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연구소장 발표)
"비오는 날이면 집앞 우동가게 가서 우동 한 그릇 먹고, 대형마트에 장보러 가서 유통기한 얼마 안 남은 우유 하나 덤으로 사는 재미로 살죠. 호텔에서 비싼 음식 먹거나 밤에 조용한 데 가서 술먹는 일은 거의 없으니 묶어서 싸게 파는 1+1 상품 쇼핑하는 걸 즐겨요. 다만 얼굴이 알려져서 사람 많은 데 가면 조금 불편한 뿐입니다. 하하하"
안철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49). 그는 지난 23년 간 매스컴을 오르내리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 됐다. 의사, CEO, 교수 등 남들은 일생에 한 번 이루기 힘든 직함을 반세기 동안 모두 달았다.
게다가 그를 가리키는 수식어도 한둘이 아니다. 청소년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영입하고 싶은 CEO, 가장 건전한 경영자, 차세대 경제부문 리더, 떠오르는 스타교수 등등.
이처럼 다양한 직함과 타이틀에서 보듯, 안 원장은 그 누구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왔다. 그래서 일까. 늘 대중의 이목을 신경쓰고, 또 가끔은 무거운 타이틀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법 했다. 하지만 대답은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매스컴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어요.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신경 쓰면서 꾸미고 살았다면 23년간 관계했던 매스컴을 견뎌내지 못했겠죠. 사람들이 굴곡 없는 삶이다 그러는데, 꾸미지 않고 진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나름 일관되게 보이지 않았을까요."
선한 인상에 겸손한 말투였지만 눈빛에는 '분명함'이 담겨 있었다. 주변 시선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따른다는 점에서 '쿨함'도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다시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안 원장이 한 마디 던졌다. "참, 눈치 볼 때가 있기는 있네요. 대형마트에 장보러 갈 때요. 1+1상품은 인터넷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요. 하하하"
▶도전? 목표? 계획? 나와는 거리가 먼 말들= "제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 노력했던 기억은 전혀 없어요. 다만 하루 주어진 24시간을 내가 하고 싶은 일, 열정 갖고 할 수 있는 일 열심히 하면서 살았던 기억만 있네요."
뜻밖이었다. 치밀하고 꼼꼼하게 인생을 설계해 온 모범생 이미지에서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의사, CEO, 교수 모두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지 않고는 이루기 힘든 직업인데 안 원장에겐 이 두 가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안 원장은 밖에서는 자신이 도전하는 사람으로 비춰지지만 그런 타입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도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목표지향적인 타입도 아니다. 오히려 목표 자체를 정하지 않는다. "뭔가를 이루려고 계획하기 보다는 매순간 열심히 살다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기회들이 성큼 다가왔다고 할까요. 현재를 열심히 즐기다 보니 미래가 오던 걸요."
하지만 안 원장의 인생이 처음부터 물 흘러가듯 순조롭지는 못했다. 착실히 의학도의 길을 걷다가 갑자기 창업의 길로 들어선 것도 자신이 더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선택이었지만 이 역시 목표한 바는 아니었다. 안 원장은 "미래 전망은 아예 보지도 않고 무작정 회사를 차렸다"고 말했다. 창업 당시 역시 컴퓨터 바이러스야 말로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재미 있게 열정 갖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혹했다. 창업 초기인 1995~1999년은 안 원장 인생 가운데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그에게 가장 큰 일은 매달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었다. 매달 초가 되면 행여 월급을 못 줄까봐 불안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매출이 변변치 않은 달에는 돈을 구하러 은행을 돌며 어음깡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어음깡이라는 게 기업에 따라 객관적 평가가 적용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담당 직원 마음대로 고무줄 평가를 받더라고요. 누구한테 잘보이려는 건 정말 곤욕이었죠."
하지만 안 원장을 더욱 괴롭히는 건 본인 스스로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었다. 사업한 지 3년이 지난 1998년 사무실은
남부터미널 부근에 있었는데, 안 원장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도 매일 밤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다. 그날 번 돈과 쓴 돈 등 10원짜리 하나하나 세면서 하루를 보냈다. 순간 울컥했다.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는 지 서글퍼지더라고요. 동기동창들은 의사나 교수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나는 그때 배운 거 다 버리고 그러고 있었으니…"
▶바닥에서 정립한 마이웨이 철학 '절대 남들과 비교하지 않기'=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안 원장은 평생 자신을 바로 세워줄 버팀목 같은 철학을 만들었다. 바로 "절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할수록 제 자신만 힘들어지더라고요. 남들이 다 위만 보고 갈 때 나라도 가끔 아래를 내려다보자고 생각했죠."
안 원장은 이를 산을 오르는 것에 비교했다. "정상만 바라보면 구름이 가리기도 해서 불안해 지는데, 뒤돌아보면 없는 가운데 이 만큼 왔구나 하고 안심이 되잖아요. 결국 원대한 목표가 사람을 지치게 하더라고요."
이런 생각에 안 원장은 목표를 크게 세우고 이를 실천하려 허덕이기 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 일주일, 한달이란 시간을 값지게 쓰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남부터미널 작은 사무실 안에 갇혀 장부 계산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는 자신을 애타게 여기던 그 자신을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안 원장은 걷기를 통해 정신을 가다듬기도 했다. "너무 안 풀리면 정처 없이 걸어다녔어요. 서초동 소나무사거리에서 출발해 테헤란로 지나 삼성역까지 걸으면 2시간 반이 걸리죠. 모르고 지갑 두고 나간 날은 다시 걸어서 돌아와야 해서 왕복 5시간 가까이 걸었던 기억이 있네요."
흔히 걷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정신수양이는 말이 있다. 안 원장은 강남 도심 일대를 5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마이웨이 철학을 정립했다.
안 원장의 마이웨이는 훗날
안철수연구소가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처음 백신을 개발하면 신제품 값을 받는 대신 새로운 버전에 대해 유지, 보수 비용을 받기로 했다. 백신 특성 상 신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처음 도입된 계약방식을 거부했다. 연구소 영업담당 임원도 실적이 안 나오자 안 원장에게 포기하자고 청했다.
"당시 유혹도 매우 컸어요. 수익이 안 나왔으니.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기로 했죠. 마침내 법률까지 바뀔 정도로 지금은 그 계약방식이 상식이 됐죠. 눈앞의 돈만 좇다 단기 계약에 의존했으면 지금의 500억 매출은 꿈도 못 꿨을 겁니다."
안 원장의 이런 철학은 자녀 교육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현재 안 원장의 딸은 미국에서 수학과 화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모두 자신이 원해서 시작한 길이다. 딸에게 진로에 대해 아버지로서 훈수를 둔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본인 인생인데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야죠. 내가 하도 이래라 저래라 말이 없으니까 오히려 우리딸이 나한테 물어볼 정도 입니다."
또 마이웨이 철학은 23년간 매스컴에서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잘 나가는 사람들 보면 외부평가가 진짜 자기 실력인 줄 아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자기 본 실력 알고 나면 많이 괴로워 하죠. 외부평가는 롤러코스터 같아요. 몇 번 올라가는가 싶더니 바로 고꾸라지기 일쑤죠. 그래서 저는 외부평가 연연하지 않고, 평가가 아무리 나빠도 내 본 실력만 믿고 살아 왔습니다."
▶워커홀릭? 나는 휴먼홀릭!= 안 원장은 아직 여름 휴가를 떠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남들 다 1년 중 한 번 달콤한 휴식을 꿈꾸며 국내외 여행을 계획하지만 그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다. 올해 역시 서울대로 둥지를 새로 틀었기 때문에 여름휴가 떠날 여유가 없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평생 일과 공부에 묻혀 살았다.
"연구소 차리고 나서는 정신 없이 일만 했어요. 교수되고 나서는 방학이 있었지만 초보 교수가 어디 놀러갈 수 있나요. 학회 등 공무 상으로 해외에 가본 적은 있지만 LA, 런던, 파리 등 사람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는 아직 못가봤네요."
이쯤 되면 워커홀릭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짧은 순간 조차도 현실을 떠나 머리를 식히기 보다는 철저히 현실과 마주하며 살아 왔다.
하지만 안 원장이 진정으로 열중했던 것은 결국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의대생 시절 우연히 들어간 카톨릭학생회를 통해 진료봉사를 하면서 책에서만 읽었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한계를 느꼈던 시절이었지만, 안 원장은 사람들을 만나며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해 더 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안 원장이 연구소를 차리고 회사가 자리를 잡은 다음에도 계속 이어졌다. "초기엔 힘들었지만 10년 정도 지나니까 안 연구소는 벤처기업 중에서도 매우 큰 기업이 됐죠. 하지만 안 연구소는 잘 먹고 잘 사는데 주변 벤처기업은 여전히 어려웠어요. 청년 일자리는 점점 줄고, 도전의식도 약해졌죠."
"사람들이 그런 문제의식 왜 갖고 사냐고 하지만, 혼자서만 잘 살수는 없으니까요. 우리집 아이라 행복하려면 옆집 아이가 행복해야 하니까요."
결국 안 원장은 CEO 혼자 힘만으로는 벅차다는 것을 느꼈고, 보다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학계의 길을 택했다. 2008년 미국 와튼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뒤 KAIST 석좌교수를 거쳐 현재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안 원장에게 교수라는 직업은 가르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교육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일을 한다는 데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 교수는 아직까지 정책 당국자들이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집단입니다. 여러 조언들을 해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20대를 대상으로
기업가정신을 가르치거나,
카이스트에서 6학기 동안 학생들 가르치면서 실제 사람들 생각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어요. 사장 했었으면 못 느꼈을 것들이죠."
최근 흘러나오는 정치권 영입설에 대해서도 안 원장은 교수가 매우 중요한 위치라며 에둘러 부인했다. "정치라는 게 혼자서는 결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인데 나와 같은 생각 갖고 있는 사람 만나는 거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교수는 작은 부분이지만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같은 생각의 사람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안 원장이 신념과 가치관이 같다고 자신 있게 말한 사람은 바로 그의 부인, 김미경 교수(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다.
"카톨릭학생회 봉사활동 가서 만났는데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저랑 같았어요. 또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무조건 시키자는 교육관도 같았어요. 특히 돈 더 많이 벌고, 더 안정적인 거 따지기 보다는 좋아하는 일에 많은 시간 투자하는 직업관도 똑같았죠."
▶약속된 미래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나의 최대 자산은 '사람'= 인터뷰를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안 원장의 라이프스타일은 '내일보다는 오늘을 위해 살자'였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오로지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즉 그는 일하는 데 있어서 미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하는 개미가 아니라 하루를 최대한 보람 있게 보내는 베짱이에 가까웠다.
안정을 추구하지 않는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지난 삶의 행보에 그대로 뭍어 있다. 엘리트 코스인 의사를 훌쩍 그만두고 야심차게 차린 회사를 차렸지만 자기발로 CEO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의대를 들어갈 때, 창업할 때 모두 안 원장 스스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유학 후 카이스트 교수로 임명됐을 때 임용장에는 2008~2027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만65세까지 정년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는 다시 3년 만에 안정된 자리를 뒤로 하고 서울대로 옮겨 왔다. 서울대 역시 그에게 2027년까지 정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안 원장은 2027년까지 서울대에서 교수를 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장기 계획이란 걸 세워 본 적이 없으니까요. 내 평생 한번도 안정, 보장이란 말이 나를 붙잡은 적은 없어요. 선택의 순간에서 모든 걸 고려했지만 이 둘은 항상 빠져 있었죠. 처음엔 의사만 할줄 알았는데 지나칠 정도로 열심히 살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결국 안 원장은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는 시간까지 아깝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그 시간마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투자하며 자신에게 다가올 미래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기다렸던 셈이다.
다만 그가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명확한 한 가지 기준은 있었다. "결정은 혼자 오래 고민해서 내리는 편입니다. 대신 기준은 늘 같았어요. 나에게 더 의미 있고, 내가 계속 열정 갖고 할 수 있고,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판단 기준에는 늘 사람이 제일 위에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소중해지는 것 역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존경하는 인물을 꼽아달라니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나왔다.
"낳아주신 부모님은 물론
전기생리학 전공 시 존경했던 교수들은 모두 노벨의학상을 받았어요. 90년 중반 전설적인 프로그래머들에 열광했고, 회사를 차리고 나선
앤디 그로브(인텔 창업자)처럼 성공한 엔지니어 출신 CEO가 되고 싶었죠. 와튼스쿨 다닐 때 레오나드 M. 로디시 교수로 부터 배운 교수법 덕분에 카이스트에서 비교적 빨리 자리잡았어요."
안 원장은 직업이 바뀔 때마다 롤 모델도 매번 바뀐다고 했다. 덕분에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알찬 지식을 배웠다. 이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요즘처럼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게 중요할 때가 없어요. 20~30대는 혼자 실력으로도 일하지만 40대부터는 인간관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죠. 나이 들어서 친구 사귀기 힘들다고 하는데 다 옛말 같습니다"
그는 낯을 가리는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친화력보다 더 큰 무기가 있다고 소개했다. "친화력은 처음에 쉽게 하는 데만 도움이 되지 진정한 관계 유지하는 것은 가치관 등 동질감을 형성하는 거 같아요. 안 연구소 16년 됐는데 지금도 장기근속자는 50명이 넘어요. 친구로 따지면 평생 친구인 거죠."
< 정태일 기자@ndisbegin >
killpass@heraldm.com 사진= 안훈
기자/rosedale@heraldm.com
이철호의 시시각각] 박근혜 누른 안철수[중앙일보] 입력 2011.09.08 00:17 / 수정 2011.09.08 09:34
이철호
논설위원4박5일간 생중계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미니시리즈가 막을 내렸다. 안철수의, 안철수에 의한, 안철수를 위한 드라마였다. 각본을 쓰고 주연배우까지 도맡았다. 압권은 트위터에 오른 시청자 소감이다. “박원순은 지지율을 얻었고, 안철수는 세상을 얻었으며, 야당은 2부 리그로 내려앉았고, 한나라당은 시정잡배로 전락했다.” 압도적 시청률을 자랑한 미니시리즈의 승자는 단연 안 원장이다. 드디어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눌렀다. 철옹성의 박근혜 대세론까지 허무는 가공할 파괴력이다.
지지율 50%의 안 원장은 20분간 담판을 통해 5%의 박 변호사에게 깨끗이 양보했다. 한마디로 쿨하다. 요즘 시대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진다. 정치 9단인 김영삼·김대중도 못 해낸 작품이다. 정치쇼라고? 거품이라고? 그렇다면 다음의 반문 앞에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50% 넘는 지지율에도 불출마할 수 있는 정치인이면 안철수를 씹어라” “50% 박근혜가 5% 정몽준에게 대권 후보 양보할 수 있는가?”…. 상식을 뒤엎는 이런 통쾌한 반전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안 원장은 영리하다. 그가 서울시장이 되기는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성공한 시장이 되긴 어렵다.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와 소모적 싸움을 벌이면 꼼짝없이 현실정치 프레임에 갇힌다. 그는 대신 자신을 비워 몸값을 최대한 올리고 유력 대선 후보라는 정치적 자산을 획득했다. 그는 드라마 대사를 치는 솜씨도 일품이다. “높은 지지율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나를 통해 대리 표현된 것 같다.” “이렇게 허약한 정치권에 나라를 맡겼다는 게 솔직히 황당하다.” “서울대로 돌아가겠다. 인생을 살면서 작은 신의라도 지켜야 한다는 게 나의 원칙이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대사들이다.
기존 정치권은 하루아침에 쪼잔한 처지로 몰렸다. 국회에서 그렇게 모질게 싸우고, 서로 상처를 냈지만 허업(虛業)이 돼 버렸다. 한 묶음으로 자기 이익만 좇는 기득권층으로 뭇매를 맞았다. 민주당은 열심히 좌(左)클릭하다 안 원장에게 중원을 빼앗겼다. 이제는 후보조차 내기 어려운 불임(不姙)정당 신세가 됐다. 난감한 쪽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항마 여부를 떠나 (안 원장은) 중도하차할 것”이란 친박 인사들의 기대가 안쓰럽다. 그들의 주장이 마치 옛 환관과 무수리의 넋두리처럼 들렸다면, 필자만의 환청일까.
박 전 대표의 여론조사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과거의 부채의식에 기대는 느낌이다. 고향인 경북을 빼면 안 원장보다 지지율이 높은 충청과 경남은 각각 세종신도시와 동남권 신공항으로 신세를 진 곳이다. 그의 ‘아름다운 경선 승복’도 안 원장의 ‘통 큰 단일화’로 빛이 바랬다. 안 원장은 굳이 주인(박근혜) 있는 한나라당 대신 중간지대와 야당을 누빌 것이다. 그는 박 변호사의 손을 들어줘 진보진영에도 확실한 부채의식을 심어줬다. 누구보다 힘들게 일해도 전셋값 대기 어려운 ‘아픈 청춘’들이 안 원장의 미니시리즈에 열광했다. 게다가 평균수명이 늘어나 40대까지 스스로를 ‘청춘’이라 여기는 세상이다.
안 원장 앞에는 검증 절차가 남았다. 정치적 진공 속에서 자란 깨끗한 이미지가 언제 치명적 약점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사소한 흠이라도 드러나면 깨지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여야를 싸잡아 비난한 그의 신드롬은 대단했다. 그것이 바로 민심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정치도 소비되는 시대다. 정책대결하자고? 복지노선부터 정리하자고? 하지만 누가 제품설명서 다 읽고 사는가. 가격 대비 성능 좋고, 디자인 마음에 들면 누구나 지갑을 연다. 정치판에도 탈(脫)정치의 새로운 정치가 열렸다. 자신들의 꿈과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구(舊)시대 인물로 생매장당한다. 그들의 마음을 잡으려면 누구든 몸을 낮추고, 몸을 던져야 한다. 정치공학이나 기교로 재미 보던 시절은 지났다. 아마 여의도 서점가에 정치학 개론보다 심리학 개론서를 들여놓으면 장사가 될 듯싶다.
이철호 논설위원
- <안철수 ‘재산 1500억 기부’ 파장>몰려든 취재진에 2분간 딱 두 마디하고 ‘끝’
- “집앞에서 고생하실까봐 이곳으로 오시라 했다” 문화일보|
- 김병채기자|입력 2011.11.15 13:55
- |수정 2011.11.1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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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자신의 재산 기부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인 15일 기자들을 만났으나 평소처럼 극도로 말을 아꼈다. 기자들에게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사전에 공지했고,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다.
안 원장은 이날 오전 9시30분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앞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안 원장은 푸른색 줄무늬 셔츠에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고, 노타이 차림에 한 손에는 외투를 들고 있었다. 검은색 제네시스 승용차에서 내린 안 원장은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제가 기자회견을 한다거나 입장을 밝히는 것은 아니어서 질문을 받지 않겠다"며 먼저 선을 그었다. 안 원장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여는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서도 "여기(학교)로 오시라고 한 건 밤새 추운데 집 앞에서 고생하실까봐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안 원장은 '재산 사회환원을 정치적 행보로 보는 시각이 있다', '추가 환원 계획이 있느냐'는 등의 기자들 질문에는 일절 답변하지 않은 채 곧바로 1층 대학원장실로 직행했다. 기자들과의 만남도 2분 남짓에 불과했다.
이날 안 원장의 출근길에는 취재진 50여명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뤘다. 기자들이 안 원장을 막아서다시피 했지만 안 원장은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안 원장의 한 측근 인사는 "안 원장이 원칙주의자 아니냐"면서 "집 앞에서 기자들을 안 만난다고 했는데, 지분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직원들한테 e메일 보내고 기자들 문의가 많으니까 한꺼번에 얘기하겠다고 해서 시간을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안철수연구소 측은 안 원장에게 공식 기자회견을 하는 방안에 대해 의사를 타진했으나 안 원장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안 원장은 이날 출근에 앞서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간단한 언급을 할 것이라고 알렸고, 대학원 측이 방호원들을 동원해 기자들이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통제했다.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건물은 대학당국이 교부한 신분증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했다.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관계자는 "평소에도 보통 오전 9시30분을 전후해 출근하신다"고 말했다.
수원 = 김병채·김형운기자 haasskim@munhwa.com
▶<안철수 '재산 1500억 기부' 파장>'安연구소' 주가 폭등… 개장하자마자 상한가
▶총선·대선 겨냥 '안철수式 펌프질' 시작됐다
▶<안철수 '재산 1500억 기부' 파장>'마중물'부은 安, 총선·대선 겨냥한 '펌프질'시작됐다
▶<안철수 '재산 1500억 기부' 파장>親李 "대선 출사표" 親朴 "머리 많이 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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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말 내려던 책 ‘OK’ 못하는 안철수기사입력 2012-01-20 03:00:00 기사수정 2012-01-20 22:14:02 민주당 일각 “安 없이도 대선 이길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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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본격적으로 할까, 말까. 미국에 머물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사진)의 고민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듯하다.
8일 출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계속 (정치를 하며) 어려운 일을 이겨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라던 그는 현재 몇몇 지인을 제외하곤 외부와 연락을 끊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초 이달 말에 내려던 에세이집의 출간 시기도 늦췄다. 안 원장 에세이집을 출판할 예정인 김영사 측은 “최근 안 원장이 원고를 다시 돌려 달라고 한 뒤 아직 최종 사인을 안 주고 있다”고 전했다. 에세이집은 지난해 청춘콘서트 발언 내용을 축약한 것으로 안 원장의 다양한 정치·사회적 메시지가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에세이집에 그의 최근 고민이 담길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안 원장 지인들은 “정치를 해야 할지 진심어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지만, 달라진 야권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주통합당이 한명숙 대표 등 친노(친노무현) 지도부를 중심으로 오랜만에 결집력을 보이면서 얼마 전까지 대선 승리를 위해 안 원장을 구세주로 여겼던 야권 내 분위기도 약간씩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 주변에선 요새 ‘안철수’ 이름이 예전만큼 많이 들리지 않는다. 한 대표도 15일 전당대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안 원장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고 협력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언급한 뒤 공식 석상에선 그를 거론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친노 지도부의 등장으로 어느 때보다 힘을 받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선 “안철수 없이도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다.
▶ [채널A 영상]안철수, 정치참여 여부 묻자…“선수끼리 왜 이러십니까”안 원장 측 관계자는 “완벽주의자인 안 원장은 자신이 즐기면서 잘할 수 있고 가급적 좋은 결론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정치에 입문할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과 진흙탕 같은 권력 투쟁을 벌이면서까지 정치를 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단 안 원장은 정치 입문 여부를 계속 고민하며 기부재단 설립에 당분간 다걸기(올인)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안 원장 관계자는 “안 원장은 한 가지에 빠지면 다른 일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다.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며 “성공적으로 재단을 설립한 뒤라야 정치 입문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겸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을 만나 재단 설립에 대한 조언을 구한 안 원장은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 구체적인 재단 설립 구상을 발표할 계획이다. 재단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거나,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 기회 부여를 위해 공립학교 설립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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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난 정치인 아니다…주위에서 웅성거릴뿐"
[연합] 입력 2012.01.21 01:20 / 수정 2012.01.21 03:02
방미후 귀국.."주위에서 웅성웅성하며 쳐다볼 뿐"
"정치 생각할 필요 없어" 대선출마엔 묵묵부답
야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20일(현지시간)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 정보기술(IT)업계 인사 면담, 대학원 교수 채용 등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안 원장은 이날 귀국에 앞서 필라델피아 공항과 시카고 공항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잇따라 만나 올연말 대선 출마 등 정계 진출과 관련한 여러 관측에 대해 여러차례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나는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 자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면서 "거의 대부분이 만들어낸 말들"이라고 말했다.
안 원장은 `그러면 정치 생각은 전혀 안하는가`라는 질문에 "내가 생각할 필요가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한 뒤 `피선거권자가 될 수도 있다`는 말에도 "내가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출국전 인천공항에서 "열정을 갖고 계속 어려운 일을 이겨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서도 "내가 예전에 책에 쓴 말을 그대로 되풀한 것"이라면서 "그 고민이라는 것은 평생 살아가면서 하는 고민"이라며 정치적인 해석을 피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장 선거 이후로 지금까지 (내 발언에 대한 해석이) 한번이라도 맞은 적이 있었느냐. 계속 틀렸다"며 "기존 정치인들의 어법으로 해석하면 틀림없이 틀릴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정치인이 아니니까"라고도 했다.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안 원장의 이같은 언급은 당장 현실정치에 참여할 의사는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다만 대선출마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꼈다.
안 원장은 대선출마 여부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과 관련, "지금 그 쪽에 정신이 팔려있는 것은 정치권도 아니고 국민도 아닐 것이다. 지금 그게 중요한 사안이냐"면서도 구체적 언급은 피했다.
그러면서 "저 혼자 공부할 따름"이라며 "주위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면서 저를 쳐다보는 것이다. 저는 그 판(정치판)에 들어간 사람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선 출마하겠느냐`는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뒤 "세월은 흐를 것"이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밖에 최근 이른바 `정치테마주` 논란과 관련, "내가 한 주도 판 적이 없다"며 "(내가 갖고 있는) 안철수연구소 지분의 절반을 낸다고 했지 얼마를 낸다고 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평생 이룬 것의 절반이고, 나한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소중한 가치는 똑같다"라고 덧붙였다.
안 원장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했으며,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와 에릭 슈미트 구글 CEO 등을 면담한 뒤 동부에서 일주일간 휴가를 보내고 귀국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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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콜 받는 안철수, 총선과는 거리두기
민주, 비례1번 제안說...안철수측 "조용히 총선 보낼 듯" 노컷뉴스 | 정영철 | 입력 2012.03.21 16:54
[CBS 정영철 기자]
4.11총선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공천 후유증과 야권연대 잡음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주통합당 쪽에서는 안 원장에게 비례대표를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측은 안 원장 측근과 접촉해 비례대표 1번을 제안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하지만 안 원장측은 "아직 정치참여 여부에 대해 결정하지 않았다"며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영입이 불발됐다.
통상 비례 1번은 여성 몫이지만 특별히 안 원장에게 배려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문 이사장측은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강남권(송파을)에 출마한 천정배 전 최고위원도 안 원장에게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천 전 최고위원은 21일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안 교수는 그동안 '반칙과 특권이 아니라 상식과 합리가 통하는 사회'를 말해왔다"며 "개혁진보세력의 움직임과 안 교수가 추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대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에서 대다수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위해 야권연대를 넘어 '새시대 연대'를 이루자"고 제안했다. 총선에서 안 원장이 야권측 지원군으로 나서달라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안 원장은 총선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원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일찌감치 기존 정치권과 달리 '보수와 진보'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안 원장이 총선 정국에서 그동안 보수진영에서 관심을 가졌던 탈북자 북송반대 집회에 참석하고, 진보진영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MBC파업에 대한 지지동영상을 보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한 측근은 "안 원장은 지금으로서는 여야구도로 짜여진 정치권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모든 현안을 보수와 진보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 차원에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권 도전을 놓고 기로에 선 안 원장으로서는 최대한 보수와 진보 진영을 아우르면 외연을 넓힐 필요도 있다.
또 안 원장이 당장 총선 정국에서 야권을 지원할 경우 정치참여에 대한 압박이 더 강해질 수 밖에 없는데 이 역시 안 원장에게 달가운 것은 아니다.
또다른 측근 인사는 "안 원장은 총선 정국에서는 조용히 지낼 것으로 보인다"며 "굳이 총선정국에서 움직여봤자 정치적 부담이 커질수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안 원장은 27일 서울대 총학생회 '축제를 하는 사람들'이 주최하는 '소통과 공감' 행사에 강연자로 참석한다. 여기서 안 원장은 청년들의 고민에 대해 강연하고 학생들의 질문을 받을 예정이다.
안 원장은 지난해부터 서울대 총학생회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가장 만나고 싶은 첫번째 인물로 꼽혀왔다.
stee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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