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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의 아내

손경형 2010. 12. 14. 15:38

간첩 아내’로 한 맺힌 30년 재혼 안 하고 5남매 키워

 

[중앙일보 구희령]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그 사람이…천국에서도 기뻐할 겁니다.”

16일 오전 11시 서울고등법원 312호. ‘1980년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의 마지막 재심 대상자였던 김정인씨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부인 한화자(67·사진)씨는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오열했다. ‘간첩의 아내’로 살아야만 했던 30년간의 고통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한씨의 남편 김씨는 이미 25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85년 10월 김씨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기 때문이다.

남편은 평범한 어부였다. 6·25 때 월북한 남편의 외삼촌이 64년 어느 날 밤 찾아와 남편을 북한에 데리고 가려다가 실패한 일이 한 번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80년 8월 남편과 한씨, 시어머니와 시동생은 다른 일가 친척들과 함께 간첩단으로 몰려 옛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두 달 동안 고문을 당했다. 수사관들은 구두굽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리고 물에 얼굴을 처박았다. 주리도 틀었다. 수사관들은 일부러 문을 열어놓고 고문했다. 벽 하나 사이에 있는 다른 가족의 비명소리를 듣는 것은 고문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한씨가 고문에 시달리며 비명을 토해낼 때였다. 옆방에서 남편의 처절한 절규가 들렸다. “제발 죄 없는 우리 마누라는 살려주세요” 하는 남편의 외마디였다.

“그때 내가 이를 악물고 비명만 안 질렀어도 우리 남편이 간첩이라고 거짓말로 자백은 안 했을 텐데….”

한씨는 지금도 그때 일이 한에 사무친다. 남편의 거짓 자백 덕이었을까. 나머지 식구는 모두 풀려나왔다. 그리고 목포로 이사했다. “큰애가 고등학교 1학년이고 막내가 두 살이었는데….” 당시를 떠올리던 한씨가 다시 통곡을 했다. 한씨는 남편이 사형을 당한 뒤에도 재혼하지 않고 5남매를 키웠다. 시어머니(2008년 91세로 작고)까지 모셨다. 식모살이며 공장 밤샘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남편은 두 눈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이들에겐 아버지의 무덤을 ‘할아버지 산소’라고 둘러대고 성묘를 다녔다. 차마 “아빠가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어느 해 어버이날 딸들이 “엄마, 저희도 아빠 무덤인지 다 알아요. 더 이상 거짓말하느라 힘들어하지 마세요”라고 쓴 편지를 읽으며 한씨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자녀들은 지난해 한씨가 죽은 남편을 대신해 재심을 청구하면서 비로소 아버지가 왜 돌아가셨는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재판장인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 성낙송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읽으며 “법원이 무고한 한 생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회환을 떨칠 수 없다”고 유족들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한씨는 “내 억울함을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재판부에 감사를 표시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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