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가 아닌 사육장을 다녔다 노컷뉴스
입력 2011.11.02 15:54
지난달 순천 한 고등학교에서 또 한 명의 학생이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이 학생은 반에서 10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했고, 부모님 두 분 모두 교사여서 집안 환경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더욱이 중학교 때는 전남도교육청 정보 영재에 뽑힐 정도로 컴퓨터와 IT 분야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제도권 교육을 박차고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달 순천고등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한 주모(17) 군은 '"학교가 아니라 대학에 들어가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사육장에 다녔기 때문에 자퇴를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만 해도 주 군은 자퇴란 남의 얘기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입시 교육과 부당한 체벌로 인해 지난 여름방학 때부터 자퇴를 생각하게 됐다.
오전 7시 반에 등교해 오후 10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명문대, 입시만 외치는 교육에 주 군은 공부의 목적을 잃어버렸다.
중학교 때부터 순수한 의미에서 계속해온 학생인권 운동도 고등학교에서는 대학 입시의 한 '스펙'으로 전락했다.
학생인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 군은 지난 8월 전남도교육청이 주최한 교육공동체인권조례 공청회에 참석하려다 결석 처리하겠다는 학교 측과 갈등을 겪었다.
한 장학사의 도움으로 결석 처리되지는 않았지만 인권 활동을 그렇게 반대하던 선생님들이 대학 입시에 이를 이용하자며 인권 활동 경력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올리라고 하자 주 군은 염증을 느꼈다.
이해할 수 없는 체벌도 주 군을 학교를 떠나게 만들었다.
자신의 성기를 장남삼아 만지고,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을 통학차가 끊긴 밤 10시 40분까지 보내주지 않는 등 학생들의 잘못과 전혀 관계 없는 체벌은 교육이 아니란 생각마저 들었다.
자퇴서를 학교에 제출했을 때도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주 군은 "선생님께서 '네 말이 일리는 있지만 순고라는 학연 무시 못한다'며 '좀 참고 다니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자퇴서 제출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또 한 명의 자퇴생 스티브잡스를 생각하며 주 군은 "모든 자퇴생이 스티브 잡스처럼 될 수는 없지만 모든 자퇴생을 세상의 실패자로 보는 학교와 사회의 시선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교를 자퇴한 주 군은 최근 더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
자신은 학교를 박차고 나왔지만 자신의 후배들은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대안학교에 입학하는 내년 3월 전까지 순천에서 학생인권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오는 5일 조은프라자 광장에서 열리는 청소년 축제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인권 침해 사례도 수집할 예정이다.
주 군은 자신을 입시 교육이라는 연못에 던져지는 작은 돌맹이라고 했다.
다소 방식은 과격하고 거칠지 몰라도 자신의 자퇴가, 그리고 자신의 이후 삶이 대학입시만 생각하는 우리 교육 현실에 작은 울림이 되는 것이 주 군의 현재 목표다.
한편 주 군과 같이 학교 생활에 문제점을 느끼고 학업을 중단하는 고등학생은 해마다 늘고 있다.
전남에서 고등학교 학업 중도 포기자는 지난 2009년 420명에서 지난해 476명, 올해 9월 현재 607명으로 증가했다.
wi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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