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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잠자리 '비 온 대지'

손경형 2012. 2. 11. 11:17

노숙인에 '누에고치 박스집' 선물한 대학생들 이재준 기자   pr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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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2.11 00:38

건축학 전공 사회공헌모임 '비 온 대지' 9개월에 걸쳐 개발
"누에고치서 나비가 나오듯 노숙인도 이 집에서 살다가 다시 사회인으로 거듭나길"
"장기적으로 자립할 길 마련을"

"노숙인들이 지저분한 종이 박스에서 자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이 박스는 신기하네요. 깔끔하고."

10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지하보도를 지나던 유모(27)씨는 처음 보는 누에고치 모양의 '박스집'앞에서 멈췄다. 일본인 관광객 유키(여·30)씨는 "이런 것은 처음 본다"면서 사진도 찍었다.

이 박스집은 대학연합건축학회 소속 사회 공헌 소모임 '비 온 대지'에서 만들었다. 신상은(24·한양대 건축학과)씨 등 건축 전공 대학생들인 회원 10여명이 지난해 5월부터 개발을 시작해 지난 4일 1차로 15개를 서울 을지로입구역 부근과 시청역 등의 노숙인들에게 나눠줬다. 1개당 7500원이 들고 제작 시간은 10여명이 달라붙으면 15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비 온 대지'는 비 온 뒤 대지에 새싹이 자라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누에고치 모양의 독특한 디자인은 신씨가 건축학 수업 시간에 배운 '절판(折板)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절판구조'란 종이를 여러 차례 접으면 유리컵을 지탱할 만큼 강한 구조를 갖게 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신씨는 "노숙인들이 자는 박스의 재료가 종이여서 절판 구조를 반영하면 더 단단한 박스집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0일 오후 서울시 중구 태평로의 한 지하보도에서 노숙인이 누에고치 모양의 종이박스집을 설치하고 있다. 이 박스집은 접어서 휴대할 수도 있다(작은 사진).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박스집엔 건축 원리뿐 아니라 '비 온 대지' 회원들의 바람도 담겨 있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3학년 김지희(21)씨는"누에고치에서 나비가 나오듯 노숙인들이 이 박스집에서 살다가 다시 건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씨 등은 박스집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해 5월 노숙인의 잠자리에 대한 현장 조사를 했다. 설문지를 노숙인들에게 돌리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자기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든 노숙인들에게 50문항의 설문지는 무리였다. 이들은 방법을 바꿨다. 지난해 6월 노숙인들을 5일 동안 무작정 따라다니며 관찰했다. 매일 1명씩 정해서 아침 8시부터 잠드는 저녁 8시 정도까지 약 12시간을 노숙인 관찰에 보냈다.

신씨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도 프라이버시를 보장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박스집은 이런 연구의 결과다. 노숙인들이 접어서 휴대하고 다닐 수도 있다. 박스집을 이용하는 노숙인 김모(50)씨는 "바람이 완전히 막혀 들어오지 않아서 따뜻하다"며 "지하도를 오가는 사람들 눈길도 의식하지 않게 돼 좋다"고 말했다.

'비 온 대지'는 11일 5개를 서울역에서 배부하는 등 7주간 35개를 무료로 나눠줄 계획이다. 이후엔 인터넷 홈페이지(www.beondegi.org)를 통해 개인 기부를 받는 대로 박스집을 더 만들어 나눠줄 예정이다. 한 노숙인 구호 단체 회원은 "누에고치집 처럼 노숙인들을 당장 돕는 일과 함께 장기적으로 그들이 노숙에서 벗어나 자립할 길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르포]'갈곳 없고, 돈없고, 일없는…' 3無 노인들 몰리는 탑골공원
    기사등록 일시 [2010-09-30 10:39:35]    최종수정 일시 [2010-09-30 11:14:43]
【서울=뉴시스】정의진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 공원 뒤편 식당가에서 노인들이 무료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jeenjung@newsis.com 2010-09-29

【서울=뉴시스】정의진 기자 = "일자리도 없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여기로 와. 우리가 갈 곳이 어디 있나. 정부에서 밥 먹여 살려주는 것도 아니니까. 선거철만 되면 반짝하고 오다 말지. 지금 우리들은 태풍 앞의 촛불보다 못한 신세야."

윗니가 돌출돼 입이 잘 다물어지지 않는 이모 할아버지(68)는 지난 29일 대낮부터 한 잔을 걸쳤는지 벌개진 얼굴로 정부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탑골공원에 나온지 2년이 됐다는 이 할아버지는 "여기가 교통도 편리하고 맛도 있고 싸고 그래. 생각해봐. 다른데는 1000원이면 여기는 700원밖에 안돼"라며 이곳에 '올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전철이 닿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아침 일찍 모여 들어 노인들의 쉼터가 된지 오래인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의 문화가 점차 바뀌고 있다.

'갈 곳 없고, 돈없고, 일자리 없는' 소외된 '3무(無) 노인'들이 탑골공원에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9일 대낮 탑골공원의 뒷골목. 공원 담벼락 너머로 허름한 식당들이 즐비했다. 점심 시간을 맞아 공원을 빠져나온 수백명의 노인들이 식당가 한가운데 있는 커피자판기에 모여들었다.

노인들은 좁은 거리 한 쪽을 차지한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나 그늘에 앉아 100원짜리 커피를 홀짝 홀짝 들이켰다. 이들의 눈길은 모두 가격표를 향해 있었다.

선지해장국 1500원, 콩비지 2000원, 닭곰탕 2500원…. 일반적인 음식가격의 절반도 안되는, '비현실적인 물가'지만 보통 하루용돈이 5000원 안팎인 노인들에게는 메뉴 고르는 일도 고역으로 보였다.

마음을 정한 노인들이 삼삼오오 식당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런 값싼 식당도 머뭇거리며 들어가지 못하는 할아버지들이 더 많았다.

30여년동안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한 김모 할머니는 "할아버지들 혼자서 많이 와. 일행 있는 할아버지들도 가끔 있는데 그렇게 많진 않아"라며 빠른 손놀림으로 해장국을 퍼날랐다.

김할머니는 "요즘 경기가 계속 침체여서인지 음식점 앞에서 기웃거리다 그냥 가는 할아버지들이 많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김할머니는 "요즘 조금 여유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낙원동 실버전용극장이나 주변 호프집, 아니면 명동 컴피숍이나 청진동쪽으로 많이 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귀띔했다.

조금 여유있는 할아버지들은 탑골공원을 뜨고 갈수록 '돈없고, 힘없고, 홀로 살아 외롭고, 빽없는' 소외된 할아버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김 할머니의 식당안에서는 흰 머리가 수북한 노인들이 뜨거운 국에 밥을 말아 한 숟갈씩 천천히 떠 먹고 있었다. 식당 앞 테이블에 혼자 앉은 할아버지는 소주잔 가득 술을 흘러넘치게 채우고는 입안으로 털어넣었다.

5년째 이곳을 찾고 있다는 독거노인 장모 할아버지(72)는 "집에서 10시에 나와서 해지면 집에 가. 구리에서 전철타고 오지. 집에 있으면 할 일이 없어. 노인들이 많으니까 여기와서 이곳저곳 그냥 돌아다니는거야"라고 말했다.

검은색 양복바지에 긴 폴로티, 흰 외투의 지퍼를 가슴께까지 끌어올린 장 할아버지는 자식 이야기에 "명절되면 한 번씩 오는데 그것도 잠깐 뿐이고 바빠서 전화도 자주 안해. 신경 안써"라며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뒷 골목 모퉁이에 자리잡은 과일가게에서는 할아버지들의 화투판이 열렸고 그 앞에서는 장기대회가 한창이었다. 땅바닥에 장기판을 놓은 할아버지들은 버려진 박스나, 스티로폼도 상관없이 깔고 앉아 장기에 몰입했다.

막 자판기에서 뽑은 따끈따끈한 커피를 들고 의자를 찾아 한 할아버지가 앉았다. 선글라스에 양복과 중절모로 한껏 멋을 냈지만 유행이 한참 지난 폼이 큰 쥐색 바탕의 흰 줄무늬가 선명한 양복이었다. 이내 시선이 할아버지의 다 해진 구멍난 갈색 가죽구두에 꽂혔다.

저녁 무렵. 식당 밖 테이블에 앉은 할아버지들은 구성진 트로트 한 가락을 뽑았다. 테이블 위에는 머릿고기와 빈 막걸리 4병이 놓여 있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던 할아버지들의 노래는 어느새 돌림노래가 돼 있었다.

밤 10시께 한산해진 탑골공원 뒷 골목. 식당들도 문을 닫고 노인들의 자취도 사라졌다. 길거리에 셀 수 없이 떨어진 담배, 플라스틱 의자 앞 상자에 가득 쌓인 수 백개의 종이컵이 그들의 쓸쓸한 하루를 대신 설명해주고 있었다.

골목에서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떼던 한 할아버지의 "다 고통있게 사는거야, 그것이 인생이야"라는 말이 귓가를 스쳤다.

jeenjung@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