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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자들은 왜 욕을 먹을까

손경형 2011. 7. 21. 16:14

한국의 부자들은 왜 욕을 먹을까

온갖 특혜누리면서 나눔엔 인색

일부선 “그냥 싫다…” 맹목적 불신감

정치권도 票의식 대기업때리기


지도층 ‘노블레스 오블리주’ 넘어

건전하게 벌어 건전하게 쓰는

“리세스 오블리주 시대 열어야”


대기업 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뭘까. 홍준표 대표는 ‘착취’라고 했다. 정두언 의원은 트위터에 “부잣집 아들은 모두 디스크 환자”라고 올려 이들의 습관적 병역 기피를 꼬집었다. 모두 ‘부자당’이라고 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자(개인이든 기업이든)에 대한 인식은 대충 이렇다. ▶관련기사 6·7면

해외에서는 부자들이 그렇게 존경을 받는다는데, 우리나라에선 공공의 적이다. 세금도 안 내고 가족에게 부를 대물림하는 사람들, 법 안 지켜도 아무 탈이 없고 오히려 잇속만 더 챙기는 1%의 괴물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아무리 과징금 철퇴를 내리고, 국세청이 거액의 세금폭탄을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다. 모두에게 평등한 법을 그들은 교묘히 이용해 빠져나간다. 국민들은 혀를 찬다. “우리에게 진정 존경받는 부자란 불가능한 것일까?”

감세정책 철회, 동반성장 압박, 기업 일감 몰아주기 제재, 중소기업 적합업종 강제 선정 등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대기업 때리기의 근저에도 이런 ‘존경받는 부자 부재(不在)’의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건전한 부, 건강한 부를 그대로 인정하는 선진사회와 달리, 우리는 부자 하면 뭔가 은밀하고 냄새가 나며 금목걸이를 차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택받은 이들이라는 거부감이 팽배하다. 왜 그럴까?

그 1차 책임은 부자들에게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일단 우리나라 부자들은 부의 축적에서 정통성이 없다. 사람들이 대부분 올바른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난해 한 조사에서도 우리 국민의 30%는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 투자를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부자와 투기를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얘기다. 


 

나눔에 인색하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부자들은 사회적 공헌도가 떨어진다. 부의 축적은 개인 능력에 달려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 인프라의 도움을 받은 것이므로 과감하게 나눠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약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국 부자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로 다음 5가지를 얘기한다. ▷탐욕 ▷부도덕 ▷군림 ▷인색 ▷무임승차.

사람들은 몹쓸 부자들이 하나라도 더 갖겠다고 탐욕스럽게 돈에 물불 안 가리고, ‘울타리 경영’속에 자기들끼리만 부를 나눠먹는다고 생각한다. 탈세, 비자금에 병역기피 등 부도덕의 극치 속에 산다고 믿는다. 권력화된 귀족주의에 덧칠돼 없는 자에 군림하려는 모습을 비판한다.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한 채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교묘히 법을 자의적으로 이용해 온갖 특혜와 열외를 향유한다고 확신한다.

여기에 무시 못할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냥… (싫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건 못 참는다고 했던가. 고위관료들 재산신고에서 나타나는 수십억, 수백억원. 도저히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그런 부자들이 돈을 버는 것도 얄밉고 펑펑 써대는 건 더 꼴사납다.

이런 인식을 하루아침에, 한두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는 없다. 이른바 ‘건강한 부’의 환경과 그 축적 기간이 필요하다.

부자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 선입관을 바꾸는 노력과 동시에 부자들도 사회의 마음을 얻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

‘정승’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로는 부족하다. 사회지도층의 도덕과 책임을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넘어, 이제는 건전하게 벌어들인 재산을 건전하게 사회를 위해 쓰는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 oblige)가 큰 가치로 다가온다.

13~17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으로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우게 했던 메디치(Medici)家는 ‘늘, 한결같은, 변하지 않는’ 의미의 라틴어 셈페르(semper) 정신을 실천했다. 그러나 346년 동안이나 부와 명예, 권력을 누린 이 가문이 손가락질을 받고 회복할 수 없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오만한 후손’들 탓이었다.

부자가 존경받지 못하면 언제든 몰락할 수 있음을 메디치가는 보여줬다. 메디치가의 흥망성쇠의 역사 속엔 ‘칭송’받는 부자가 되는 비법이 담겨 있다.

김영상ㆍ이상화 기자/ysk@heraldm.com

 

 

‘한국 재벌=사악한 부자’ 폄하 왜? 2011-7-21

 

영세상공인 생활기반 위협…‘재벌=비자금’ 선입견 여전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인, 특히 재벌을 ‘사악한 부자’라고 폄하하는 분위기가 적지않다. 재벌과 비자금을 동격시하는 고약한 선입견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국가 정책의 수혜를 본 이들이 국가나 사회의 건전한 성장을 이끌어가기보다 중소기업의 먹을거리를 넘보거나 코흘리개의 주머니돈까지 탐내며 ‘쉬운 길’을 찾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윤보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대기업의 성장은 국가에서 차관 끌어다 주고, 외환위기 당시 국민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해 줬기에 가능했다”면서 “그렇게 성장한 대기업이 혁신과 도전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지 않고, 영세소상공인 생활 기반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성장하려 하니 대기업에 대한 ‘동정론’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빚어지고 있는 동네 슈퍼마켓 시장 진출이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관련한 갈등은 물론이고, 그 이전부터 대기업은 ‘돈 되는 것은 다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대기업의 행태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 기업인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대기업 위주의 국가 정책 덕분에 우월적 지위를 얻은 기업인이 경제권력을 사유화하는 것도 기업인에 대한 반감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사회 규범이 법보다 높은 개념이라는 점에서, 국민은 법의 판단과는 달리 기업인의 흐려진 윤리의식에 대해 사회통념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또 기업인의 경제권력 사유화가 기업가 개인과 기업의 구분이 흐려지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최근 잇단 기업의 기부활동에 대해서도 “기업활동으로 이익을 얻은 개인이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면 기업인이 기부를 해야지, 왜 기업이 이를 대신해야 하느냐”고 꼬집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가 기업에 바라는 요구사항도 변했다. 예전에는 경제활동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기업의 역할은 끝이었으나, 이제는 진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사랑받는 기업(인)’이어야 존경을 받는다.

신뢰할 수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양호한 경영성과,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과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이 우리 기업에 필요한 주요 덕목이 되고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대중은 기업에 대해 이윤추구라는 고전적인 의미의 기업의 이미지를 바라지 않는다”며 “세금탈루나 불법 증여 등으로 훼손된 도덕성을 회복하고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는 기업이 이 시대가 바라는 기업상”이라고 말했다.

신소연ㆍ도현정 기자/shinsoso@heraldm.com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건 못참아…워너비-에너미 ‘공존’  2011-7-21

 

부자는 왜 미움 받는가

 

일반인 “부자 되고파” 갈망속

바라보는 시각은 부정적 이중잣대

남의 성공에 상대적 박탈감 작용

富축적 과정 불공정 만연도 한몫

과거부터 천민자본주의 뿌리깊어

선글라스를 끼고 오픈카를 몰고 서울 올림픽대로를 질주하는 20대 남자. 옆자리엔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이 하만카돈 서라운드 시스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긴다. 이 남자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어떨까. ‘나도 해보고 싶다’는 부러움? 당연하다. 그러나 곧바로 “자식 부모 잘 만나서”라는 비아냥이 이어진다. 아마 억대 연봉을 받는 직장인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들은 돈이 많아도 존경을 받는데, 왜 우리의 부자들에게는 ‘색안경’이 씌워져 있을까? 왜 우리의 부자들은 미움과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부자는 나의 로망이자 적(敵)=부자에 대한 사시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부자는 분명한 부러움의 대상이다. 서울여대 부자학연구회가 일반인, 대학생, 전문가 그룹 등 설문대상을 구분해 실시한 한국 사회 부자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자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렇다’가 111명의 응답자 중 110명이었고, ‘아니다’는 단 1명이었다. 당신의 자녀가 부자가 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가 107명이었고, ‘아니다’가 2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장 부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렇지 않다. 부자가 존경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가 33%였고, ‘그렇지 않다’가 40%였다. 과거에 부자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보느냐에는 ‘동의한다’가 13%였고, ‘동의하지 않는다’가 73%였다. 부자들의 경제적 공헌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도 ‘동의한다’가 47%, ‘동의하지 않는다’가 53%로 더 많았다.

부자가 부럽지만, 그들을 존경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비단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공통적인 정서라고 말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뿌리 깊은 천민자본주의=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문학을 보더라도 부자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방향성이 읽힌다. 허균의 홍길동전매점매석을 통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동시에 부자와 권력자들의 유착과 이들의 불공정한 모습을 응징하고 있다.

판소리 5마당에서도 부자에 대한 반감이 노골적이다. 흥부가에서는 동생에게도 부를 나눠주지 않는 놀부를 응징하고 있으며, 춘향가에서는 변 사또라는 권력가에 대한 반감을, 심청전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심청이를 팔아넘기는 인면수심을 다뤘다. 이들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합리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방 이후 우리들의 인식 속에 남아 있는 부자들도 하나같이 부정적이다. 해방 이후 혼란기 속에 고속성장을 거치면서 ‘졸부’가 등장했고, 정경유착 속에 ‘재벌’로 변화했다.

▶상대적 박탈감이 만든 사회학=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주위 사람이 잘되면 내가 못되는 것보다 더 샘이 난다는 뜻이다. 이는 상대방이 열심히 해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간의 조직 행동을 연구한 경영학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성취감보다 더욱 큰 것으로 이해한다. 일례로 여성의 경우 남자 친구가 생긴 것에 대한 성취감보다 남자 친구와 이별했을 때 느끼는 박탈감이 배나 큰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이런 상대적 박탈감도 상당히 작용한다. 지난 1988년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을 펼치다 자살하기 전에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 또한 부를 축적하지 못한 상대적 박탈감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의 유물=우리나라 부자에 대한 생각이 천민자본주의에 멈춰 있는 것은 부의 축적 과정에 대한 불공정함이 자리잡고 있다. 김주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강점기와 군사정권시대 정경유착 등 부를 이루는 방법 면에서 공정하지 못했던 바가 크며, 그러다보니 부자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한 부의 축적하는 시스템의 확보가 부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차적인 관건이다.

축적된 부의 사회 환원이 원활하지 못한 점도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일반인은 연소득의 약 2%를 매년 기부하고 있고, 부자들은 연소득의 약 6%를 매년 기부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프로보노 등 기부문화의 외연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일상 속으로 기부문화가 정착하기가 요원하다.

한동철 부자학연구회 회장(서울여대 교수)은 “한국 사회에서도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 부자가 되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상당수를 사회로 돌려줘야 부의 선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형 기자/th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