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처음 시작한 경마, 이제 돌이킬 수 없어요”
지난 27일 오후 2시께 수원시 영통구에 자리 잡은 수원 KRA
프라자(장외발매소) 3층에서 만난
전업주부 김모씨(46·수원시 영통구)는 끼니를 거른 듯 한 손에는 마권을, 다른 한 손에는
김밥 한 줄을 든 채 초조한 표정으로 경마 중계가 흘러나오는
모니터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채 2분이 되지 않아 말들이 차례대로 골인지점을 통과하자 김 씨는 ‘에이, 또 날렸네!’라며 들고 있던 마권을 구기며 바닥에 내팽개쳤다.
이날 첫
레이스부터 참여한 김씨는 2시간만에 30만원을 날렸다. 그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남편과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딸을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런 그녀가 경마 장외발매소에 처음 발을 들인 건 3년 전인 지난 2008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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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일에도 불구하고 도내 한 경마장 장외발매소에서 경마에 열중하고 있는 주부들. 경기·인천 지역에서 운영되는 장외발매소마다 주부를 비롯한 여성 이용자들이 급증하고 있어 도박중독자 증가가 우려되고 있다. 김시범기자 sbkim@ekgib.com |
아파트 이웃주민들과 장을 보고 난 뒤 마트
건너편에 있는 장외발매소에
호기심에 들른 그녀는 한 게임에 1천원, 2천원 씩 재미삼아 베팅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게임에 5만원에서 10만원까지 걸고 있다. 경마 중계가 나오는 모니터가 머릿속에 떠올라 잠에서 깨는 등 도박중독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평일에도 수천명 몰려
끼니 거른 채 모니터 주시
곳곳서 ‘자리 다툼’ 시끌
급기야 김씨는
애지중지 모아두었던 5천만원이 담긴 적금통장에까지 손을 댔으며 지금도 경마가 열리는 금요일과 일요일에는 어김없이 이곳을 방문, 끼니도 거른 채 위험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
김씨와 함께 온 주부 2명도 마찬가지로 경마에 빠져 있었다.
이날 부산·경남 및 제주 경마공원에서 벌어지는 경마를 모니터로 생중계한 이곳에는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5층, 3개 층 모두 입장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경마장 내의 일부 입장객들은 자신이 선택한 말이 뒤처지자 심한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곳곳에서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심한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또 4층과 5층을 연결하는 계단통로에서도 잘못된 정보를 알려줘 돈을 날리게 됐다며 50대 남성 두명이 멱살을 잡는 등 시비가 붙기도 했다.
28일 오전 11시께
부천시 원종동 부천 장외발매소도 상황은 마찬가지.
지난해 지하
주차장의 기둥에서 균열이 발생, 4천500여 명이 긴급대피하는 소동을 벌였으나 경마장 이용객들은 이를 까맣게 잊은 듯 더 좋은 자리를 찾고자 부산한 모습이었다.
40~50대로 보이는
중년남성이 대부분이었지만 젊은 여성들과 주부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경마장을 관할하는 부천오정경찰서 원종파출소 한 경찰은 “경마가 있는 날은 사건이 두세 배 많다”며 “대부분이 경마팬들로 술기운에 싸움이 일어나 출동하게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경마 장외발매소는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가족들이 출입하기에는 엄두도 못 낼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권혁준·김종구기자 khj@ekgi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