됐다는 주장을 입증할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이를 반박할 증거 또한 없다고 말했다.

PHR은 그러나 자신들의 조사는 미스라타에서 자행된 카다피군의 만행에 국한된 것으로 반군 측이나 나토군에 의한 인권 유린 사례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으므로 앞으로 이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dbtpwls@newsis.com

<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트리폴리=AP연합 | 2011-08-26 07:35:25

한 리비아 반군 소속원이 24일 트리폴리에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딸 아이샤(35) 집에 있는 인어 모양의 황금색 소파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어의 얼굴 부분은 아이샤의 얼굴을 모델로 만들었다. 반군이 트리폴리를 장악한 뒤 카다피 일가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카다피의 19세 여군 병사가 털어놓은 카다피군 실태

입력 : 2011.08.30 12:06 / 수정 : 2011.08.30 13:14

니스린 만수르 알 포르가니. /데일리메일캡처
28일 오후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의 매티가 군사병원. 영국 취재진이 총을 멘 두 명의 경호원이 지키는 병실문을 열고 들어가자 큰 갈색 눈, 도톰한 입술의 젊은 여성이 침상에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열아홉 살짜리 여성의 발목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니스린 만수르 알 포르가니(Nisreen Mansour al Forgani). 11명의 반정부 인사를 살해한 무아마르 카다피군의 저격수였다.

유로뉴스TV와 데일리메일 등 유럽 주요 매체들은 29일, 사형이 유력한 이 포로 여성과의 인터뷰를 통해 트리폴리 함락 직전 자행된 학살과 카다피군 내부에서의 여군(女軍)에 대한 성적 학대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여군 부대서 상습적으로 이뤄진 성 상납

대학생이던 이 여성은 지난해 암에 걸린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집에서 머물다가, 어머니의 친구이자 카다피 여성 친위부대 지휘관인 파트마 알 드레비(Fatma al Dreby)의 손에 이끌려 강제 징집됐다. 카다피 여성 친위 부대는 ‘어리고 예쁜 여성’으로 구성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니스린은 신병훈련소에서 1000여명의 다른 여성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니스린은 거기서 ‘저격수’로 키워졌고, 올해 들어 중동 각지에서 벌어진 반(反) 정부 시위가 리비아로 번지자 제77여단에 배속됐다. 트리폴리 주변검문소를 지키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지휘관 파트마는 니스린에게 “엄마라도 카다피 원수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면 바로 사살해야 한다”고 교육했고, 반군과의 교전이 격화하자 “트리폴리가 반군에게 넘어가면, 너희는 성폭행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니스린을 성폭행한 것은 반군이 아니라 최후가 임박한 카다피군이었다.

어느 날 파트마는 니스린을 77여단 본부 내 사무실로 소환했다.

니스린이 방에 들어가자 파트마는 그를 홀로 남겨두고 나왔고, 잠시 뒤 방에 들어선 것은 77여단 여단장 만수르 다우(Mansour Dau)였다. 그는 문을 걸어잠근 뒤 니스린을 성폭행했다. 성폭행이 끝나자 파트마가 들어와서는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돼. 너희 부모에게도.”

여단장은 수시로 본부를 방문했고, 그때마다 파트마는 다른 여군을 ‘그 방’으로 밀어 넣었다. 파트마는 성 상납의 대가로 여단장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니스린은 얼마 뒤 여단장의 아들 이브라힘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다음에는 여단의 다른 장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런 일은 다른 여군에게도 일어났고, 카다피 정권의 붕괴가 시작되면서 성 상납도 급증했다.

트리폴리 함락 직후 부상한 니스린이 반군의 군사병원 병실에 갇혀 있다.

◆“협박에 못 이겨 사흘간 반군 11명 사살”

트리폴리 함락 직전, 니스린의 부대는 트리폴리 시내의 보슬림(Bosleem) 지역의 한 2층 건물 이동했다.

거기서 니스린은 AK47 소총을 지급받고 방으로 들여보내졌다. 방 안에는 푸른 유니폼의 흑인 여성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이후 반군 포로 한 명이 방으로 끌려 들어왔다. 포로의 얼굴은 온통 멍들어 있었다.

흑인 여군들은 니스린에게 그를 처형하라고 지시했다. 니스린이 머뭇거리자, 흑인 여군은 자기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는 니스린을 겨냥했다.

니스린은 “포로는 약 1m 앞에 있었다. 나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다시 또 다른 포로가 방으로 끌려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동료를 보고 놀란 표정을 했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역시 내 총에 맞아 숨졌다”고 말했다. 그는 “사흘간 11명을 사살했다”고 자백했다.

니스린은 트리폴리 함락 당일, 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탈출하다 다리가 부러졌고, 다시 픽업트럭에 치인 뒤 반군에게 붙잡혔다.

유로뉴스는 현재로선 반군에 붙잡힌 이 여성의 말의 진위를 가리기 어렵지만, 희생자 가족들의 용서가 없으면 추후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앞서 트리폴리 함락 작전을 지휘한 반군 측의 압델 나기브 믈렉타 사령관은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보복 살해가 이뤄졌다"며 "카다피의 요새인 바브 알-아지지야에서 대량 학살이 있었고, 150여 명의 죄수를 살해했다"고 말했었다.

[키워드] 카다피 정권 붕괴여군 성폭행
스탈린보다도 잔혹한 '공포정치' 펼친 독재자의 말로는…

 

 

리비아 남성, 카다피군에 강간당한 15, 17, 18살 3딸 목잘라 살해

뉴시스 | 유세진 | 입력 2011.08.31 10:08

 


【서울=뉴시스】유세진 기자 = 시리아의 한 아버지가 카다피 정부군에게 강간당한 자신의 세 딸을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잘라 살해했다고 한 인권단체가 밝혔다고 영국 데일리 메일이 30일 보도했다.

15살과 17살, 18살인 이 세 딸은 미스라타가 카다피군에 두 달이나 포위됐을 당시 미스라타 인근 토미나의 학교에서 카다피군에게 함께 강간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인권단체인 '인권을 위한 의사들'(PHR)은 이 세 딸이 집에 돌아와 이 같은 사실을 알리자 이들의 아버지는 집안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며 이른바 명예살인을 단행했다고 말했다.

미국 보스턴에 본부를 둔 PHR은 지난 6월 미스라타에서 자행된 인권 유린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한 결과 이밖에도 카다피군이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이용하고 심지어 나토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탱크에 매다는가 하면 강간을 전쟁 수단으로 삼는 등 무수한 인권 유린 사례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PHR은 카다피군이 심지어 이들 자매들이 강간당한 학교를 강간을 위한 근거지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PHR은 또 카다피군에게 강간을 장려하기 위해 비아그라와 같은 약품들이 지급됐다는 주장을 입증할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이를 반박할 증거 또한 없다고 말했다.

PHR은 그러나 자신들의 조사는 미스라타에서 자행된 카다피군의 만행에 국한된 것으로 반군 측이나 나토군에 의한 인권 유린 사례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으므로 앞으로 이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dbtpwl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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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갈리나-여성 경호부대 ‘아마조네스’…미녀군단 그림자 수행

헤럴드경제 | 입력 2011.08.31 10:08

리비아 반군의 승리로 권좌에서 쫓겨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는 독특한 '여성관'으로도 악명 높다. 그의 주변에는 늘 간호사와 경호부대 등 일명 '카다피의 여자들'로 불리는 미녀 군단이 있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외교부 문건에 따르면 전담 간호사 갈리나 콜로트니츠카는 가장 대표적인 카다피의 여자. 그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카다피가 어디에 있든 늘 동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건에 따르면 갈리나는 '관능적인 금발'의 소유자로 부재시 카다피가 장거리 여행도 할 수 없을 만큼 의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연관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양측 모두 부인했다.

갈리나는 리비아 내전이 시작된 2월 리비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 직후 다시 노르웨이로 떠났다. 기자들이 24시간 내내 집 근처에 진을 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어지고 리비아 정보 당국의 보복도 우려됐다는 것이다.

 

'카다피의 여자들' 중 여성경호원 부대 '아마조네스'도 빼놓을 수 없다. 카다피가 직접 선발한 여성 수백명으로 구성된 최정예부대다. 모두 젊은 미혼 여성으로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동행해 신변 보호 임무를 수행한다. 아마조네스는 1981년 카다피가 시리아를 방문할 때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한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들의 동행 입국을 거부해 카다피가 분노한 바 있다.

카다피는 남자보다 여자가 충성심이 높다는 속설을 굳게 믿고 있으며 여성 경호원 부대도 이 같은 이유로 만들어졌다.

카다피는 '이슬람 사회주의'를 표방해왔다. 밤이든 낮이든 자신을 지키는 아마조네스에 대해 '여성해방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여성 경호원들은 특수학교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중도 탈락하지 않고 혹독한 훈련 과정을 모두 마치는 여성들은 무기와 무예에 정통한 킬러로 탈바꿈한다. 여성 경호원들 모두 카다피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치겠다고 맹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여성 경호부대 요원들이 카다피와 그 아들들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됐다.

28일 지중해 섬나라인 몰타에서 발행되는 '타임스 오브 몰타' 인터넷판에 따르면 카다피의 여성 경호부대에서 근무했던 여성 5명은 리비아 벵가지에서 활동하는 심리학자 세함 세르게와 박사에게 카다피와 그의 아들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으며 나중에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세르게와 박사는 카다피를 비롯한 측근들이 생포돼 재판이 진행될 경우 관련 내용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전달할 계획이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m.com

▶ 아랍의 독재자 그들은 들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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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미녀 딸, 알제리 피신 하루만에 출산

조선일보 | 장상진 기자 | 입력 2011.08.31 10:02 | 수정 2011.08.31 11:19 |

 

미모를 앞세워 무아마르 카다피의 '치어리더' 역할을 했던 카다피의 딸 아이샤(Aisha·35)가 피신처인 알제리 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아이를 낳았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30일(현지시각) 알제리 정부 관계자를 인용, 아이샤가 이날 아침 일찍 의료진의 도움 없이 딸을 출산했으며, 현재 딸과 산모는 모두 건강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아이샤는 반군에 함락당한 리비아 의 수도 트리폴리 를 떠나 29일 오전 8시45분 모친 사피아, 오빠 한니발, 모하메드와 함께 알제리에 입국했었다.

 

↑ [조선닷컴]아이샤가 리비아 민중 봉기 직후인 지난 3월 대중 앞에 등장, 카다피 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메일 캡처

 

카다피의 딸 아이샤는 과거 사담 후세인 전(前) 이라크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법률가 출신으로, 2006년 자신의 사촌 아메드 알 카다피 알 카시 대령과 결혼해 이미 세 자녀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의 남편 카시는 7월26일 공습으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의 클라우디아 쉬퍼'란 별칭을 가진 아이샤는 카다피에 반대하는 시민 봉기가 일어나자 직접 지지자들 앞에 등장, 화려한 외모와 연설을 앞세워 부친에 대한 지지를 호소해 서방 언론에서 '카다피 최후의 무기'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젊은 멋쟁이들이 많이 타는 '귀족버스' 아시나요?

"교육비리 철폐 외치던 전교조가 이번에 잠잠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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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벌써 세상 정치에 뛰어들다

chosun.com

“호텔 같네”…리비아 카다피 전용 비행기 공개

서울신문 | 입력 2011.08.30 10:51

[서울신문 나우뉴스]"하늘을 나는 별 다섯개 호텔같네." 

리비아 트리폴리 남부의 국제공항을 장악한 반카다피군이 지난 29일(이하 현지시간)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전용비행기를 공개했다.

이 전용기는 에어버스 A340기종으로 카다피측 주문에 따라 특별 개조됐다. 전용기의 내부는 화려하다. 퀸사이즈의 가죽 침대와 응접실, 샤워장, 바 등이 갖춰져 있으며 응접실에는 큰 소파에서 영화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영상기기가 마련돼 있다.

 

이 전용기의 정비사는 "카다피 원수와 친족 및 가족이 주로 이 전용기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반카다피군 측이 이처럼 전용기를 공개한 것은 42년 동안 리비아를 지배해 온 카다피 독재의 흔적을 낱낱히 밝히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반카다피군 측은 카다피의 화려한 관저를 공개한 바 있다.

한편 카다피의 가족은 알제리로 도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알제리 외무부는 29일 "카다피의 아내 사피아 파르카시와 딸 아이샤, 두 아들인 무하마드와 한니발이 알제리-리비아 국경을 통해 알제리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카다피의 행방은 리비아에 체류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나우뉴스 공식 SNS 계정: 트위터 http://twitter.com/SEOUL_NOW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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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일가, 흩어져야 산다?

서울신문 | 입력 2011.08.31 03:13

[서울신문]리비아 반정부군의 추격을 받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가족 일부가 29일(현지시간) 이웃 국가인 알제리로 도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카다피와 다른 자녀들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황상 이들은 리비아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반군은 30일 카다피 측에 나흘 안으로 항복하라고 최후 통첩을 전달했다.

 

알제리 외교부는 카다피의 부인 사피야와 장남 무함마드, 5남 한니발, 딸 아이샤, 그리고 손주들이 알제리에 들어왔다고 밝혔다. 유엔 주재 알제리 대사는 인도적 차원에서 카다피 가족의 입국을 허용했으며, 이 같은 사실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알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다피의 알제리행 가능성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마흐무드 샤만 과도국가위원회(NTC) 대변인은 "우리는 카다피 가족에게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하는 것은 적대행위"라며 알제리 측에 송환을 요구했다.

알제리는 리비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반정부 시위 초기부터 카다피 측에 용병을 보내는 등 친(親)카다피 국가로 알려져 트리폴리 함락 이후 카다피 가족의 유력한 도피처로 거론돼 왔다. 알제리가 카다피와 그 가족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가입에 관한 로마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라는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이들의 도피는 카다피가 완전히 힘을 잃었다는 확고한 증거"라고 보도했다.

카다피와 차남 사이프 이슬람, 3남 사디는 리비아를 빠져나가지 않았을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제이 카니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카다피가 리비아를 떠났다는 어떤 징후도 없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안사통신은 리비아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들이 트리폴리와 시르테 사이에 있는 바니 왈리드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반군 측은 그동안 몇 차례 사망설이 제기됐던 막내 아들 카미스가 지난 27일 트리폴리 근처 타르후나에서 반군의 공격을 받아 숨졌다고 밝혔으나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반군의 심리전으로 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ICC가 카다피와 차남 사이프에 이어 카미스 역시 1급 수배자 명단에 올려 체포영장을 발부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카다피 진영의 마지막 저항도 계속되고 있다. 반군은 시르테의 부족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이 부족들은 항복할 기미 없이 삼엄하게 무장한 채 결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29일 시르테로 진입하는 길목과 남서부 도시 세바, 바니 왈리드 등지에서는 심각한 교전이 벌어졌다. 카다피 측은 시르테 진입로에 지뢰를 매설하고, 정예 부대를 배치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의 인권단체인 '인권을 위한 의사회'(PHR)는 카다피 친위부대가 리비아 제3의 도시인 미스라타에서 어린이를 '인간방패'로 이용하고 살인과 고문 등 각종 인권 침해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보고서를 30일 발표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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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카다피 가족 입국 허용하겠다

뉴시스 | 최성욱 | 입력 2011.08.31 11:52

 

[알제(알제리)=AP/뉴시스】최성욱 기자 = 알제리가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 일가의 알제리 체류를을 허용한다는 입장이다.

알제리 모우라드 벤메히디 유엔 주재 대사는 30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서한을 전달해 인도주의적 배려로 카다피 가족들의 입국과 알제리 체류를 허락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9일 오전 카다피의 부인 사피야와 딸 아이샤, 아들 무함마드과 한니발은 벤츠 승용차와 버스에 나눠 타고 국경을 통과해 알제리로 망명했다.

벤메히디 대사는 이어 아이샤가 이동 중 국경 인근에서 아기를 출산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들 일행이 알제리로 급히 이동한 것도 아이샤의 출산이 임박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알제리 보건당국도 이날 아이샤가 딸을 출산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벤메디히 대사가 주장한 시점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리비아 반군 측은 범죄자인 카다피의 가족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은 적대행위라며 알제리 정부에 이들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secret@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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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이드알피트르”… 반군들 고향 앞으로

동아일보 | 입력 2011.08.31 03:34 | 수정 2011.08.31 05:54

[동아일보]

29일 오후 트리폴리 순교자광장에서 차로 5분 거리인 트리폴리 항구엔 동부 벵가지로 가는 배편을 구하려는 리비아인 10여 명이 앉아 있었다. 내전이 사실상 끝나면서 하나둘씩 고향으로 떠나는 반(反)카다피군들이다. 무함마드 아비디 씨(22)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트리폴리에 왔다가 내전에 가담하게 됐다"며 "이제 가족과 함께 라마단을 끝내고 '이드알피트르(이슬람 명절)'를 즐기기 위해 서둘러 집에 가려고 한다. 배 편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낮 트리폴리 서부 쇼핑가 구트샤알 거리의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열었다. 바로 하루 전인 28일 대부분이 셔터를 내린 것과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트리폴리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정상을 되찾고 있다. 아직 공항은 개방되지 않았지만 항구가 지난 주말 문을 열었고 슈퍼마켓과 주유소 등도 영업을 재개하는 모습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조금씩 정상화되는 도시를 보면 트리폴리에 안정이 찾아온 듯하지만 이들에겐 독재자 축출보다 더 어려운 과제가 남아 있다.

○ 범람하는 총기

트리폴리는 아직 매우 위험한 도시다. 시내 거리를 돌아다니는 반군들이 모두 총을 들고 있다. 불안한 시민들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상당수가 총을 갖고 있다. 그리고 탄창마다 실탄이 가득 들어 있다. 조금만 주의를 안 하면 총기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게다가 반군 청년들은 아직도 극도로 흥분한 상태다. 태어나서 처음 맞는 해방감,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에 가득 차 있는 이들에게서 차분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29일 트리폴리에서 만난 이윤규 전 한인회장은 "반군들이 축포를 쏘다가 잘못 격발해 동료가 숨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트리폴리 위성도시 잔주르에 사는 교민 박경옥 씨(54)도 "반군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다른 반군의 종아리에 총을 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말했다.

○ 치안유지, 경제안정 등 과제 산적

혁명 후 리비아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로서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테러와 보복 범죄 등 각종 폭력으로부터의 안정이다. 반군의 일원으로 트리폴리 항에서 물류관리를 맡고 있는 피투리 알바쉬 씨(25)는 "항구에 폭발물을 갖고 오는 정부군이 있을 수 있어 보안검색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테러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냈다. 반군 과도국가위원회(NTC)는 카다피 정부에서 일했던 주요 인사들에 대한 보복을 막기 위해 요르단이나 레바논 보안업체에 이들에 대한 경호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군에 가담한 청년들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트리폴리에서 기자가 만난 이들의 상당수는 실업자나 나이 어린 학생들이었다. 이번 혁명이 리비아의 정치적 발전은 이뤘지만 경제적 번영까지 보장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새 정부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이들이 사회혼란의 진원지로 떠오를 소지가 크다. 특히 반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은 새 정부에서 요직 등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군의 무기를 회수한 뒤 제대로 된 경찰력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하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다가 내전으로 회사가 철수하는 바람에 직장을 잃었다는 유세프 파토리 씨(34)는 "리비아인들은 나라를 처음부터 재건해 보려는 의지가 크다. 반군들도 혁명 후 정치적 지위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사심 없이 일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트리폴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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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폴리, 식수 부족 사태 우려↑

뉴시스 | 정의진 | 입력 2011.08.31 11:38

트리폴리=AP/뉴시스】정의진 기자 = 무아마르 카다피 세력의 수도 관련 기술자들을 향한 공격으로 트리폴리 전역에서 물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리비아 반군 관계자 아레프 알리 나옙은 30일(현지시간) "카다피군이 지난주 수리공들을 향해 발포해 700㎞ 깊이의 대수층으로부터 물을 끌어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나옙은 "일부 기술자들은 트리폴리의 안보 불안으로 인해 이 지역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개월 간 이어진 교전으로 우물 상태가 안전한지도 확실치 않다"고 우려했다.

그는 "임시방편으로 트리폴리 인근 도시에서 식수 등을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jeenju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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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맞은 리비아...생기 도는 도심

YTN | 입력 2011.08.31 10:53

 


[앵커멘트]

리비아에서는 전쟁뒤 처음으로 금식기간인 라마단이 끝나고, 최대 명절이 찾아왔습니다.

도심은 명절 준비를 하려는 시민들로 생기가 넘쳤습니다.

트리폴리에서, 이만수 특파원이 리비아 시민들을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트리폴리 도심 재래시장은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들었다 놨다 흥정도 한창입니다.

금식 기간인 라마단이 끝나고, 리비아에는 전쟁 뒤 처음으로 이슬람권 최대 명절인 '이드'가 찾아왔습니다.

이곳 전통시장에는 명절 음식준비를 위한 사람들이 몰리면서, 감자와 양파, 고추 등 채소등이 아주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리비아 명절에는 자신의 집을 개방하고 이웃들을 초대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한쪽에 마련된 주방, 청소 도구, 세제 등도 잘 팔리고 있습니다.

서툴지만, 정 담긴 한국어로 취재진을 반기는 이도 있습니다.

[인터뷰 : 트리폴리 시민]

(한국어는 어떻게 배우셨어요?)

"텔레비전에서요"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자동차로요. 너무 창피해."

우리 명절이 그렇듯 새 옷도 사고, 손님을 접대할 요리재료도 준비합니다.

독재자가 물러난 도심은 아주 오랫만에 생기가 넘칩니다.

트리폴리 시내에서는 이제 티셔츠와 속옷등을 판매하는 노점상도 등장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쪽에는 선글라스도 진열이 돼 있고요, 또 한쪽에서는 장식품도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광장에는 카다피를 비웃는 벽보도 붙어 조롱거리가 됐습니다.

[인터뷰:트리폴리 시민]

"카다피는 나쁜 사람입니다. 제정신이 아니고, 위험한 사람입니다."

이제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전쟁, 리비아 시민들은,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트리폴리에서 YTN 이만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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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中, 카다피정권과 결탁증거에 당혹

英 “심문·고문 협조 조사하겠다” 中 “정부군에 무기 안팔아” 발뺌

문화일보 | 오애리기자 | 입력 2011.09.06 14:32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자국 해외정보기관인 MI6가 무아마르 카다피 정보기관과 결탁해 인권침해를 저질렀다는 주장을 규명하기 위해 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BBC 등은 캐머런 총리가 5일 하원 연설에서 "영국 정보기관(MI6)이 리비아인 테러용의자 체포 및 심문, 고문에 간여했다는 주장에 대해 정식으로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캐머런 총리는 피터 깁슨 전 판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연설에서 영국과 리비아 정보기관 결탁이 "이전 정권(토니 블레어)에서 저질러졌던 것"이라면서 현 정부와 무관한 일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리비아 과도정부위원회(NTC)의 압델 하킴 벨하지 군사령관은 2004년 태국 방콕에서 미 중앙정부국(CIA) 요원에게 체포돼 트리폴리로 압송, 교도소에서 MI6 요원들로부터 고문당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역시 트리폴리에서 입수한 보안기관 자료에서 MI6와 CIA가 리비아 정보기관과 밀접한 교류를 해온 서류 수만건이 발견됐다고 폭로했다. 미국 정부와 CIA로부터는 아직 공식 반응이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내전이 한창이던 지난 7월 중순 카다피에게 미사일 등 각종 무기를 팔려 했다는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군 측의 압둘 라만 부신 대변인은 5일 카다피가 유엔 제재를 무시하고 중국 국영업체와 서방 국가로부터 무기를 구입했다는 증거가 있다면서 "유엔과 국제재판소 등을 통해 제소하는 법적 대응과 외교적 방안을 함께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무아마르 카다피는 아직도 리비아 내에 머물러 있으며 건강도 양호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카다피 측 대변인 무사 이브라힘은 5일 시리아 국영 아라이TV에 직접 출연해 "카다피는 현재 리비아에 체류 중이며, 그가 있는 곳을 말썽꾼(시민군)들은 찾아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카다피는 원기 왕성한 상태라고 전했다. 현재 카다피의 소재에 관해선 엇갈리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최근 일부 외신들은 카다피가 가족들이 망명한 알제리로 넘어가기 위해 국경 근처에 머물러 있다고 전한 반면, 알자지라 등은 소식통을 인용해 카다피가 고향 수르트, 바니 왈리드, 사브하 등에 은둔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브라힘은 카다피의 둘째 아들 사이프의 행방에 대해 "그 역시 리비아 내에서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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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폴리 함락 한달> ①리비아 미래는…

연합뉴스 | 한상용 | 입력 2011.09.21 09:02 | 수정 2011.09.21 09:41

 

다양한 부족·지역 갈등으로 화합 쉽지 않을듯

NTC 새로운 민주정권 창출 역량 발휘할지 관심

(카이로=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 리비아에서 42년간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휘둘러온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

도피 중인 카다피의 행방은 여전히 묘연하지만, 반군이 지난달 23일 함락한 수도 트리폴리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무스타파 압델 잘릴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NTC) 위원장은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트리폴리로 이동한 지난 12일 첫 연설을 통해 새 국정 방향을 제시했다. 사실상 새로운 정권의 탄생을 알린 셈이다.

카다피의 철통 요새였던 바브 알 아지지야는 물론 국영방송과 통신, 공항 등 핵심시설도 반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카다피 추격이 계속되는 사이 그의 셋째 아들은 국외로 도피했고 일부 아들은 투항했다.

카다피가 고향 시르테와 바니 왈리드 등지에서 친위세력을 규합해 최후의 항전을 벌일 가능성도 없진 않지만, 대세는 반군으로 완전히 기운 상태다.

◇혼돈의 리비아 앞날은 = 아프리카의 튀니지를 발원지로 한 거센 민주화 바람 속에 시작된 `재스민 혁명'의 불길이 철옹성 같던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다. 한 달 전 트리폴리 함락이 사실상 카다피 정권의 종말을 고한 것이다.

카다피 정권이 붕괴하면서 카다피 이후의 리비아가 과연 어떤 모습을 갖게 될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트리폴리 시민은 한결같이 "카다피 정권 시절보다는 생활수준이 나아질 것"이라 낙관하고 있지만, 외부인의 시각에서 리비아는 여전히 혼돈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라크처럼 이슬람 종파 간 갈등은 심각하지 않다 하더라도 부족 수가 140여개에 이르는 만큼 대승적 화합을 이루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 카다피 무장투쟁을 이끌어온 TNC 내부에서도 분란이 발생했고 반군 간 무력 충돌이 빚어져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NTC가 새로운 민주 정권 창출에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애초 NTC는 지난 18일 새 과도정부의 내각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해 이를 무기 연기했다.

NTC 2인자인 마흐무드 지브릴은 "많은 장관직에 대해 합의가 이뤄졌지만 일부 각료직에 대해서는 충분한 토의가 이뤄지지 않아 추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NTC 내부적으로 이견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리비아 사태의 이면에는 동·서 간 지역 갈등도 존재한다. 서부의 트리폴리타니아와 동부의 키레나이카, 남부의 페잔을 각각 상징하는 녹색과 검은색, 빨간색 등 삼색으로 구성된 반군 깃발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동안 억눌려 왔던 지역 간 갈등이 발현될 수 있다.

새 정부가 탄생하면 리비아는 이슬람 국가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NTC가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 대비해 마련한 로드맵의 입헌 선언문에 따르면 '리비아는 민주독립국가이고 국민이 주권의 원천이다. 수도는 트리폴리, 국교는 이슬람으로 정하고,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토대로 입법 행위가 이뤄진다'고 돼 있다.

반군은 또 로드맵에서 카다피가 끝내 퇴진하면 헌법에 따라 8개월 내로 권력 이양을 위한 선거를 치를 것이라는 내용의 안도 마련했다.

이 로드맵에는 새로 수립될 정부가 한 달 내로 총리를 임명하고, 두 달 이내로 새 헌법 초안을 작성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포스트 카다피는 누구 = 리비아 반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접수하면서 `포스트 카다피' 시대를 누가 이끌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카다피가 육성 메시지를 통해 최후의 순간까지 싸우겠다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어 카다피 정권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NTC는 카다피가 생포되거나 사살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밝히며, 이미 카다피 체제 이후의 통치 시스템을 점검하는 분위기다.

카다피가 권좌에서 물러난다면 포스트 카다피 시대를 이끌 인물로는 단연 잘릴 NTC 위원장이 영(0)순위로 꼽히고 있다.

잘릴 위원장은 카다피 체제 아래에서 2007년부터 법무장관을 지냈으나 지난 2월 비무장 시위대에 대한 실탄 사격에 항의해 정부 각료로는 처음 사임했다.

NTC에서 국방장관직을 맡고 있는 오마르 알-하리리도 반군의 선전과 더불어 급부상한 인물이다.

그는 1969년 카다피 주도의 쿠데타에 참여했지만 1975년 동료 장교들과 함께 카다피 정권 전복을 모의하다 발각돼 사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알-하리리는 이후 15년간 옥살이를 하다 1990년 감형돼 출소한 뒤 토브루크에서 연금생활을 해 오다 NTC에 합류했다.

NTC 2인자인 지브릴과 야전 사령관 역할을 자처하는 칼리파 헤프티르 전 장군, 인권 변호사 출신의 NTC 간부 압델 하페즈 고카도 포스트 카다피 시대를 주도할 유력 인물로 거론된다.

그러나 카다피의 독재체제가 무려 40년 넘게 지속하면서 리비아에는 카다피 이후를 준비해온 야당이나 시민·사회·노동·종교단체 등 대체 세력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상당기간 권력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더구나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서로 연결고리가 약한 100개 이상의 부족 간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증폭하고 혼란이 이어질 경우 문제는 예상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7월 반군 최고사령관인 압둘 파타 유네스 대장이 내부 세력에 의해 피살된 사건은 반군 내 분열상에 대한 적지 않은 우려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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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설'돌던 카다피 딸 영상 발견>

연합뉴스 | 김윤구 | 입력 2011.09.23 11:59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미군의 공습으로 숨졌다던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딸이 멀쩡히 살아 뛰어노는 영상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은 22일(현지시각) 카다피 가족이 트리폴리 교외에서 캠핑하면서 휴일을 보내는 동영상에서 카다피가 양녀 한나와 함께 있는 장면이 들어 있다고 보도했다.

영상은 카다피의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가 공격당해 한나가 죽었다고 알려진 1986년보다 3년이 지나 촬영된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텔레그래프는 또 영상에는 가족들이 한나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다 영상에 나오는 소녀가 지난달 카다피 요새에서 발견된 서류의 한나 카다피라는 성인 여성의 사진과 닮았다고 설명했다.

카다피는 리비아인들에게 서방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로 한나의 죽음을 활용해왔다.

카다피 수하의 관리들은 한나가 죽고 나서 이름이 같은 아이를 다시 입양했다고 주장해왔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에는 카다피가 한나를 안고 흔들어 어르면서 애정을 표하고 한나는 공을 차면서 노는 장면이 들어 있다.

이 영상은 카다피 가족의 공·사적 행사를 9년간 찍은 모하메드 알리가 촬영한 것으로 그는 이들이 교외로 캠핑을 자주 가곤 했다고 전했다.

암살될까 봐 항상 걱정했던 카다피는 매트리스 하나만 들고 가족의 텐트에서 떨어져 혼자 잤다면서 그가 어디서 밤을 보내는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그는 말했다.

알리는 이어 카다피가 외국에 갈 때는 비행기 4대를 준비시켰다면서 자신은 그가 어느 비행기에 타는지 알 수 없어 수행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카다피는 머리 뒤쪽에서 자신의 연설을 듣는 군중을 비추는 카메라 앵글을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어 머리가 벗겨지면서 이런 촬영 방식은 금지됐다고 알리는 전했다.

그는 카다피의 부인 사피야가 한나를 데려온 고아원에서 아이 3명을 더 입양했다면서 "카다피는 자식들이 밖에서 다른 리비아 아이들과 노는 것을 원치 않아 요새 안에서 놀 수 있도록 고아들을 데려왔다. 카다피 아이들의 장난감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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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과도정부, 새 정권수립 박차(종합2보)
연합뉴스|
유현민|
입력 2011.10.22 00:44
22일 벵가지서 '리비아 해방' 선포

"카다피, 생포後 복부관통상으로 사망"

나토사령관, 작전 종결 권고‥각국 지원 '잰걸음'

(튀니스·두바이=연합뉴스) 한상용 유현민 특파원 =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망으로 과도정부를 대표하는 국가과도위원회(NTC)가 새 정권수립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NTC는 22일(이하 현지시간) '리비아 해방'을 공식 선포하고 선거 준비에 돌입할 것이라고 리비아 관리들을 인용해 알자지라 방송이 21일 보도했다.

마무드 지브릴 NTC 총리도 "새로운 리비아, 통일된 리비아를 시작할 시기"라며 "하나의 국민, 하나의 미래" 건설을 선언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와 관련,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이 '혁명의 요람'으로 불리는 동부 벵가지에서 '리비아 해방'을 공식 선포할 것이라고 전했다.

NTC는 해방을 선언하면서 본거지를 벵가지에서 수도 트리폴리로 옮기고 30일 이내에 임시정부를 수립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카다피는 전날 과도정부군에 생포된 뒤 복부를 관통한 총알 한 발에 치명상을 입고 숨졌다고 시신을 검안한 의사가 이날 밝혔다.

검시 담당의 이브라힘 티카는 이날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와 한 인터뷰에서 "카다피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체포됐다가 숨졌다"며 "내장을 관통한 총알 한 발이 주된 사인"이라고 설명했다.

카다피의 시신은 혼란을 조기에 마무리한다는 방침에 따라 이날 중 비공개로 매장될 예정이었으나 국제형사재판소(ICC) 조사를 위해 연기됐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그러나 중국 신화통신은 카다피의 시신이 수 시간 내 매장될 것이라고 이날 오후 7시께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를 인용해 보도했다.

나비 필레이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와 관련, "카다피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이 불확실해 조사가 필요하다"며 사살 과정의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카다피의 시신은 현재 미스라타 시내 한 시장의 냉장설비에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NTC 고위 관계자 모하메드 사예흐는 카다피의 장례가 이슬람 전통에 따라 비공개로 치러질 것이라고 전했다.

행방이 묘연했던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 이슬람은 전날 시르테 남쪽 니제르 국경 방향으로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정부군 고위 지휘관 압둘 마지드 음레그타는 로이터 통신에 이같이 밝히고 "우리는 그를 쫓고 있으며 국경 지역의 모든 병력이 비상 상태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집트 관영 뉴스통신 메나는 사이프가 트리폴리에서 동쪽 160㎞ 떨어진 젤틴시에서 체포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카다피의 처남이자 정보기관 수장을 맡았던 압둘라 알 세누시는 이에 앞서 국경을 넘어 니제르로 피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이프와 압둘라는 현재 모두 전쟁범죄 혐의로 ICC의 추적을 받고 있다.

니제르에는 현재 카다피의 3남 사디를 포함한 측근 수십 명이 은신 중이다.

카다피의 사망과 더불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리비아 군사작전 종료 선언도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나토 최고 사령관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평의회 회의에 앞서 리비아 군사작전 종료 권고 방침을 밝혔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다만 나토는 카다피 잔당의 보복 가능성 등을 감안해 리비아 치안이 확보될 때까지 며칠 더 공중 정찰 등의 작전을 유지하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필립 하몬드 영국 국방장관은 BBC 라디오에 "리비아 국민에 대한 잠재적 위험 요소가 모두 사라지고 그들이 동의할 때 작전을 종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 인도 등 국제사회의 지원 움직임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카다피 사망 전부터 리비아 동결자산에 대한 해제를 시작해 이미 7억 달러를 지급한 미국 정부는 세계 각지의 리비아 자산 동결 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뜻을 밝혔다.

일본 정부도 리비아의 재건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우선 의족과 의수를 비롯한 의약품 제공을 약속했다.

인도 정부도 "리비아 재건을 위해 광범위한 지원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NTC의 역할과 지위를 존중하고 리비아 문제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지원에 의사를 밝혔다.

중국 국영 언론들도 카다피의 호칭을 종전 '실력자(strongman)'에서 이번에 '미치광이(madman)'로 바꾸고 리비아 시민정부 끌어안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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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죽자 김정일이 가장 먼저 간 곳은? 조선일보 송원형 기자
 
입력 2011.10.25 13:56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전 국가원수가 시민군에게 붙잡혀 죽은 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아들 김정은과 함께 호위사령부를 방문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4일 보도했다.

RFA는 카다피가 죽은 지 이틀만인 지난 22일 김정일 부자(父子)가 조선인민군 제985부대를 방문했다고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을 인용하면서, 제985부대는 김정일 일가(一家)의 경호 임무를 맡고 있는 호위사령부의 대외 위장 부대라고 전했다. 김정일 부자의 호위사령부 방문에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김경옥 당 중앙군사위원,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수행했다. 김정일 일행은 윤정린 호위사령관이 맞이했다.

RFA는 또 이번 김정일의 방문에 대해 "기별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북한 매체들이 보도한 것은 김정일 부자가 호위사령부 방문이 예정에 없었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일은 이날 부대원들에게 돼지고기와 채소 등을 잘 공급하라고 지시하면서, '수령 결사 옹위 정신'을 끝까지 유지하라고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RFA는 카다피가 평소 수천 명의 친위부대를 거느리고도 홀로 최후를 맞은 것을 본 김정일이 불안감을 느껴 호위사령부를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독재자들이 축출될 때마다 김정일이 불안감을 보여 왔지만, 카다피가 사망한 이튿날 호위부대를 전격 찾은 것은 그만큼 충격이 컸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RFA에 따르면 호위사령부는 김정일을 근접 경호하고, 김정일 일가가 쓰는 사무실과 저택·별장·사냥터 등을 지키는 부대로, 북한 내에서 최고의 출신 성분을 지닌 부대원 5만여명으로 조직돼 있다.

김정일은 독재자들이 무너질 때마다 보안체계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올해 2월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쫓겨나자, 멍젠주(孟建柱) 중국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부총리급)을 만나 북중 국경 봉쇄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12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처형당했을 때는 국가안전보위부를 방문, "오늘의 이 순간을 놓쳐 내일의 쓴맛을 보지 말라"고 말했었다고 RFA는 전했다.

 
러 통신 “카다피 차남, 20억달러 줄테니 풀어달라 반군에 애걸”
체포될 때 “총으로 머리 쏴달라” 호기부리던 카다피 차남…
AP는 “그런 제안 없었다” 동아일보 입력2011 22011.11.21 03:14
수정 2011.11.21 09:32
[동아일보]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망한 뒤에도 도피 행각을 이어온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이슬람이 19일 측근 3명과 함께 남부 사막에서 체포됐다.

반군에 체포된 뒤 "쏘지 마"를 외쳤던 카다피와는 달리 이슬람은 체포된 직후 "총으로 머리를 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이 체포됨에 따라 리비아를 철권 통치했던 카다피의 자녀 7남 1녀는 모두 쫓기거나 사망 또는 체포되는 비참한 신세가 됐다. 4남 무타심, 6남 사이프 아랍, 7남 카미스는 사망(카미스는 추정)했으며, 장남 무함마드와 5남 한니발, 장녀 아이샤는 알제리로, 3남 사디는 니제르로 도주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슬람 일행은 차량 두 대에 나눠 타고 어둠을 틈타 국경 쪽으로 가던 중 첩보를 받고 매복해 있던 민병대에게 이날 오전 1시경 체포됐다.

진탄 지역 민병대 아즈미 아티리 사령관은 "이슬람은 체포된 뒤 '총으로 머리를 쏴 달라. 시신은 진탄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체포 당시 이슬람은 영양 부족과 불안에 시달린 때문인지 두려움과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다.

AP통신은 "이슬람이 돈을 주겠으니 풀어 달라는 제안은 하지 않았다"고 전했으나,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은 현지 방송을 인용해 "20억 달러를 제시하며 석방을 요청했으나 반군이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이슬람은 곧 수도 트리폴리로 이송돼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